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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주었으면 좋겠어?

글쓴이: 책읽는 사랑방 |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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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어?”
린지는 아서 오프의 집에 가려고 원피스를 입는다. 린지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처음 본다. 학교에 갈 때는 청바지나 운동복을 입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하려고 한다.


이 소설은 리즈 무어가 썼다. 그녀는 작가이자, 음악가이며 교수다. 만만치 않은 이 모든 일들을 해내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출판사 소개를 보니 “뉴욕 특유의 세련된 절제미를 보여주며 마치 한 편의 악보처럼 유려하게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력과 결부시킨 셈인데, 실제로도 그랬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게다가 개운하기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난 이럴 때면 항상 생각한다. 왜 우리 작가들은 이런 작품을 쓰지 못하는 걸까? 아직 덜 익어서?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나는 우리 소설에서는 항상 작가의 불안감이 배인 냄새를 맡는다. 어딘가 쫓길 때 흩어지는 땀 냄새같은. 이해도 된다, 하긴, 이 세상의 온갖 좋은 소설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작가들은 얼마나 힘들소냐 이 말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셋이다. 아서 오프, 샬럿 터너 그리고 켈 켈러. 우선 아서 오프를 보자. 이 남자는 교수였다가 샬럿과의 데이트가 이슈가 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과 애정 관계에 휘말렸다고 판단한 대학측은 윤리위원회를 소집하여 그를 회부한다. 하지만 아서는 출석 통지서를 받고 아예 출근하지 않는다. 샬럿 터너는 말없이 아서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둘이 만나지 근 20년 만에 전화가 연결된다. 한편 켈은 샬럿의 아들. 과연 이 세 사람은 어떻게 풀려질까. 여기에 소설의 묘미가 있다.

이들은 한결 같이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샬럿 터너는 거의 매일 잠시도 쉬지 않고 술을 마시는 알콜 중독이다, 아서 오프는 음식 중독으로 고도 비만이다. 켈 켈러는 야구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야구 중독이다.

왜 이들은 중독이 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저자는 그 원인을 본질적인 ‘외로움’에서 찾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교감을 나눌 대화 상대도 없고, 그렇다고 지친 심신을 의지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가 이들을 돌보는 것도 아니니, 결국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물화된 대상이다. 타인과 소통할 수 없으니 점점 고립된다. 아서 오프와 살렷 터너는 거의 집에 틀어박혀 외톨이로 지낸다.

그렇다면《무게》의 원제 ‘Heft'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어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짐이 되는 것,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복잡하고 힘겨운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어는 진지하고 심각하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앞의 두 가지 의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저는 이 책 인물 모두가 나름의 짐을 지고서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삶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했던 모든 결정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떠안은 문제 때문에 마음으로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등장 인물들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그 대상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고, 자신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을 대상에 심취하고 빠져든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기 짝이 없고, 인생의 패배자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해진다. 어느새 등장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낀다. 나도 그들처럼 어딘가에 중독되어 있을지 모른다.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다. 아니 중독이 아니어도 이와 비슷한, 이 빠진 그릇 같이 묘한 불완전성을 느낀다. 내 자신이 진정 원하고 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의 시각과 평가 속에 왜곡되고 고통 받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향해 소통하고 발을 내딛는 극적 계기는 결국 자신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비롯된다. 아서에게는 율란다가 있었고, 켈에게는 린지가 그랬다. 이들을 중개로 해서 아서와 켈은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하고, 타자와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마침내 켈이 아서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이 소설에서 다룬 무게와 갈등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정점이다. 그래서 나는 린지가 길을 나서는 켈러를 위해 기꺼이 원피스를 입는 린지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아 내게도 그런 사람 있었으면 해.

그렇다. 우리 인생의 ‘무게’는 기꺼이 함께 나눌 가족 혹은 타인에 의해 덜어진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숨어들기만 하는 움츠림은 결코 자기 자신도 구할 수 없다. 다만, 일시적인 도피일 뿐.

내가 힘든 길을 나설 때나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의지가 되어 주면 좋겠다.

“정말 내가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어?”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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