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s Review |
한국사를 준비하고 있던 그에게서 격양된 목소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게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하며 탄식을 금치 못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멍하니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그가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해방과 동시에 분단국가로 나뉘게 되었던 그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김구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간발의 차이로 역전되어 버린 새로운 시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나 역시도 고등학교를 재학했던 때에 ‘국사’라는 과목을 배우긴 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국사(하)에 속했던 근대에 대한 내용은 머릿속에 잔재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정말 그야말로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어린 아이들도 알고 있다는 수준만을 알고 있는 정도인데 매번 공부를 좀 해 봐야지, 알아봐야지, 란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그게 또 생각처럼 쉬이 행동으로 따라주질 않는다. TV를 켜기만 하면 독도를 제 땅이라 목놓아 놓고 있는 일본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울분만을 안고서는 그들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을 과거를 바꾸는, 그 파렴치한 일을 감행해서라도 그들의 역사를 정당화 하려는 마당에, 이 나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그들의 만행을 목도하고 있을 수 많은 없지 않을까. 이 무지를 당당히 고백하고 다시금 배워 그들 앞에서 ‘우리’를 당당히 외치기 위해서는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리하여 이전에도 몇 번 마주했던 이덕일 저자의 이 책을 골라 집었다. 공자가 <춘추>를 짓자 천하의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고 전하고, 고려인 이규보가 <동명왕편>서문에서 “국사는 세상을 바로 잡는 책”이라고 말한 것처럼 역사학은 강한 가치지향성을 지닌 학문이다. 그러나 역사학의 비판은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토대 위에서 사회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모색이어야지 특정 정치집단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로잡는 도구라고 우기는 것일 수는 없다. –본문 팩트 자체를 조작하거나 이러한 팩트의 일부분만을 설명하는 통에 국사 인식체계가 신민사학이 되어버렸다는 저자의 주장에 따라, 그는 거대한 굴레 속에서 가려져 왔던 전반적인 틀을 제대로 재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이 거대한 이야기들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 이상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고 이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역사적 배경들은 처음 접하는 것들도 꽤나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단체들의 등장이 거듭될수록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에 대해 대변해 주는 터라, 묵묵히, 그러나 이번만큼은 정말 열심히 읽어 내려갔다. 마트베이 김은 김알렉산드라의 전기에서 백위군 장교가 “조선인인 그대가 왜 러시아의 시민전쟁에 참가했는가?” 라고 묻자 “나는 볼셰비키다…… 나는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는 경우에만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답하고 총살당했다고 전한다. –본문 일제 식민지 시대에 광복을 위해 수 많은 이들이 자유를 외치는 우리의 선조들은 ‘자국에서 자국의 자유를 외쳤다’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수 많은 목숨을 내 놓아야만 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는 사회주의의 움직임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태동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진화론이 일제의 식민지를 합리화하기에 사회주의 사상으로의 접근이 도모되었으며 이들은 계속 다른 이름으로 사회운동의 주력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은 그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그리고 한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회주의가 아닌 코민테른의 시각으로의 접근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운동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낙화하게 된다. 이들의 인생 궤적을 이해하려면 어린이들을 전쟁기계로 만들었던 일본의 육균유년학교를 주목해야 한다. 13~14세 어린아이들에게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시키던 비정상적인 교육시스템이 육군유년학교였다. (중략) 급기야 그는 1901년 동급생과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 퇴학당하고 말았다. 인간이 갖는 자연스러운 감수성을 모두 억제하고 전쟁기계로 변모해야 살아남을 수 있던 육군유년학교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사건이다. –본문 일본의 악행은 그들이 아무리 그 만행을 덮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가미가제 특공대의 군인들의 대다수는 장병이기 보다는 소년병들이 대다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세뇌를 받았겠구나, 라고 가늠하고 있었는데 이 책자에서 만나게 된 그들의 행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자국의 아이들에게도 이럴지 인데 그들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게 하는 행태는 이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아니 세상에 흔적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수였으며 그리하여 만천하에 알려진 ‘장작림 폭살사건’은 그럼에도 유야무야 하며 묻혀 버리게 된다. 그들에겐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패가 되어버린 조선인은, 더욱이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서도 반드시 없애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공립신보>는 <민영휘의 말로>란 제목으로 “평안감사 재직 때 토색질한 수만금에 대해 억울하게 빼앗긴 백성들이 민씨 집에 답지해서 빼앗긴 물건을 환수하려 하므로 장차 가산이 탕패될 듯하다더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재빨리 일제로 말을 갈아탄 민영휘를 백성들이 이길 수는 없었다. 이소사의 소송도 2심에서 민영휘가 승리했다. 일제 <통감부문서>에 따르면 일본 왕가의 시조라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신봉하는 신궁봉경회의 고문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본문 일제의 만행 속에 어처구니 없이 함께 뛰노는 망둥어가 있었으니 바로 일제의 우산 속에 들어간 친일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제 나라를 팔아 넘겼다는 죄책감 따위는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수밖에 없는 순간 순간 속에 있는 이웃들의 앞장서서 핍박하며 그들은 더욱더 호위호식 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고리대금은 물론이거니와 농지 강탈을 하면서 조선의 농민들을 농락했던 일제와 함께 손을 잡으며 현재에도 여유로운 이들만이 그라운드를 누빈다는 골프를, 그 당시,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들은 웃으면서 공을 치고 있었다. 식민지 한국의 상류 사회 모습이라고 보여주고 있는, 총독부와 함께 나란히 웃으며 골프를 치던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데 이 곳에서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 웃음 소리가 오늘날까지도 뿌리 뽑히지 않고, 음흉하게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國語를 하는 이들에게 ‘골수에 박힌 민족의식을 가진 놈’이라며 고문을 가하던 그 친일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지금 어느 나라의 말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어 진다. 그토록 그들이 찬양해 마지않던 그들의 말을 쓰고 계신지, 이글이글 타오르는 담뱃불을 떠안고 가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떻게든 이 나라를 손에 넣고 싶어하던 일본은 태평양 전쟁으로까지 그 규모를 키워가지만 단 한 평의 영토로 얻지 못하고 패망의 길로 가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8월 15일 중국 서안에서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라고 토로했다. –본문 그들의 패망과 항복소식은 우리에게 더 없이 기쁠 이야기겠지만, 이들이 흰 깃발을 내 흔드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우리 손으로 조국의 광복을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 악연의 고리는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그들의 늪까지 함께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광복이 된 순간부터 또 다시 권력의 눈치게임이 시작된 당시의 모습은 기쁨이라기 보다는 혼란 속에서 숨가쁘게 지나가고 있다. 드디어 목도하게 되는 남북의 점령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야기는, ‘이게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게 되면서 그 순간 우리의 역사는 멈춰있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읽어낸 책을 덮는 순간 정신이 또렷해 지는 느낌이다. 왜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물론이거니와 장막 속에 가려져 있던 실체를 마주하고 나니 왜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숨기려고 했던 것인지도 알게 된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역사에 대한 바른 앎, 이 하나를 위해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
아르's 추천목록 |
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