1. 경전(經傳)에서 글자 한 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큰 의미가 달라진다. 문(文)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글인가? 문화인가? 공자는 사람으로서의 기본바탕(質)이 갖춰진 다음에 문(文)을 배우라(學文)고 한다.
2. [논어로 대학을 풀다]의 필자 이한우는 일본의 한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 백 가지 이야기](황소자리)에서 인용한 다음 문장을 참고하며 문(文)의 해석을 달리하길 원한다. "文(문)은 기회의 총체다. 내적인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을 더욱 한정하여 사용하는 방식이 문자다."
3. 따라서 필자는 이미 [논어로 논어를 풀다]에서 내적인 것, 기본 바탕(質)과 대비시켜 文을 애씀, 애쓰는 법, 애쓰다 등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다. 文은 예악을 포괄하면서도 훨씬 더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4. 공자의 어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으니 문(文) 행(行) 충(忠) 신(信) 넷이다." 文을 제일 앞에 두고 있다. 行,忠,信을 사람됨의 근본바탕 즉, 質이라고 본다면 앞서 기본바탕이 갖춰진 다음에 문(文)을 배우라는 말과 상충(相衝)되지 아니한가. 필자의 말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5. 이 책은 필자의 사서삼경(四書三經) 읽기의 세 번째 저서이다. 그 순서는 [논어로 논어로 풀다][논어로 중용을 풀다] 에 이어서 출간되었다. 대학은 동양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치인(治人) 즉, 사람을 다스리는 문제가 담겨 있다.
6. 사실 동양고전은 텍스트보다 해설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어떤 주해가 붙은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이해정도가 달라진다. 필자 역시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본인의 풀이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다른 풀이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자신하는 부분은 경전의 자구를 억지로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앞서 [논어]와 [중용]의 풀이에 입각한 이번 [대학]풀이 역시 분명 나름의 차별성을 갖는 작업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7. 대학의 구성은 '經1章'과 '傳10章' 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학을 논어로 풀어야 그 뜻이 통하는가. 주희에 따르면 '經1章'은 공자가 말한 것을 제자인 증자(曾子)가 기술하였고, 이어지는 '전(傳) 10장'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經1章'은 공자의 뜻에 가깝고, 더욱 논어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서 중에서 가장 공자의 기운이 많이 담겨진 것이 논어이기 때문이다.
8. "사물의 이치를 깨우친 후에야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후에야 뜻이 열렬해지고, 뜻이 열렬해진 후에야 마음이 바로잡히고, 마음이 바로잡힌 후에야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후에야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후에야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진 후에야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經1章'의 끝부분이다.
正心과 定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正心은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이고, 定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텍스트 원전을 옮기진 못했으나 이 글중 '수부독서(雖不讀書)'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책을 안 봐도 된다는 이야긴가. 필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한다.
"책을 읽고 배움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정심응물(定心應物)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문장구조다. 즉 정심응물(定心應物)에 능한 사람이 있으면 책을 안 읽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정심응물(定心應物)에 능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고 배움으로써 定心하고
應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9.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문장 구조가 [논어] '學而 7'에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하는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고, 부모 섬기기를 기꺼이 온 힘을 다하며, 임금 섬기기를 기꺼이 온몸을 다 바쳐 하고, 벗과 사귀기를 일단 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 믿음을 주는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 사람이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10. 리뷰에 책의 내용을 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로 대학을 푼다]는 필자의 의도는 전달되었으리라 생각든다. [논어로 대학을 푼다]는 말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면 이렇게 바꿔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논어와 대학을 함께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