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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서 소년에게- 노인과 바다

글쓴이: mirinae24님의 블로그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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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내려와 산 지도 몇 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아직도 회를 못 먹는다. 이런 나를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별종 쳐다보듯 하고, 게 중 극히 일부는 불쌍한 듯 쳐다본다. 그리곤 말한다. “아니 회 못 먹는 사람도 있어? 참 희안하네. 이 맛있는 걸 왜 못 먹어. 일단 꾹 참고 하나 입에 넣어봐. 그럼 고소한 맛이 느껴질 거라니까. 나중엔 없어서 못 먹어요. 참내 부산에서 회를 못 먹으면 도대체 뭐 먹으려고?”  회 못 먹으면 먹을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아직까지 건재하게 잘 먹고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회 못 먹는 것과 부산에서의 생존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회를 못 먹는 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결벽증에 가까운 엄마의 위생관념에 길들여진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져서이다. 조금 전까지 팔딱팔딱 뛰던 것을 뻔히 보다가 어떻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뭐 채식주의자라든가 그런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식물도 말 못하고 움직일 수 없다 뿐이지 동물처럼 생명이 있는 건 마찬가지이니까. 회 좋아하는 분들은 왠 회맛 떨어지는 소리냐고 한마디 하실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개인적 취향일 뿐이니까. 또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회를 드시는 분들이 참 용감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단지 따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우리 집에서 십여 분만 걸어가도 바닷가다. 처음 산책 나갔을 때 방파제 위에서 낚싯줄 늘여놓고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들이 한 마리씩 낚아 올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시장에서 좌판에 얌전히 누워있는 고등어들만 보다가 방금 낚여 올려진 생생한 그들의 모습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정말이었다.


 


<노인과 바다>에는 청새치를 잡는 바다낚시의 모습이 참으로 생생하고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풍부한 낚시 경험에서 체득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낚시과정과 주변 바다의 모습이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언어를 만나 최상의 효과를 낸다고 할까. 내가 마치 낚시 현장에서 그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배 한 켠에 앉아서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도 짠 바닷물이 튀고 청새치의 반짝이고 유려하고 거대한 몸이 스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노인의 청새치를 생각하는 심경변화 또한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처음엔 자신의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쉽고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는 물고기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지금 낚시바늘에 걸려 있는 큰 물고기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놈은 놀랍고 괴상한 녀석이야. 도대체 나이를 얼마나 먹은 녀석일까아마 바다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노인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노련하고 요령이 있는 물고기가 아닐까.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게다가 우린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노인에게는 옆에서 도와 줄 소년이 없고, 물고기는 낚시바늘에 결린 신세이니 주위 물고기들 또한 도와줄 수 없다. 고수 대 고수끼리 일대일 맞승부인 셈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비정한 것이다.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난 널 사랑하고 또 무척 존경한단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널 죽이고 말겠다.”


 


오랜 시간 동안 목에 낚시바늘을 문 채로 배를 끌고 가는 물고기는 이제 노인에게 형제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물고기 녀석한테도 뭘 먹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인은 생각했다. 녀석은 내 형제나 다름없어. 하지만 난 녀석을 죽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유지해야만 해.’


 


차라리 물고기가 되고 싶어하는 노인, ‘차라리 내가 저 물고기라면 좋겠군, 노인은 생각했다. 놈의 이 모든 힘에 맞서고 있는 게 그저 내 의지와 머리밖에 없는 형편이니 말이야.’


인간은 커다란 새나 야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존재야. 그래도 나는 지금 캄캄한 바다 밑에 있는 저 야수 같은 물고기가 되어봤으면 좋겠어.’


 


놈을 잡으면 몇 사람이나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사람들이 놈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없지, 물론 없고말고. 놈의 행동거지와 대단한 위엄을 생각할 때 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아름답고 고귀한 맞수에게 죽임을 당한다 할 지라도 상관없는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마저 초월한 노인에게서는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작정이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너도 그럴 권리가 있지. 나의 형제여, 난 너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존재를 결코 본 적이 없다. , 어서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굴 죽이든 난 이제 상관없다.’


 


노인은 죽은 물고기를 이렇게 표현한다. ‘물고기의 눈은 잠망경의 반사경처럼, 행렬 속의 성자(聖者)의 눈처럼 아무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죽음의 초월은 물고기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결국 노인의 노련함과 머리가 맞수를 쓰러뜨렸으나 이미 물고기에게는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성자의 눈처럼 말이다.


 


헤밍웨이가 작가 초기시절에 쓴 단편집 <우리 시대에(In Our Time)>에 수록된 단편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은 주인공 닉이 전쟁을 겪은 후 불에 타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로 돌아와, 변하지 않은 건 강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강에서 송어낚시를 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이 후에 <노인과 바다>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청년 닉이 모든 풍상을 겪은 산티아고 할아버지로, 강에서 바다로 진출하여 송어 대신 훨씬 더 크고 강인한 물고기인 청새치를 낚는 것, 그리고 이 작품을 썼던 시기 또한 25살의 풋풋한 청년 헤밍웨이에서 53살이 된 중년에서 노년으로 치닫고 있고 훨씬 원숙해진 헤밍웨이라는 점이다.


 


헤밍웨이의 나이 탓인지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노인과 바다>에는 크게 3세대의 모습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노인의 세대이다. 소박한 돛단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바다를 여성인 라 마르(la Mar)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바다는 여성처럼 달의 영향을 받아 변덕스럽긴 하지만 다정하게 호의를 베풀거나 거절하는 존재이다.


 


두 번째 세대는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라 부르는 젊은 세대들이다. 이들에게 바다는 경쟁해야 할 상대이며, 투쟁장소이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혹은 소년의 아버지처럼 물고기 잡는 실적이 좋지 않거나 운이 없는 사람들을 져버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결과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세 번째 세대는 소년의 세대이다. 아직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할 정도로 어리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첫 번째 세대로부터 온갖 지혜를 물려받으면서 대신 그들과 친구도 되어주고 말벗도 되어준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보살핀다. 순수함과 사랑이 가득한 세대이다.


 


늙으면 혼자 있으면 안 돼,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 “그 애가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소금도 좀 있으면 좋을 텐데.”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죽이게끔 되어 있어, 노인은 생각했다. 고기잡이는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일이면서 날 죽이는 일이기도 하잖아. 아냐, 날 살아가게 해주는 건 그 애야.’ 그리곤 바다에서의 힘든 사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보고 싶었다.”.


 


결과지향적이고 힘이 넘치는 젊은이세대들은 노인의 지혜나 요령 따위는 필요치 않다. 이들의 자신감을 넘어선 경솔한 자만심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세대 간의 단절을 불러올 수도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순수함과 사랑, 연민을 간직한 소년의 세대가 있다. 이들은 현명하게도 단절되어 소멸되어 버릴 수 있었던 노인 세대의 지혜를 전수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다시 저랑 함께 고기 잡아요.”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난 더 이상 운이 없어.”


그놈의 운 타령 좀 그만하세요.” 소년은 말했다. “운이라면 제가 가져올게요.”


….


할아버지께 배울 게 많으니 어서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래서 저한테 모든 걸 다 가르쳐주셔야 해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바다 위에서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지혜와 소년의 운이 만나 서로를 안아주고 다독이고 힘을 주면서 훨씬 더 큰 물고기를 낚으면서 얼굴 가득 웃음이 가득 찬 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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