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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나를 찾아 나선 길

글쓴이: 책읽는 사랑방 | 201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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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느리게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걷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의 저자 정진홍은 작년 봄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셨다. 그는 프랑스의 생장을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리고  서쪽 끝 피니스테레까지 장장 900여 킬로미터 47일에 걸쳐 걸었다고 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2000년 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예수 사후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을 좇아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별반 소득 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헤롯 왕에게 붙잡혀 순교해 그 유해가 죽어서 다시 간 길이고 그가 묻힌 곳을 향해 1000년이 넘도록 숱한 이들이 한 발 한 발 걸어서 간 길이다. 그 길은 누구와 함께 가는 길도 아니고 그 누구와 경쟁하며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홀로 고독하게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 수위를 밟고 있음을 자각하며 가야 하는 길이다.(62쪽)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하루하루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왜일까? 그 "길을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그 순간순간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됨 없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리라. 또한 그 어떤 시선으로부터도 해방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그 어떤 덧칠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자기 자신과 대면하면서 내 속이 울면 우는 대로, 내 안이 웃으면 웃는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스스로를 기꺼이 용납하고 스스로의 그 어떤 것도 그저 내버려뒀기 때문이 아닐까. 한 마디로 “렛 잇 비(Let it be!)"했기에 행복했던 것이다.(113쪽)


 


나는 이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가 내용이 흥미롭고 글맛도 운치가 있어 이내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저 난 어렴풋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아가는 길이 세계 3대 성지 순례길의 하나라는 것,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가고 싶어한다는 것 정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진홍을 통해 그 길을 함께 걷게 된 셈이었다!


 


저자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고 사람들들, 들꽃과 들풀들, 사계절같는 날씨와 풍경들에 참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힘들어도 웃음짓고,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것에 꺼리낌이 없다. 손수레를 끌고 가던 세르주, 안나 할머니, 옷수선집 깔보 아저씨, 천국의 수프를 끓여준 베라…. 그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느낀 감동을 엽서에 적어 딸 지한에게 부친다.

저자는 페스트로 폐허가 되었다가 되살아난 사리키에기라는 작은 산골 마을도 지난다. 거기서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돌고 있는 풍경에서 저자는 돈키호테와 일체가 된다. 시라우키에서 매트리스를 구해 등이 시려서 잠 못 이루는 밤과도 작별을 고한다. 비바크(biwak, 텐트 없이 야영)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아침에 매트리스를 접으면서 새삼 자신이 누웠던 땅의 넓이가 채 반 평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묻는다. “사람에게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에스테야에서 만난 프란체스코는 1년 6개월 동안 순례 여행 중이었다. 그는 남루하지만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저자는 그에게서 우리 삶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족함에서 온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렇게 순례에 나서면 여행길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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