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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글쓴이: 도서실의 바다 | 201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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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은 약속된 친구처럼 언제나 재밌고 즐거운 그런 존재였다. 평소에 일어나기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8시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tv앞에 자리하고 앉았던 나였다. 그것을 보다가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어찌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지. 성장하면서는 만화책으로도 그리고 인터넷 등등을 통해 끊임없이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있었다. 그런 애니메이션이 인문학과 만났다. 그야말로 새로운 발상이 아닐까 싶다. 딱딱한 인문학을 애니메이션과 접목시켜 저자는 최고의 감상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원피스


  애니메이션을 접한 이들이라면 아마 이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로 원피스식까지 나왔으니 가히 원피스의 명성은 알 수 있다. 원피스는 현대인의 삶을 매우 적합하게 담아내고 있다. 조직을 형성하면서도 그 안의 개인은 각각 꿈과 목표가 다르다. 이건 현대인의 개인성을 철저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그것이 직장이든, 동아리든, 학교든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꿈과 목표는 같지 않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목표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서 말하는 공동체를 위한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공동체에 담겨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 시대를 '액체의 시대'라고 칭했다.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원피스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철의 연금술사


  강철의 연금술사도 매우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에드워드와 알폰스 형제는 죽은 엄마를 살리기 위해 연금술의 금기를 어겨 몸의 일부(형 에드워드)와 전체(동생 알폰스)를 잃어버린다. 그 몸을 되찾기 위해 국가 연금술사가 되고 여행을 하면서 국가 즉 세계의 음모와 맞물리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이들은 형제다. 즉 우애를 얘기하고 싶다. 협소한 의미로 형제의 우애를 이야기하지만 크게는 인류적인 우애를 이야기한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변인물들과 그들의 여행담을 보면 아마 '아, 이런 이야기구나!'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존감을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존감 뿐 아니라,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깊은 감정이다.


 


  충사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벌레의 세계. 그들과 소통이 가능한 충사 깅코의 이야기다. 즉 한 발은 우리와 같은 현실 세계에 딛고 한 발은 벌레 세계에 딛고 살아가는 깅코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삶에도 비유 가능하다. 저자는 이것을 현실 세계와 자신의 세계로 이야기 한다. 이것은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두 세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현명함을 필요로 한다. 충사인 깅코는 섣불리 흥분하는 적이 없다. 아마 아예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넓게 보려고 노력한다. 아마 그것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그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세계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다가 가진 깊고 넓은 잔잔함처럼,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진격의 거인


  요즘 핫이슈가 되었던 만화. 탄탄한 스토리와 신선함. 단지 그 매력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참 안타까운 만화다. 진격의 거인은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그것은 바로 이기주의다. 요즘도 얼마나 지연, 학연, 경제적 여건 등에 얽매여 이기주의를 발산하고들 있는지 지연, 학연도 없고 돈도 얼마 없는 중산층들은 서러워서 살겠는가.


  주인공 에렌을 살펴보자면 그는 마치 근대적 산물과 같인 사회를 위한 영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헌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개인의 의지에 의해,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 절대적인 현대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개인주의 성향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개인 자유 의지와 함께 거인으로 부터 인류를 구하고 함께 하는 인류애가 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의식해야 할 점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현대인의 특징이나 그것은 타인의 배려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루 밑 아리에티 등등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쏟아낸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세계는 늘 환상과 동화 그리고 순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세계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협력자와 같다. 참신한 그의 세계는 언제나 열려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고 꿈꾸게 만든다. 우리가 여기서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열린 꿈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고 또한 의무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어떻게하면 성공할까! 바로 그것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꿈이었을까? 우리는 열린 자세로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꿈을 꿔야 행동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접하지 않았기에 내용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말해주기를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관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을 우리는 가만히 바라보는 것.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아, 방학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혹은 '아, 휴가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라고 말이다. 그렇게 보내기엔 그 시간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 살고 있다. 이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인문학은 나로 하여금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사실 몇 장 넘어 갈 때는 힘겹기도 했다. 인문학은 왜이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읽어야지하면서도 손과 머리는 자꾸 멈춘다. 그런데 이번은 참 즐겁게 회상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도 생겼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님의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내 삶을 생각해보면서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점에서 저자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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