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에 떠난 대게잡이 배들이 울산항으로 돌아오는 이 계절, 얼어 죽어도 옷은 얇게 입는 나는 덜덜 떨면서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침대 옆 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얼룩진 빨간 원피스의 눈으로 나를 보자니 이 시가 떠올랐다.
술을 가져오라
옷이 얼룩이 지게 하리라
사랑에 취하여 비틀거리다 보면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현자라 한다
빨간 원피스 입장에서도 억울할 게 없는 이 시를 내가 처음 안 것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였다. 이 시를 안 뒤로 나는 “나의 영혼은 문을 활짝 열어놓은 네거리의 주막이요.”라고 한동안 큰소릴 치며 밤거리의 돌멩이를 걷어차곤 했다.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를 읽고 난 뒤 나도 몇 편의 시를 외울 결심을 했는데, 그 이유는 그 책을 읽어보면 안다. 물론 지금까지 외우는 건 딱 두개다. 한용운의 <복종>과 바로 이 하피즈의 시.)
그런데 오래전에 읽었던 『지상의 양식』이 지난 한 달 동안 갑자기 세 번이나 생각났다.
한 번은 어여쁘긴 하지만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낀 채 나타난, 방심한 죄밖에 없는 미녀랑 키스를 하기 힘들었다고 떠벌리는 선배에게 한 방 날려주고 싶었을 때.
“나는 나의 기쁨이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입 맞추기 위해서 나는 입가에 남은 포도송이의 얼룩들을 씻지 않는다. 입을 맞추고 나서 나는 입술을 식힐 사이도 없이 달콤한 포도주를 마셨다. 어떠한 기쁨도 미리 준비하지 말라.” 바로 이 문장. (키스하기 전에 반드시 이를 닦아야 되는 사람이 과연 알까? 준비되지 않은 기쁨에 대해서. 키스하기 전에 반드시 이를 닦고 오라고 하는 남자랑은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다.)
또 한 번은 내 생애 최고의 친구가 힘없이 뻗어있을 때 “사람을 소생시키기 위해선 입에 입을, 눈에 눈을, 손에 손을 붙이는 게 필요하다.”란 문장이 생각나 내 손부터 따뜻하게 하려고 막 비빌 때. (내 손이 덥혀지기 전에 친구는 가버렸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잡을 때 내 손이 꼭 따뜻할 필요가 있었을까? 좀 후회가 되었다)
세 번째는 눈이 온다 온다 하고 정작 눈은 오지 않는 흐리던 일련의 어느 날, 서해안의 하늘을 봤더니 구름이 바야흐로 광활한 바다처럼 펼쳐져 있을 때 “나의 굶주림은 충족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잠잠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났고 구름도 나도 아직은 충족되지 않아서 변하지 못하는구나 생각이 들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지난 11월 1일 <아름다운 책 人터뷰> 작가 강연회 때 모습
아! 그리고 『지상의 양식』이 아니라 앙드레 지드가 생각난 일도 있었는데 소설가이자 카이스트 교수인 김탁환을 인터뷰 했을 때다. 그건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 1927년판에 붙인 서문 때문일 것 같다.
『지상의 양식』은 병을 앓는 사람이 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복기의 환자나 완쾌된 사람, 혹은 전에 병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시적인 어조 자체에 이미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그 무엇인 것처럼 한사코 삶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람 특유의 과격함이 있다.
『나, 황진이』『방각본 살인사건』『리심』『불멸의 이순신』『열하광인』의 작가 김탁환은 자신의 자전적 소설 「진눈깨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내 삶은 열세 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들판을 힘차게 달리는 나와 아이들을 텅 빈 교실에서 바라보는 나. 열세 살 봄 나는 창원에서 마산으로 전학을 나왔고 곧 폐결핵에 걸렸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늙은 의사는 벽에 걸린 엑스선 사진과 내 가슴을 번갈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니 절대로 뛰면 안 된다. 가을 되면 떨어지는 이파리 알제? 내 말 안 들으면 니 가심이 숭숭 이파리된다. 알건나?”
