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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기억을 잃어가는 한 연쇄살인법의 잃고 싶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

글쓴이: 블루플라워 |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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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공부 쪽 기억 말고 사람에 관련된 기억이 좋다. 그 사람의 생김새, 이름 등을 잘 기억한다. 때론 길거리에서 지나다 스쳐간 사람의 얼굴도 기억할 정도다.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나는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척 했을때 곤란해 하는 경우를 보고, 어떻게 아는 사이라는 걸 설명해야 하는 게 싫어, 이제는 알아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면, 마치 이제야 봤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싫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기억력이 둔화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읽었던 책의 제목들, 작가 이름들, 책 속의 주인공들, 내가 보았던 영화의 제목들, 영화 배우 이름들이 때론 생각나지 않아, 메모를 남기는 블로그를 열어봐야 하고, 검색을 해봐야 알수 있다. 그 누구도 비껴가지 못하는 세월이라는 시간속에 갇혔다. 때로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슬프지만, 이 또한 내가 적응해야 할 일이다. 이보다 더한 일들이 생길수 있으므로. 예를 들자면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주인공처럼, 알츠하이머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칠십 세의 노인이 있다. 그는 30년간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살인의 기쁨에 겨워했던 남자였다. 교통사고로 인해 뇌 회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25년간 살인을 하지 않고 있었던 그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치매로 인해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현재의 기억들은 점점 잃어간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 하나 뿐인 딸을 잊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일지를 쓴다. 일지 속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프차를 몰고 다니는 젊은 남자와 접촉사고가 났다. 그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서 차의 트렁크 쪽을 보았더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인자는 살인자를 알아보는 법. 최근에 동네에서 일어난 세 명의 젊은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기억이 간간히 끊어지는 와중에 박주태가 자신의 집을, 딸 은희의 연구소 주변에 나타나는 걸 보았다. 딸 은희를 노리는 거라고 의심하고, 그의 주변을 살핀다.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순간이 떠오른다. 또는 문화센터에 시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일들도 떠오른다. 딸 은희가 중학교때 왕따를 당했던 일들도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김병수는 자신의 기억들을 놓치지 않을수 있을까. 또한 새로운 연쇄살인범 박주태로부터 딸 은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의 기억들은 점점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유리하게 기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었어도, 각자의 기억들을 들어보면 많이 다른 것을 알수 있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일로 기억이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연쇄살인범 김병수도 그러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으로 자신의 기억을 변형시켰는지도 모른다. 치매를 앓으면서 김병수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다른 모습으로 기억했다. 치매의 틈에 감춰버리고 말았다.


 


기억의 편린들은 파편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아주 짧은 소설이다. 중편에 가까운 소설이며, 쉼없이 읽힌다. 연쇄살인범이 이야기하는 짤막짤막한 기억의 파편들로 우리를 인도했다. 어제의 일이 기억나지 않고, 메모가 있어도 그것이 무슨 메모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우린 절망하고 말았다. 파편이 되어 흩어지고 마는 그의 기억들의 편린들 때문이었다.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9페이지)


 


소설의 마지막이 압권이었던 작품이다. 전혀 의심하지 않다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랄까.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던 한 연쇄살인범 노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들도 그대로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형시키지는 않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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