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함께 걸으면 손닿지 못할 만큼 한참을 뒤에 오던 그녀였죠.
빨리 오라며 그녀를 다그치고 답답한 맘에 난 앞서서 걸었는데
천천히 걸을 걸 그랬죠. 먼저 간 날 잃었었는지 그녀가 오지 않네요.
하루를 헤매다 돌아온 그녀는 어제보다 많이 다른 모습이죠.
날 보며 웃는 미소도 그 향기도 모두 예전과 같은데 낯설은 그대 모습
사소한 일로 많이 다툰 날였죠. 평소와 다른 그녀 모습 보고
먼저 다가가 그녈 달래봤지만 내 말도 들으려 않은 채 울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허락해줄 수만 있다면 그 사랑 안고 싶다고
고개를 저으면 그저 난 저으면 예전처럼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조금 더 함께 하고파 그렇게도 천천히 걷던 그녀를 알지 못한 내 죄로 보내야 하나요.
그대 혼자서 나를 남겨 둔 채 가는 건 여린 그대가 참 힘든 일이라
나 그대 따라서 이별이란 슬픈 세상에 나도 함께 갈게요.
고개를 저으면 그저 난 저으면 예전처럼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조금 더 함께 하고파 그렇게도 천천히 걷던 그녀를 난 보내야만 하죠.
「걸음이 느린 아이」, 노래 ? 고유진
그가 가버렸다.
성큼성큼 먼저 가버렸다.
가늘고 긴 다리가 느린 박자엔 그만 꼬여버린다 했다.
그러니 먼저 가 있겠다 했다.
멀어지는 감색 점퍼를 눈으로 붙잡는다.
백 리를 떨어져 있대도 쉬이 알아볼 익숙한 뒤꼭지를 바라본다.
갈 테면 가봐, 체념을 하든지
가기만 해봐, 독을 품든지
가서 기다려, 타협을 하든지
차라리 내 다릴 늘려, 협박을 하든지
대꾸도 못 하고 서럽게 뛰든지
내 맘
그가 앉아있다.
딱딱한 의자에 딱딱하게 앉아
텁텁한 담배 한 개비 텁텁하게 핀다.
어떤 넘이 공주마마를 그리 모시디, 강짜를 놓든지
어라 뉘신지요, 농을 치든지
그 담배 뽀뽀보다 맛있디, 비아냥으로 꼬든지
보고 싶었잖여, 애교를 떨든지
지금부턴 업구 가, 억지를 부리든지
것도 내 맘
그때의 길은 내게 숨이 밭는 고행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점점 닮아가는 호흡이 그와 나를 이산離散의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에피소드 2나는 자연사한 새들의 주검을 본 적이 없다. 숲 속의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가서 죽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 새들은 올 길 갈 길에 하늘에서 죽어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새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 가면서 날아오고 또 날아오지만, 새들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에 아무렇게 누워 있던 새 한 마리에 대한 기억. 무심無心히 걷다가 말 그대로 심장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파르르, 파르르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는 가슴팍. 숨은 붙어 있었지만, 처참한 몰골이었다.
하늘이 불러가는 목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모양이지만, 사람이 가져가는 목숨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자극적이었다.
그때의 길은 내게 지극한 쪽팔림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생명은 여전히 차별의 대상에 속한다.
#에피소드 3대학시절. 나는 그 긴긴 방학을 줄곧 언니들의 집을 배회하며 지냈다. 큰언니네는 피난처 삼아, 작은언니네는 놀이터 삼아. 한데 작은언니가 한동안 하루에 버스가 고작 두 번 다니는 머시기 리里에서 산 적이 있다. ―나도 리里에서 살았지만, 버스는 자주 다녔다.― 당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조카 녀석이 동네 엉아들과 얽혀 뱀 잡으러 다닐 만큼, 주변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고도 남는 그런 리里 말이다.
아, 뱀! 교과서에 나온 엉성한 그림만 보고도 하얗게 질리는 바람에 짝꿍이 흰 종이를 덧발라 꼼꼼하게 가려주었던 그 뱀, 을 조카가 뒤지고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간당간당, 죽을 맛이었다.
어쨌든 시市 터미널에서 언니네 리里로 가는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인사말이 난무하고, 보따리 위로 사람이 알아서 날아다녀야 했던 그 버스.
그때의 길은 내게 과거로의 회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방 후에 길 넓힌다고 마을사람들을 죄다 동원했었어. 그리고 이번에 영동 고속도로 새로 뚫을 때 마을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인부로 참여했으니, 이 마을엔 나처럼 길을 두 번씩이나 닦은 사람들이 많지. 우리들 손으로 직접 길을 냈는데, 그래서 서울 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긴 하는데 우리 사는 건 좋아진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어.”
그들의 길 또한 머지않아 제3의 물결이 되고야 말 것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막다름…
#에피소드 4과학 선생님이 돌아가신 곳은 길 위였다. 새로 뚫린 산업도로는 스스로의 무지막지함을 만천하에 과시했고, 박살난 오토바이에 대한 소문이 전설로 남았다. 운동장을 천천히 돌아 내려가던 영구차를 산 자들이 쓰다듬었다.
그때의 길은 내게 흉흉한 단절이었다. 또한 경악스럽게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을 볼 수 있는 죽음은 싫다. 그러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전 생애라고도 할 수 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삶에 대한, 생활에 대한 첫 공포였다.
#에피소드 5진실은 덕목이 아니라 정열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이 자비롭지 않은 것이다.
- 여보! 저 달이… 내가 무지무지 예쁜가 봐. 계속 따라온다?
- 너무 웃기게 생겨서 구경 오는 거야.
- (죽었어!)
그때의 길은 내게 불안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진실은 진실이어서 이성은 못내 차분한 척 감성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본론보다 긴 사족부끄러움도 이사를 다니는 모양입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우리말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베토벤인지 모차르트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창피하지 않지만, 열매를 맺기 전의 잎으로 그것이 호박인지 오이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창피합니다. 지식인이 머리로 쓴 책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 때보다 땀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가슴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더 부끄럽고,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애꿎은 신발끈만 오래오래 묶을 때보다 지갑이 비었다는 이유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할 때가 더 창피합니다.
글질이 업이 되고부터 부쩍 부끄러운 것이 많아졌다. 별 볼일 없는 기억이나 허접한 일상 따위들을 뻥이요, 하고 글로 튀겨서는 ‘읽어주시오!’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게다가 이번엔 「활자중독 Episode: 김진규의 길」이라니. 다분히 독자를 의식한, 어디서 들어봤음 직한 제목이 또한 웃기다. 물론 쓰고 싶어서 쓰고, 써야 해서 쓴다. 하지만 이러고 살아도 되나, 그런 죄의식이 성가시다. 오늘은 나를 더 부끄러워해야겠다. 비 탓이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고자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고자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 「부끄러움을 닦는 법(修恥贈學者)」, 이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