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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으로 공존하는 시간『밤 열한 시』

글쓴이: 30 Seconds To Mars ♥ |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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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건 사치를 누리는 시간이다. 한 권의 책에서 사계절을 보고 몇 해를 보고 삶의 면면을 바라보는 시간인데 어찌 사치스러운 행위가 아니겠는가. 이 사치스러움이 황경신 작가의 『밤 열한 시』에 고스란히 내재해있다. 가을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며 누리고 있는 계절은 한층 내밀하게, 한 해를 넘겨야 돌아올 계절에는 반가운 인사를 전하는 기다림의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사치를 누리는 시간은 단연 그녀가 참 좋은 시간이라 말하는 밤 열한 시대이다. 때로는 오늘의 이른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내일을 위해 충전하기 적합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차단막을 드리운 채 귀머거리가 되어도 좋을 그런 시간. 그 시간에 그녀의 책과 함께라서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계절의 변화에 유독 민감해진 나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던 그녀의 글이다. 적당히 차갑고 적당한 간절함을 담고 자신을 어디까지 내보여야하는지 눈치가 빠르며 적당히 글을 쳐낼 줄 아는 그녀더라. 거기까지면 충분했던, 여기까지면 흡족했던, 그런 그녀의 글이었기에 계절 따라 변주되는 자신의 심경이 곧 사람의 심경인 것은 당연했다. 관계와 변화, 진실과 거짓, 절망과 희망, 사랑과 이별, 믿음과 체념 같은 삶의 무수한 질곡 안에서 경계선이 될만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알면서도 이성과 감성은 영 따로 놀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다. 내 삶에서 정 놓아버릴 수 없다면 잠깐 머물러도 나쁘지 않은 거라고, 그리고 다시 나아가면 될 거라는 의지의 인사를 살포시 건네고 돌아서는 그녀, 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절대적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삶에 있어 절실함으로 다가왔던 게 있었던가.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꿈'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면 끝나버리는, 꿈으로만 존재하고 꿈으로만 생명을 부여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할 부질없는 것 같을 때 말이다. 근래...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나의 시간은 엇박자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만큼의 절반에 미치지도 못한 채 모든 게 어긋나기만 할 때는 정말 진이 다 빠진다. 특히 가을에 접어들면서 예상에 어긋나는 일이 많았고 시원스레 해결 나는 일이 없었다. 자연스레 해결 나야 할 일 외에는 무감해졌고 해결 나야 할 일에는 예민해진 내가 있었다. 웬만해서는 피곤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나지만 피곤이라는 무게를 곱절로 업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하고, 대답 없는 메아리만 공허히 울리던 시간이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두자 싶었다. 뭐든 억지로 결과를 보려고 해보았자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일 테니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안개만 자욱할 때, 때로는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을 일이다. 억지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절망의 올가미는 나를 더 옥죄려들 테니. 가끔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삶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려도 괜찮을 일이니까,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천성적으로 우울과 어둠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지극히 외향적인 성격은 못되지만 타인에게서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조용한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 밝음을 추구하려고 하기도 한다. 안다. 무엇이든 적절하게 공존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왕이면 어둠보다 밝음을 한숨보다 웃음을 추구하려고 한다. 타인의 어둠과 슬픔이 전염성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우울함을 멀리하려는 것도 같다. 너무 쉽게 물들어버리기 때문에, 밝음보다 어둠의 색채가 짙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기본 성격은 어디 안 가는지 나는 밤이 좋다. 좋은 사람과 함께 나와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라면 더욱 좋겠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간은 지금 내가 누릴 수 없지만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여유가 있어서 괜찮다. 숫자 11. 밤 11시. 편한 시간이긴 하다. 내 감정도 롤러코스터의 가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단조로움의 극치로 치닫는 시간이 밤 열한 시 아닐까. 그 시간에 만난 책 속에는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관조적인 여인의 삶과 목.소.리가 있었기에 시간의 자유와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으리라.


 


누구라도 황경신 작가가 주요 화두로 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심 가는 게 당연하다. 삶은 만남의 총체이자 인간은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살아가게 될 테니까. 『밤 열한 시』를 읽으며 기억의 끄트머리에 매달려있던 낯선 이가 떠올랐다. 그게 언제였던가. 꽤 오래전으로 기억한다. 친구를 만나고 막 집으로 향하던 시간이었고 낯선 이는 나를 막아서며 잠깐 대화할 수 있느냐고 했다. 대화가 뭣하면 자신의 이야기라도 들어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납득 불가하지만 나는 그러겠노라고 했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던 계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를 떠올리면 구구절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상대의 잔영 뒤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멀뚱히 응시하던 내가 있었으니까. 사실 난 그가 열변을 토하는 데 반해 건성으로 흘려들었음이 분명하다. 단지 대화 상대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낯선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같은 의문만 가졌던 것 같다. 무척 생경한 경험이었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흔쾌히 낯선 이의 삶을 엿보는 자체를 거절했겠지만, 가까운 누군가에게도 얘기하지 못할 말을, -알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별스럽게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는 누구나가 가진 삶의 문제지만- 가끔은 생판 모르는,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 낯선 이에게 토로하고 싶을 때가 살면서 한번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때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절실했을 것이다. 내가 흘려듣는지 경청하는지 같은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조언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의 무게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어떤 결단도 요구하지 않는 낯선 이에게 토해내고 싶은 것뿐이었으리라. 책을 읽으며 유독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녀의 글 또한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시와 산문의 경계에 사뿐히 내려앉은 글은, 들어주면 참 좋겠지만 흘려들어도 당신을 질책하거나 타박하지는 않겠다는 무언의 동조를 구하는 것처럼 전해졌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가 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떠올려봐도 좋을, 떠올리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만약 기억한다면 괜찮을 위로로 전해진다면 참 좋겠다 싶은, 그런 느낌. 난 이런 글이 참 좋다. 끈적하지 않고 담백하며 강요하지 않음으로 인해 동의를 이끌어내는 글이라고 할까.

 



 


가만 보면 어떤 범위까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란 엄밀히 따지면 스스로 선을 그어버린 거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을 알고 지내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가 부재함에 속으로만 수없이 되뇌었던 경험이 있는 이들, 계절의 변주 속에서 마음의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들, 소통의 절실함보다 소통의 자유를 홀로 조용히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밤 열한 시』는 무한한 사유로 갈음되는 나만의 시간을 전해줄지도 모른다. 아니 밤 열한 시는 그런 시간이다. 나는 그랬다. 열두 시 종이 땡하고 울리면 파티장을 빠져나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열한 시에 딱 맞춘 시간마다 읽은 건 아니지만, 열한 시 언저리 어딘가쯤에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싶은 글이 황경신이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였고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우리의 삶이기도 했다. 그녀가 전하는 글 대부분을 이곳에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니까. 반대로 한 글자도 옮기지 않으려 한다. 절절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함께 공존하는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직접, 종이라는 지면을 통해 인쇄된 활자의 나열을 눈으로 읽어야 한다. 왠지 오랜만에 펜대를 잡고 끄적끄적, 나 또한 그녀처럼 꾹꾹 눌러가며 나의 열한 시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다. 들어줄 이가 있다면, 기꺼이.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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