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교수가 쓴 책은 전부는 아니래도 대부분 읽는 편이다. 진보고 보수를 떠나, 그가 말하는 경제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일정부문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전작(前作)인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그가 주장한 내용들이, 지금의 현실에서 대부분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사실 나 자신이 보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진보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한국적 현실을 도외시 한 것인지, 그리고 과거 10년의 진보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하는데, 심적으로 편안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것을 아니라고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장하준교수의 글을 읽고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제대로 알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러기에 이 책을 보면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꼈던 생각도 접어두고, 끝까지 읽지 않았나 싶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된 복지에 대한 담론은 이제 대세가 된듯하다. 또한 정치권이 이들 담론에 가세하면서,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재벌개혁이나 경제 민주화라는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담론이 안고 있는 모순과 허구성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와 진보를 착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미국에서 말하는 리버럴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보란 리버럴, 즉 자유주의가 만든 시장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세력을 통칭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시장주의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의이다. 그런 시장주의 뒤에는 국제금융자본이 버티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강화된 시장주의는 모든 통제를 하지 말라는 것, 모든 것은 시장이 알아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국제금융자본이 통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은 주주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주자본주의이다. 그들에게 국가경제고, 국민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악(惡)이고, 규제고, 관치가 되는 것이다.
흔히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민주적 통제는 누가해야 할까? 그것은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장하준교수는 말한다. 또한 국가는 금융자본이 주주자본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신용파생상품과 투기자본 통제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국가가 이들 금융자본을 통제하는 것은 관치가 아니라, 국가의 임무라고 말하면서, 왜 이것이 관치라고 비난 받아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다. 진정으로 공정한 경제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들 뒤에 있는 국제금융자본을 규제해야 되고, 재벌들 위에 있는 주주자본 시스템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이나 자본주의는 공정을 실천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시장주의자들이나 진보 경제학자들 모두 주주자본주의나,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공기업 또는 금융기관의 민영화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행하는 논리는 모두가 선(善)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재벌개혁도 그 폐해를 잘 따져 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얼핏 들으면 재벌을 옹호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재벌로 통칭되는 기업집단과 재벌 가문을 분리해서 생각해야지, 무조건적으로 기업집단을 악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우리 경제가 전자나 자동차부문에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정부문 기업집단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는 말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결국 지금 담론화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나 재벌해체란 결국 주주자본주의를 하자는 것이고, 그것은 그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 주주, 정규직 직원, 사모펀드를 위시한 국제금융자본에는 좋은 것이 틀림없지만, 비정규직, 하청업체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는 한숨과 불안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장하준교수와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이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경제민주화란 국가에 의한 금융자본 및 재벌을 국가경제에 맞도록 통제하는 것이고, 재벌개혁이란 재벌의 실체를 유럽에서와 같이 법으로 인정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주주자본주의자 들에게는 불리할 것 이기에, 금융자본을 비롯한 실체들은 기를 쓰고 반대하겠지만 말이다.
시장주의,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 한미 FTA등, 난마처럼 얽혀있는 외부 요인들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일 뿐이다. 장하준교수는 이것들에 대한 해답으로 복지국가를 들고 있다. 그가 말하는 복지는 미국식의 선별적,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이다. 현대 경제의 발전은 복지국가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북유럽 국가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 복지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구매로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보편적 복지의 실현만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 교육, 부동산등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자유주의인가, 더 나은 자본주의인가? 월스트리트인가, 탈(脫)월스트리트인가? 재벌해체인가, 재벌 책임 강화인가? 노동유연성인가, 고용 안정인가? 그리고 선별적 복지인가, 아니면 보편적 복지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