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의 뮤지션, 『보통의 존재』의 에세이스트, 이제 『실내인간』의 소설가.
이석원이라는 이름을 처음알게 된 건 처음 에세이스트였다. 노란색 표지의 『보통의 존재』를 만났을때 난 책을 읽으며, 이석원이라는 작가가 사실은 '언니네 이발관'의 뮤지션 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찾아 들었던 것 같다. 낯선 음악이었고, 생소한 그룹이었다. 그런 그가 럼 글을 맛깔스럽게 썼다는 게 놀라웠다. 음악하는 사람이 에세이는 쓸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은? '글쎄'였다. 그렇지만 에세이가 좋았기 때문에 그가 처음으로 쓴 장편 소설이 궁금했다. 푸른 빛의 깔끔한 표지로 다가온 『실내인간』이었다.
사랑은 참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랑에 빠져 있을때는 온 세상이 내 세상인 것처럼 기쁨이 가득하지만, 사랑을 놓쳤을때, 오래도록 그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 1년쯤이면 사랑을 다 잊어버릴수 있을까? 아니다. 오래도록 아니, 평생을 가도록 못잊는 경우도 있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담고 있는 존재, 그런 이들이 많을것 같다.
『실내인간』에서도 그랬다.
헤어진 사람을 못잊어 1년을 꼬박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이가 있다. 다니던 직장도 못 다닐 정도로 그렇게 무기력해져버린 용우가 있다.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까지 까먹어 쫓겨나게 되자, 그는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외국에 있는 단 하나의 친구, 제롬이 때에 맞춰 같이 살기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용우는 우연히 옆집의 삼층 건물에 사는 이를 만나게 되고, 아주 좁은, 골목길에 숨어있는 카페 루카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타르트를 먹다가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마흔두 살의 용휘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자신의 연애 상담을 하기 좋았고, 어느 새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용우는 용휘를 제롬과 같이 사는 방으로 초대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이날로 부터 그들은 매주 일요일이면 용우와 제롬의 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임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친해지만, 친구들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부르는데, 용휘는 용우와 제롬이 사는 곳에만 오고, 한 번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의심스럽다.
이 책은 바람을 두려워하는 남자, 간절하게 무언가를 갖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갖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을때, 그것을 갖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라면 가능한데, 만약 그것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물건처럼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떠나가버린 마음이 되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떠나간 연인이 전화를 걸어 올까 싶어, 그녀가 알던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용우처럼, 또는 성공을 하면 그녀가 돌아올까 싶은 마음에 점점 비뚤어져가는 용휘처럼.
사랑을 놓쳐버린 사람에게 그 사람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나 또한 오래전에 나에게서 등돌린 사람을 애타게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염원처럼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몇년을 난 마음아파 했다.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쯤은 자리잡고 있다. 사랑했던 사람을 아예 잊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용우와 용휘가 그랬던 것처럼.
제롬이 용휘에게 붙여주었던 '실내인간'이라는 별명.
생각해보면, 참 가슴아픈 별명이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이 돌아올까, 자신을 기억해줄까 싶어, 자기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을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262페이지)
자기가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싶을 때는 그저 그 시간들에 순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다.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을 그녀의 말들, 한자락 소망을 기대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그저 어떤 말들이었다. 용휘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좀더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정해놓은 사각형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씨. 누굴 만다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284페이지)
소영의 말이 메아리처럼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