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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금지된 모든 책의 역사

글쓴이: 처음처럼님의 블로그 |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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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헨리 제임스의 미스터리 소설 <나사의 회전; http://blog.yes24.com/document/7459219>은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돌려가며 하는 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이야기꾼 친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방과 후 학교 뒷동산에서 놀다 지친 친구들을 모아 학교 우물에서 나온다는 귀신 이야기를 연속극처럼 이어가곤 했습니다. 이야기는 수학여행길의 어느 날 밤, 경주의 한 여관방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날 새로 듣게 된 동무들을 위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효과음까지 넣어가며 띄운 음산한 분위기에 다시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한다면서 이불장에 숨었던 동무 하나가 결국은 공포에 질려 튀어나오는 바람에 동무들이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한번 들은 이야기를 잘 전하는 이야기꾼이 있기 마련입니다. 피터 매칼리스터는 <남성퇴화보고서; http://blog.yes24.com/document/6457361>에서 서사시를 구전하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구슬라르(1현 현악기인 구슬라로 반주하며 이야기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는 세르비아의 가수 집단으로 서사시의 구비전승을 지켜온 사람들)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구슬라르 집단은 20세기까지도 이어졌다고 하는데, 최후의 구슬라르 가운데 도축업을 하는 아브도 메데도빅씨는 문맹인데도 불구하고 59개의 서사시를 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외우는 서사시를 글로 옮기면 35만 476행에 달하는 놀라운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메데도빅씨는 처음 듣는 노래도 빨리 배우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2294행의 시를 단지 한번 듣고서 자유자재로 불렀을 뿐 아니라 원곡의 서술에 충실하면서도 6313행으로 늘이기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음유시인이라고 할 구슬라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늘 이야기할 베르너 풀트(Berner Fuld)의 <금서의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책을 불태워도 한번 읽고 기억해서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 있는 이상 금서의 효과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쓴 베르너 풀트는 독일의 유서깊은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서 문학사와 예술사를 전공하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전기와 사전, 일화 등을 저술해왔습니다. 다음 국어사전에는 ‘금서’란 “읽지 못하도록 출판이나 판매를 금지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대부분의 이념서적들을 금서로 묶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부작용(?)을 가지고 오더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념서적은 아니었습니다만, 당국이 금하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익명으로 썼던 분이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으니 이제는 문제가 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공개합니다. 사실 금서로 인한 진짜 큰 부작용은 해당 책의 관점을 지지하는 매니아들만 공유하고 그런 생각을 키워나갈 뿐, 그 책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들이 커나갈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금서사건으로는 중국의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기억합니다. 자신의 폭정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을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민생과 직결된 의약, 점복, 농업에 관한 것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심지어는 유생(儒生)들까지도 생매장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사건을 진시황만 저질렀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금서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까지도 수용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다스리던 태평성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는 그런 일을 원천봉쇄하려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지도자도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책을 쓰지 못하게 하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겠는데, 실제로는 폭압적 조처에 반발하는 지식인들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요한 아담 베르크가 1799년에 쓴 <책읽기의 기술>의 한 대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책을 금지하는 일은 금지다. 그 일도 정당하다면 세상에 결실을 거둘 만한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 중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전달하고 그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발언권에 대한 침해는 그것이 무엇이든 금지다.(5쪽)” 주목할 점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이라는 단서 조항일 것 같습니다. 사실 금지된 책을 쓰는 일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우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금서의 절멸을 막기 위해 빈번히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무명의 남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책뿐만 아니라 그들의 용기에 더 큰 신세를 졌다.(7쪽)”라고 감사를 표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금서 조치를 내리는 주체는 권력을 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의외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금서의 역사>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또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한때는 금서로 묶어 탄압을 받은 것도 적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심지어는 금서로 묶인 이유가 얼토당토하지 않다거나, 혹은 금서로 묶이는 바람에 오히려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노이즈 마케팅에 해당된다고 할까요?


