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함께 하드코어씬을 양분했던 그룹 콘이 돌아왔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뉴메탈사운드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통해 보다 확장된 소리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내시빌 출신의 4인조 그룹, 핫 쉘 레이와 우리나라 인디 그룹 짙은의 앨범도 소개합니다.
Korn < The Path Of Totality >
“사람들은 우리의 새 앨범에 화를 낼 것이다. 그런 반응들조차 내겐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콘의 팬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어떤 팬들은 아직도 1994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까.”
-조나단 데이비스 (Jonathan Davis), 영국 음악지 케랑(Kerrang!)과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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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으로도 알 수 있다.
< The Path Of Totality >가 전혀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음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영광이야 어쨌든, 2011년을 살고 있던 그룹은 현재에 충실해야 했다. 신보는 아직 콘이 한물 간 밴드가 아님을,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밴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만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던 콘의 골수팬들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작년 여름, 이들이 발표한 「Get Up!」 (Feat. Skrillex)은 헤비니스 뮤직 팬들을 두 번 놀라게 했던 곡이었다. 무려 뉴메탈의 교주로 통하는 콘이 덥스텝의 총아인 스크릴렉스(skrillex)와 합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한 번, 또 그 결과물이 생각 외로 매력적이었다는 점에서 두 번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예고되었던 대로, 신보는「Get Up!」의 연장선에 있다. 모든 수록곡을 다양한 뮤지션들과 각각 합작해서 만들었다는 점은 자칫 앨범의 일관성을 떨어트릴 수도 있었던 부분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조율을 잘 해낸 모습이다. 기대보다도 우려가 많았던 콜라보레이션이 이렇게나 궁합이 잘 맞을 줄 누가 알았을까.
밴드 사운드만이 아니라 덥스텝 사운드를 통해서도 콘의 음침한 면모와 꼭 싸움이 터지기 직전의 분기를 보는듯한 특유의 울컥거림을 여과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싱글로 선보였던 「Get Up!」외에도 잘게 쪼갠 비트감과 조나단의 신경질적인 보컬이 인상적인 「Chaos lives in everything」, 작렬하는 전자음 속에서도 멜로디가 살아있는 「Narcissistic cannibal’, 영화음악과도 같은 웅장함이 돋보이는 「Burn the obedient」, 여운을 남기는 선율이 지배하는 「Way too far」가 인상적인 트랙들이다.
콘은 등장부터 이미 헤비메탈을 부정하고 뉴메탈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에는 그 자신이 상징으로 있는 뉴메탈마저 부정한다. 자신마저 부정하는 자기탈피의 결과는 놀랍게도 이렇게 매력적인 음반으로 나타났다. 대세에의 영합? 글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도전과 모험의 승리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핫 쉘 레이(Hot Chelle Rae)의 < Whatever >
2005년, 컨트리의 고향 내쉬빌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핫 쉘 레이(Hot Chelle Rae)의 음악에는 흙냄새나 버터 냄새가 없다. 대신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은 노래에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자유롭고 낙천적인 천진난만함이 느긋하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다.
테네시 주에서 태어난 핫 쉘 레이는 서부의 능글맞은 여유와 동부의 장르 융합 그리고 남부의 자신만만함까지 갖춘 미국의 팝 록 사운드를 포괄한다. 그 위에 멜로디가 확실한 대중적인 선율까지, 이 4인조 그룹은 1990년대 후반을 점유한 스매시 마우스(Smash Mouth)나 슈가 레이(Sugar Ray)의 능청스런 즐거움을 떠올린다. 상업적인 성공을 획득해 무뎌진 슈가 레이와 아이돌 팝 펑크를 구사한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반짝 인기를 공유했던 아이돌 그룹 파이브(5ive)나 LMNT의 교집합 안에서 핫 쉘 레이는 나름의 색깔로 자신들의 음악을 채색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조화는 2011년 여름에 싱글차트 7위를 기록했고 앞으로 ‘대표적인 여름 노래’로 언급될 「Tonight tonight」과 랩 듀오 뉴 보이즈(New Boyz)가 피처링에 참여해 상승곡선을 탄 「I like it like that」이 증명한다.
쉽고 깔끔한 음악을 들려준 1960년대 후반의 버블검과 힙합 비트, 펑키(funky)한 리듬 기타, 트렌드를 거스르지 않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오버하지 않는 서포팅, 거기에 팝 펑크의 청량감까지 더해진 핫 쉘 레이의 노래는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 층의 안정적인 피드백을 형성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또한 2007년에 래퍼 릴 존(Lil Jon)의 공연 오프너가 핫 쉘 레이였다는 것은 이들의 음악 설계도를 유추할 수 있는 좋은 근거일 것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리더 라이언 폴레스(Ryan Follese)와 스틱을 쥔 드러머 제이미 폴레스(Jamie Follese) 형제를 중심으로 리드 기타리스트 내쉬 오버스트리트(Nash Overstreet)와 베이시스트 이안 케기(Ian Keaggy)가 밴드 구상에 동참한 핫 쉘 레이는 그러나 음반 수록곡들의 편차가 완만하지 못한 약점을 드러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 노래들의 밀집도와 트랙 연결이 보톡스 맞은 피부처럼 부자연스럽다. 통쾌한 멜로디를 들려주는 「Forever unstoppable」부터 「Downtown girl」과 「Beautiful freaks」를 잇고 발라드인 8번 곡 「Why don't you love me」를 10번으로 후진 배치해 마지막 노래 「The only one」과 연결했으면
< Whatever >는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글 / 소승근 (gicsucks@hanmail.net)
짙은 < 백야 >
숨이 하얗게 얼어붙는 겨울밤, 네온 불빛 사이, 택시를 잡으려 여기저기 뒤엉킨 사람들 사이를 걷던 중에서 '백야'가 재생되었다. 뮤지션 자신은 영화 < 백야 >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도심의 난삽한 야경이 이토록 가사와 잘 맞는 것일까. 환상적인 신시사이저와 얼어붙을듯 위태로운 보컬은 순식간에 "밤이 찾아와도 어둠이 내리지 않는" 풍경을 만들어버렸고 실제로 "모든 것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백야를 헤매며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짙은’은 넬, 이승열, 콜드플레이, 데미안 라이스 사이에서 그들과 비견되는 '찬사 아닌 찬사'로 한국 모던록의 혈족을 이어왔다. 신보부터는 기타와 키보드를 담당하던 '윤형로'와의 이별로 자연스레 보컬 '성용욱'의 홀로서기가 되었다. 연주파트의 빈자리는 칵스(The Koxx)의 기타리스트 ‘이수륜’, ‘센티멘탈 시너리’가 함께 작업을 했다. 이들의 조합은 그동안 빈약했던 리듬감을 (조금) 추가되었다. 특히 「Moonlight」에서는 이수륜의 흔적을 쉽사리도 찾을 수 있다.
기타 위주였던 곡의 편성도 피아노로 무게중심을 옮겨 한층 광활해졌다. 보컬은 더 건조하지만 인상은 짙어졌다. 1집 ‘나비섬’의 신비로움은 유지하면서도 「March」, 「Moonlight」는 속도감을 더했다. 질주하자마자 바로 끝나버리는 곡수는 아쉽지만, 마른 장작처럼 말라 비틀어진 감성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하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