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서를 좋아하고 즐겨읽는 탓에 신간으로 나온 책을 빨리 읽게 되어 좋았다. 선자은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어떤 느낌이다 라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독특한 분위기였는데, 판타지 소설 같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특히 피규어나 십대 아이들의 아지트 등의 소재를 볼 때면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왜색 문화가 좀 느껴지기도 했다. 책 안의 세계에 대해 그려내고자 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고, 잘 나타내기 위해 정말 성의껏 잘 꾸며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처음 시작은 좀 난데없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남자애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폐가에 가서 주문을 외우겠단 생각을 하는 여고생이라니. 과연 그런 아이가 교실 안에 있을때 평범한 축에 속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설정 자체가 왜색이 느껴지는 요인이 되어 거부감이 있었다. 거기에 당연한 수순처럼 계약을 원했던 소희가 아닌, 그 옆에 있었던 알음이 계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예전 연예인들의 데뷔 수순처럼 오디션 보러 가는 친구 따라갔다 오히려 옆에 있던 본인이 연예계로 캐스팅 됐다는 그런 얘기들처럼 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설정하는 것만큼은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서 읽는 동안 몰입하여 즐기며 읽을 수 있었다.
인물들이 개성적으로 그려져 하나하나 잘 활용한다면 정말 매력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것 같은데, 만들어진 인물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살려내는 부분이 좀 미비했던 것 같다. 비진과 신율의 가정사도 알음 못지 않게 복잡한데 그 아이들 안에 다 소화되지 못한 굴절된 부분들도 알음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씩 드러나도록 했다면 애써 만든 비진이란 매력적인 나비같은 인물과 평범해보이면서도 건조한 면이 엿보이는 신율의 캐릭터도 더 효과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다. 인물들이 알음을 중심으로 너무 적은 범위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계약자와 만나 계약을 시작하게 된 알음이 복잡해진 집안과 더불어 친구관계도 엉망으로 꼬이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것들을 표출하고, 원해본 적 없는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점점 더 음습하고 광기어리게 돌아간다. 마치 이야기 끝에서는 계약자의 손에 매달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도록 휘청이게 된 알음이 다움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도 계약자에게 다 내어놓게 되는 불길한 엔딩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청소년 소설의 결말이 되기엔 지나친 파국이겠지만, 그런 끝을 예상하게 만들면서 독자의 불안한 시선을 책장으로 잡아끈다.
알음이 과연 계약자의 손을 잡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게 될 것인지, 그렇게 된다면 알음은 만족스럽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인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계약을 한 사람은 계약자에게 대가로 무엇을 주게 될 것인지 끝까지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여름이 지나간 계절에 읽으려니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약자와 손을 잡게된 알음이 부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존재에게 그 주체인 자신의 마음을 뺏기게 된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내 행동의 주체가, 내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