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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딸과 엄마의 관계,모성

글쓴이: 박명순의 글사랑 |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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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이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고백을 듣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라는 난제를 안겨 주고 흔들어 놓았던 <고백>의 저자가 이번에는 불이 나던 그날, 어머니와 딸이 위험에 처했다면 누구를 구해야 하나? 라고 질문을 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자식을 다시 낳아야 하나 어머니보다 더 창창한 자식을 구해야 하나? 정말 난제다. 소설은 소녀가 다세대 주책에서 뛰어 내려 의식이 없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그의 엄마는 분명 그녀를 '금지옥엽' 으로 소중하게 키웠다고 했다.금지옥엽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지.겉으로 아무 문제 없던 소녀는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까?


 


'엄마의 고백' 과 '딸의 회상' 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소녀를 두고 엄마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부터 시작된다.아니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시작을 한다. 자신이 엄마와 아니 부모아 각별하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이야기며 그런 자신이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신보다 엄마가 그를 더 밑바탕까지 들여다 봄으로 해서 그와 결혼하게 된다. 자신의 그림은 밝은 색이었지만 어둔 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다도코로,하지만 엄마의 힘이 있어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고 장남이지만 시댁과는 결배로 마을에서 벗어난 산꼭대기 위에 집에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살 수 있었다. 홀로 남겨진 친정엄마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딸까지 그렇게 그들에게 행복한 날들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에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엄마와 어린 딸이 토사에 밀려 무너진 장농 밑에 깔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급박하게 누구가를 먼저 구해야 했던 그 시간,집안에 불까지 나서 더욱 상황은 위급해졌던 것. 그 순간 친정엄마는 자신이 죽음을 택하고 소년딸을 구하게 한다.


 



"너를 낳아서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했단다,고마워. 너의 사랑을 이번에는 저 아이에게 쏟아부어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주려무나."


 


모든 것을 잃고 시댁의 '저택' 에 들어가 살아야 했지만 시댁은 결코 '며느리'의 아픔은 뒷전이고 자신들에게 유용하게 쓸 일꾼처럼 부려 먹기만 하는 가운데 딸과 엄마의 관계는 소원하게 된다. 자신과 엄마의 사이는 정말 각별해서 친정에서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며 칭찬을 받으며 살았는데 결혼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듯 그녀의 존재는 바닥에 떨어져 칭찬을 받기 보다는 늘 욕을 먹고 못한다는 소리에 집안 일로 농사일로 거기에 시누이들의 모멸찬 안하무인까지 견디어내야 했는데 남편이란 존재는 그녀의 편도 아니고 늘 모든 일에 뒷전이듯 묵묵부답이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남편의 존재란 정말 힘들면서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부간의 갈등의 구조가 달라진다. 나 또한 이런 경우를 경험했고 늘 지금도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있고 모든 며느리들이 겪고 느끼는 일이겠지만 남편이라는 기어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의 가정이 깨질 수도 있다. 자신의 친정 엄마가 보여준 '모성'을 그대로 물려 받아 자신 또한 딸에게 그런 모성으로 대하지만 딸과 자신과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금이 가 있다. 왜?


 


그리고 답이 없을 듯한 시댁이라는 '저택'에서의 인간구조가 정말 '엄마'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남편은 모든 일에 방관하고 있을까? 아버지에게 폭력을 받은 피해자라면 아버지의 죽음 후에는 달려져야 하는데 그 후로 똑같은 방관자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딸은 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하지만 엄마의 대변인처럼 시댁과 맞써는 방패가 되어 늘 엄마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만 엄마에게는 낯설고 손끝하나 터치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난다.왜? 그둘의 관계가 왜 점점 벼랑끝으로 치달리고 있는가. 시어머니는 역시나 기운을 잃으면 어쩔 숭 없이 며느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같은가보다. 남편 없고 딸들 힘 없고 거기에 아들까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으니 언덕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며느리,그런 며느리를 재산 노리고 있다고 욕이나 하는 못된 인간들.하지만 세상사 인간사는 선이 이기도 진실은 언젠가 그 빛을 보게 되어 있다. 그 빛이 너무 늦게 빛나서,어른들이 힘이 없고 돈이 없으면 꼭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눈앞에 있는 아빠는 꿈의 집에 있던 아빠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꿈의 집이 타버린 것은 할머니의 이별뿐 아니라 아빠와의 이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좀더 일찍 '엄마와 딸' 이 대화로 풀었다면 '아내와 남편'이 그렇게 대화로 지난 시간을 가슴에 담아 두지 않고 풀어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녀가 자살을 선택하는 순간이 왔을까? 너무도 큰 진실과 부딪혀 이겨낼 힘을,아니 자신의 엄마를 대할 의지를 잃어버린 소녀가 너무도 가엽다.그녀가 알아버린 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겹고 버겁다. 지금껏 진실을 가슴에 묻고 자신을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워 준 엄마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이 결코 '죽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늘 '과거'의 '아름다운 집' 만 그리며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이 과거 속에서 살아가듯 한다면 그 또한 가정이 온전치 못할 것이다. 모든 삶의 멍에를 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인 며느리이며 아내이며 엄마의 길에서 '모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딸을 지킨 엄마의 힘.그래서 모성일까?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으로 물려주려 했던 힘이 그녀에게 오롯이 담겨 자신의 딸을 지키고 싶었지만 너무고 큰 시댁이라는 저택의 난관에 부딪히며 나약해져 가는 순진한 그녀,정말 순진해서 아무것도 몰랐을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 한다.나 또한 그런 시간을 지금 걷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 하루 살아 가고 있고 나 또한 엄마의 딸이며 두 딸의 엄마다. 내가 겪었던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겹치기도 하고 며느리들이 혹은 아내들이 겪었을 지금도 겪고 있을 삶이 투영되서일까 더 재밌게 가슴의 울분을 끓어 올리며 읽었다. 타인에게 악을 행하면 꼭 벌을 받게 되어 있다.그것이 자신에게 혹은 자식에게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늘 승승장구하는 날들만 있을 줄 알고 안하무인 겪으로 '며느리'를 마구 마구 부려먹는 이들이 종종 있다.그런 이들은 아니 그런 가문의 남편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철옹성도 언젠가는 무너지듯 인간사 백년만년 사는 것이 아닌데 타인에게 악함을 행하기 보다 선행을 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기적인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모성' 이듯 아름다운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에게 이어지는 모성의 힘은 대단하다. 모두에게 칭찬 받을 만한 모성이 되지만 아름답지 못한 모성을 가진 어머니의 딸은 그 자식에게도 악행을 일삼는다. 자식이 무얼 보고 배우겠는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거늘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이 만약에 어머니를 구하고 자식을 죽게 했다면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녀의 삶은 주변의 삶은 변했을까? 어떤 이야기보다 어떤 선택보다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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