 


생각 같아서는 권력자로부터 탄압을 받은 작품을 화제로 삼을 만도 한데 저자는 작가 스스로 금서로 묶었던 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께서 2010년 입적하시면서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분의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무소유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미 세상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생각들을 회수할 수 없다면 출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글쓰는 사람이 써둔 글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첫머리에서 인용하고 있는 영국의 화가 겸 시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사랑하던 여인이 죽자 슬픔에 휩싸여 자신이 써놓은 모든 시의 유일한 원고를 상자에 넣어 그녀의 무덤에 같이 묻었지만 세월이 흘러 슬픔이 엷어지게 되자, 그녀의 무덤을 도굴하여 원고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도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태워버리곤 하던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편지를 통하여 “내 모든 유고 … 일기, 원고, 편지”를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데,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브로트 덕분에 우리들은 카프카의 명작 <성>, <소송>, <실종자> 등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의 사적 소유의 범주라고 할 원고를 스스로 없애는 경우, 작가의 팬 입장에서나 혹은 작가를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두 번째로 고른 금서의 영역은 종교계입니다. 로마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의 금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주옥같은 고전이 쏟아져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인기 없는 작가들을 단호하고 가차 없이 축출하고 작품까지 폐기하도록 한 조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특히 기원전 12년 말에는 정치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2,000권이 넘는 신탁서와 예언서를 압류해서 불태웠다고 합니다. 군사령관으로서 외부정치를 결정하는데 있어 민중들이 신탁서나 예언서를 바탕으로 이론(異論)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강남 번화가에 가면 타로점을 비롯하여 개인의 미래를 알려주는 점을 치는 카페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미래를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뿌리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교회 역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과 예언을 반론 없이 신도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 발전 혹은 학문을 빙자한 점성술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어 이런 내용을 담은 책들을 탄압하기에 이르렀는데, 세속의 정부가 교회에 동조하게 된 것은 앞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예처럼 점성술은 때로 정치적 예언을 다루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움베르코 에코는 <장미의 이름; http://blog.yes24.com/document/6730839>에서 금서를 숨기는 이상적인 장소로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에코는 수도원에 있는 도서관이 심지어는 수도사들마저도 읽어서는 안되는 금서를 감추는, 일종의 정보를 왜곡시키는 곳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 장서관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 그 서책을 묻어버리고 있구나.(장미의 이름 2권, 712쪽)” 이처럼 금서를 숨겨 독자로부터 차단하는 방법도 있지만, 저자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서를 몰수하여 태우는 분서(焚書)라는 적극적인 정책적 행위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도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1920년 저급한 에로스 문학을 파기하는 대신 독자로부터 ‘분리’보관하는 정책을 채택한 독일 바이에른주 국립도서관장리 “에로스 문학 서적은 문화의 단면에 대한 철저한 시대사적 평가를 위해 여전히 큰 가치가 있고, 어떤 서적은 예술적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므로,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분리’구역에 보관되어야 한다.(91쪽)”라고 한 견해와 함께 “각각의 서적들이 금지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검열연구가들의 견해까지 인용하면서 이러한 파괴적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금서의 이유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궁금한 사항입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영혼의 구제와 권력 유지에 대한 근심이 교회와 정부에 의하여 자행되어 온 금서의 근거였는데,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진보를 위하여 봉건의 잔재를 지우려고 관련된 책들을 불태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흑인노예들이 성경을 읽게 되면 노예제도에 반대하게 될 것을 우려한 미국 대륙의 노예소유주들의 성경읽기 반대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히틀러의 제3제국은 단지 유태인에 반대하기 위하여 금서조처를 내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시민운동가 앤서니 컴스톡은 사회의 도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책들을 금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여, 지금도 대부분의 국가에 그 흔적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한편 저자는 체계적으로 금서를 해온 대표적 집단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들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1559년 금서목록을 처음 발표하였는데, 일종의 블랙리스트라고 할 금서 목록은 1544년 소르본대학의 신학부가 여섯 가지의 위험한 도서목록을 발표한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파스칼, 데카르트, 칸트, 프리드리히 대제,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하이네, 발자크, 레오폴드 폰 랑케,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등, 로마의 금서목록에 올라 있는 서적을 보자면 마치 세계문학 사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154쪽)”고 적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찰스 다윈의 저서 <자연선택에 따른 종의 기원>은 로마 가톨릭의 금서목록에 올라있지 않다고 합니다. 교리로 하고 있는 창조론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진화이론을 지지하는 과학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기독교계와는 달리, 로마 가톨릭은 진화론과의 충돌을


 


피하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불거진 진화론과 창조론의 갈등은 미국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1925년 테네시 주 하원은 침례교도인 의원의 제안으로 생물수업시간에 창조설에서 벗어난 학설을 가르칠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진화론과 창조론은 법정에서 맞붙기도 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제소된 교사를 변호한 클라렌스 대로가 ‘학문 대 믿음’이라는 법정전략으로 승소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어쩌면 최근까지 남아있는 금서대상은 외설시비에 걸린 책들일 것 같습니다.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이유로 금서판정을 교묘하게 피해갈 여지가 있습니다만,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나누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어 읽는 흐름이 깨지기도 합니다만, 역시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금서의 비밀을 캐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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