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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글쓴이: 자하님의 블로그 |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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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개념의 장인이다.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베르나르-앙리 레비 모두 철학이란 '만들기'라고 믿었다.  앙리 레비의 스승 알튀세르는 철학을 '제작한다'라고, 들뢰즈는 '배치한다'라고, 칸트는 '종합한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는 언어를 장인처럼 다루어 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령 들뢰즈는 개념들이 자유롭고 야생적인 상태에 있는 사물들 자체이고, 철학이란 개념들을 발명하고 배치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철학은 세계의 재현과 해석이 아니라 차이들을 창조하고 개념화하는 일이다.


 


"철학을 할 때 저는 명상을 하지 않습니다. 꿈을 꾸지 않습니다. 저는 직관도, 상상력도, 심지어 관념도 앞세우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말들에 의해 연동하는 개념들의 생산, 해부, 조작, 증식, 유기적 결합입니다."(28쪽)


 


동서양 철학사는 모두 철학 자체의 재생산이다. 철학의 목표는 상식적인 재현을 전복하고 새로운 사유방식,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생산해내는 일이다. 철학적 개념이란 '프랑스 이데올로기'(나치 독일에 협력한 페탱주의자들과 레지스탕스 활동가들의 공통점)나 '순수성의 의지'(나치즘, 공산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등의 공통점)와 같이 여러 사건들을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논증적 단일성이거나, '파시슬라미즘' (파시즘과 이슬람주의의 합성어)처럼 허구적인 단일성의 봉인 하에 접합된 하나(회교도)를 둘(종교와 파시즘)로 분해하는 논증적 단일성이거나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개념은 겉으로 보기에 상관성이 없어보이는 현상들을 한데 묶는 것과 푸는 것, 연결하는 것과 구분하는 것, 한데 그러모으는 것과 분리하는 것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다.


 


모든 서양 철학자는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 발명하는 철학자와 베끼는 철학자, 행동의 철학자와 직관의 철학자, 체계의 철학자와 반체계의 철학자, 대화의 철학자와 반(反)대화의 철학자, 인용하는 철학자와 인용하지 않는 철학자 등등.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철학자는 발명하는 철학자, 행동하는 철학자, 열린 체계의 철학자, 대화를 믿지 않는 철학자, 인용을 하지 않는 철학자다.


 


우리 사회는 철학자가 필요한가? 이는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일단 철학박사 학위만 받으면 평생 떳떳하게 철학자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이거다. '우리 사회는 어떤 철학자가 필요한가?' 이것이야말로 바른 질문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철학자는 전사가 되어야 하고 또 전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철학이 여론과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곳은 바로 거리, 공장, 감옥의 문 앞, 전쟁터와 살육의 폐허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연구실이나 교실이 아닌 것이다.


 


철학자는 싸움을 잘 하는 ‘깡패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은 대화의 딸이 아니라 폴레모스(전쟁)의 딸이다. 즉 철학은 무술이 되어야 하고 철학 기법은 전투 기법이, 철학 집단은 파이트 클럽이 되어야 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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