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서점에서 꽤 인기를 차지한 외국 소설중 두 작가가 기억이 난다. 검정색 표지로 출판된 로빈 쿡과 존 그리샴의 소설이었다. 로빈 쿡은 의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존 그리샴을 법정 소재를 한 소설을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하였다. 로빈 쿡의 작품은 <돌연변이>가 기억이 나고, 존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를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입시라는 환경 때문에 책 표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모습만 뇌리에 남은 채 잊고 있다가 최근에 우연히 <이노센트 맨>이라는 책을 보고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며 읽게 되었다.

 1982년 12월 어느날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도시인 에이다에서 데비 카터라는 젊은 여자가 집에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강간 도중에 발생한 질식사로 숨졌는데, 경찰은 근처에 살던 론 윌리엄슨과 데니스 프리츠라는 청년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석연치가 않다. 그들이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글렌 고어가 살인이 발생하던 날, 데비 카터가 론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증언을 하면서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으며, 데니스 프리츠는 론과 잘 어울리던 사실로 같이 범죄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데니 카터가 살해된 장소에 대한 초등 조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딱히 론과 프리츠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기에 그들을 심문하면서도 기소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되는데, 드니스 해러웨이라는 여자의 실종 사건이었다. 경찰은 이 여성이 실종되어 살해되었으리라 판단을 하고 수사를 하던 도중 3명의 용의자를 지목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도 경찰은 별다른 증거가 없이 단순히 일방적인 증언으로 두명을 잡아들이고, 용의자가 극구 범죄를 부인하지만, 강압적인 자백 강요를 통하여 억지 자백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이들이 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의 밀고(이 또한 증명할 수 없는 일방적인 것이었다.)로 인하여 그들은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용의자로 굳어져버리고 심지어 종신형까지 선고받는 사건이 발생한다.

 론과 프리츠는 경찰의 지속적인 조사로 인하여 론은 정신 이상 증세가 더욱 악화되고, 프리츠는 과거 경찰이 들추어낸 마리화나 소지로 인한 이력으로 직장까지 잃게 되는 신세가 된다. 이후 경찰은 그 두명을 범죄자로 몰기 위하여 조작으로 의심되는 증언과 자백 강요로 괴롭힌다. 결국 데비 카터 살인 사건이 일어난지 4년만에 이들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론은 정신병 증세로 인하여 자신의 재판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또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실수와 무능으로 인하여 유죄를 받게 된다. 따로 재판을 받은 프리츠도 증거도 없고, 허술한 증언만으로는 유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유죄를 선고 받는다. 론은 사형까지 구형되어 사형수들을 모아놓은 감옥으로 이송되고, 거기에서도 그는 계속되는 정신이상 증세의 고통속에서 무죄를 호소한다. 

 론의 누나들의 도움으로 론은 항소를 시작하고, 프리츠 또한 스스로 교도소에서 법에 대한 공부를 하던 도중 TV에서 인기를 끌던 무죄 프로젝트 프로그램과 접촉하여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론과 프리츠의 항소를 맡은 변호사들도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된 점과 빈약한 증거, 그리고, 시간이 흘러 DNA 기술의 도입에 따른 증거 확보 통하여 항소를 진행한다. 결국 검찰에서 강력한 증거로 삼았던 모발 비교는 신빙성이 떨어진 것으로 증명이 되었고, 그들이 내세운 증언도 역시 신빙성이 없음이 추가적으로 드러난다. 결정적으로 데비 카터의 몸에서 나온 범죄자의 DNA를 다시 분석한 결과 론과 프리츠가 아닌 제 3의 인물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들은 수감 생활 10여년이 지나서야 무죄로 풀려난다. 

 그러나, 이들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아직까지도 경찰은 그들은 잠재적인 용의자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주위 이웃의 시선들도 곱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들을 유죄로 몰아넣은 검찰과 경찰도 역시 그들에게 사죄를 하거나 미안한 의식도 보여주지 않는다. 론은 점점 정신병 증상이 심해져가고, 프리츠는 딸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 조용히 살아가려고 애쓰게 된다. 결국 그들은 검찰과 경찰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여 얼마간의 보상금을 받지만, 론은 정신병 증세 악화와 술로 인한 간병련이 심하게 진행되어 결국 사망하게 되고, 프리츠는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처음 책을 선택하였을 때, 법정 스릴러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이노센트 맨>은 실제 주인공인 론과 프리츠의 이야기를 실제로 써낸 논픽션 소설이었다. 말도 안되는 경찰의 초등 수사와 용의자에 대한 자백 강요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던 미국의 1980년대 중반의 모습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놀라웠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앞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에서 얼마되지 않은 과거에 이런 부당한 모습들이 가득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드라마 CSI를 보면 최첨단 과학기술을 통하여 논리적이라 합법적으로 범죄를 수사하는 이야기를 보아왔던 터라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존 그리샴의 <이노센트 맨>은 법치국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부조리한 모습을 다 보여주는 듯하다. 론과 프리츠가 겪은 경찰의 강압적이고 비논리적인 수사, 이에 편승한 검찰의 범인 몰아가기의 모습, 빈자에 대한 법의 형평성 문제, 감옥에서의 인권 문제, 사형수 중에 억울하게 사형된 사례 등등. 이러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실제 인물의 이름과 사진까지 첨부(다만 범죄 피해자는 가명으로 사용)하면서 과거 그러한 미국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론과 프리츠의 경우에는 그들이 무죄라고 믿고 항소하고, 무죄를 이끌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다소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도 전해주고 있다.

 상당히 두툼한 책이었는데, 존 그리샴은 원한다면 5000페이지로도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는 <이노센트 맨>. 처음에는 법정 스릴러를 기대하고 읽었기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초기 사건의 발생부터 론과 프리츠의 배경이 너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검경이 실수를 저지른 장면도 역시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솔직히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존 그리샴의 논픽션 소설임을 미리 알고 선택하였으면 한다. 책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독자가 어떠한 목적으로 책을 선택하냐에 따라서 책에 대한 평가와 몰입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로 기대하였던 나로서는 방향을 잘못 잡아서 당황한 책이었으나, 다카노 가즈아키가 <13계단>이라는 소설로 일본의 사형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존 그리샴의 <이노센트 맨>은 미국의 그러한 문제점을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돌직구를 날린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