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랑을 꿈꾼 적이 있다. 소설이나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상상 속 사랑을 꿈꾼다. 그 사랑의 끝에서 기다리는 삶은 궁금하지 않다. 사랑하고 있는 현재가 중요할 뿐이다. 때문에 사랑과 결혼은 다른 것이다. 수 세기를 걸쳐 사랑을 다룬 소설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을 저버릴 수 없으므로. 그런 점에서 자동적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떠오르는 이리나 레인의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는 이미 성공한 소설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19세기 안나가 아닌 21세기 안나를 만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지만 안나가 사랑하는 방법은 다르지 않다. 안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안나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온 러시아 이민자다. 언어와 문화,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만 했다. 쉽지 않았지만 화려한 뉴욕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부모님의 소개로 만난 사업가 알렉스 K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알렉스를 기다리는 기차역에서 운명의 남자 데이비드를 만났지만 예정된 상류사회의 삶을 저버릴 수 없었다.
안나의 결혼 생활은 모두에게 부러움이었다. 그런 안나를 동경하는 사촌 동생 카티아는 남자 친구를 가족과 친척들에게 소개하는데, 그 남자는 바로 데이비드였다. 카티아의 연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안나는 자신을 모델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데이비드에게 빠져든다. 알렉스의 경제력, 갓 태어난 아들도 안나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모든 걸 버리고 데이비드를 선택하고야 만다.
‘그의 죄목은 그녀를 몰랐다는 것이다. 자신의 호기심이 끝나는 곳에 그녀의 호기심은 시작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가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있는 바비큐 레스토랑을 좋아하고, 페이야드의 디저트보다 오레오 쿠키를 더 좋아하며,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로 자기 내면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상황들, 신화들 앞에서 현실을 부정할 수도 있으며, 실생활보다 책을 읽을 때 그녀의 삶이 더 풍요로웠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195~196쪽)
안나가 선택한 사랑이 주는 행복은 길지 않았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견딜 수 없었고 데이비드와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안나에겐 다른 사랑이 필요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남자는, 카티아의 남편 레프였다. 어린 시절부터 카티아를 좋아한 레프는 결혼에 실망한다. 책이나 영화 속 장면이 아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카티아와는 영혼을 나누는 무언가가 없었다. 카티아는 옛 연인처럼 남편이 안나에게 빠져들까 두렵다. 카티아는 남편과 안나의 만남을 주선해 그의 마음을 시험한다. 안나와 통하는 게 있었지만 레프는 현실을 확인한다.
안나와 카티아는 둘 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둘의 삶은 달랐다. 카티아가 결혼에 의미를 두었다면 안나는 사랑에 의미를 둔 것이다. 카티아는 현재와 미래를 계획했고 안나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에 충실했다. 레프가 안나에게로 향하는 감정을 받아들였다 해도 카티아는 혼자 살아가겠지만 안나는 다른 누군가를 원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샘솟는 사랑을 말이다. 안나에게 사랑은, 신이자 구원이었다. 때문에 안나의 마지막 선택은 유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그녀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사랑이 전부였던 삶,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므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감정이 깊어질수록 기억도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구석구석 세세하게 묘사하는 건 물론이고 어떤 날 입었던 옷가지와 머리 모양, 잠결의 뒤척임까지도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안나는 반대였다. 사랑은 늘 구체적인 것들을 모호하고 흐릿한 덩어리로 뭉뚱그렸다. 그녀는 말과 행동, 몸짓을 잊어버리곤 했으며 심지어 얼굴마저 사라지기도 했는데, 전부 내면에서 지독하게 타오르는 감정에 아지랑이처럼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너무나 감상적인 환희.’ (159~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