순간 삶이 바랬다. 열두 살까지 내 꿈은 축구 선수, 사냥꾼, 마라토너였다. 열세 살 봄 감히 나는 그 멋진 희망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늙은 의사가 건넨 충고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 하나는 몸이 지칠 만큼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야기책 읽기로 메웠다. 읽다가 지치면 공책 뒷장에 이야기를 짓기도 했다. 둘리툴 선생이 열다섯 소년과 함께 해저 2만 리를 돌아서 보물섬에 닿는 이야기였다.
앙드레 지드식 표현대로 병에 걸린 적이 있는 그에게도 ‘한사코 삶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람 특유의 과격함’이 있을까?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본 적이 있는 그는 느릿느릿한 행동과 2층에서 관찰하는 시선을 얻었다고 대답했다. 2층에서 관찰하는 시선이란 뭘까? (그걸 알기 위해 나도 재미 삼아 며칠간 매일 매일 2층 내 사무실에서 거리를 관찰했다. 동경에 가득 찬 열두 살 환자 입장과는 다를지라도 성과는 있었다. 그건 이 글의 맨 끝에 말하겠다.) 열두 살 환자가 2층에서 얻는 시선은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취약점 때문에 주변인으로 배회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갈망을 송두리째 적시하는 것. 유년기와 조숙함의 특성을 한 몸에 평생 갖게 되는 것. (그는 자신을 겉보긴 정적인데 머릿속은 복잡한 몽상가라고 표현했다.)
어쨌든 이야기의 출발은 그가 앓았다는 열두 살 무렵이다. “중학교 가서 일 학년 때 나간 백일장 대회에서 일등하면서 글 잘 쓰는 애로 인정받게 되었어요. 아침에 조회를 하러 나갔는데 햇볕이 정면으로 비치니까 쓰러졌어요. 그때 몽롱해지면서 내가 자랐던 창원의 농촌의 새벽 논두렁들이 떠올랐고 그걸 써서 일등한 거죠.”
김탁환이 말하는 창원의 논두렁 풍경은 이런 거다. 김탁환은 마산이 수출자유지역으로 정해져 인근 진해, 창원 등 그때까진 농촌이었던 곳들이 공장으로 변해가는 동안 그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덕에 3학년 이후 그의 교실에선 얼굴 하얀 서울내기들과 얼굴 까만 아이들이 섞여 공부했다는데 나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미인관은 얼굴이 하얀 소녀들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의 부모는 그곳에서 작은 주물공장을 했다. 한양 공대를 마치고 처가 쪽 일을 도우러 서울서 낙향한 그의 아버지는 고우영 삼국지의 마니아라서 고우영 삼국지가 나오길 기다려 한 권 한 권씩 사 모으는 이였고 그의 어머니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자식 교육에 열성이라서 전집류 등 책을 사줬고 피아노도 배우게 했다. 장남 탁환은 새벽 6시에 논둑을 걸어서 피아노 학원에 가곤 했었다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논두렁의 소년이 등장한다.
“(그렇게 입상한 뒤) 중학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책을 읽은 기억보다는 시를 쓴 기억이 더 나요. 마산이란 동네가 시인이 많았어요. 이제하가 우리 사이엔 영웅이어서 이제하의 시를 돌려 읽었고 청마 유치환도 가까운 동네 통영 출신이었고요. 소설보다는 시집을 많이 읽었어요. 서정주, 김춘수, 이성복, 황지우, 최성자, 정호승 이런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마산의 스타였다던 ‘이제하’ 하면 나는 우선 전학 가는 친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청송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라는 그 시구는 모든 전학 가는 친구들에게 주는 사랑의 새끼손가락 걸기였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제하’ 하면 1985년에 이상문학상을 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사실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 책에서 나그네가 가는 길은 폭설 때문에 막히고 휴전선 때문에 막히고 끊어진 차편 때문에 막힌다. 그런데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의 나그네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등에 손을, 볼에 볼을 댄다. 중풍 걸린 80살 회장님의 인간 핫팩 (유담뽀) 노릇을 2년간 한 간호사 미세스 최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주저앉아버리자 하나도 더 나을 것 없는 처지의 나그네는 여자의 볼에 자신의 볼을 수없이 비벼준다. 이 장면을 보면 인간이 인간을 받쳐주는 어떤 영상이 떠오른다. (역시 내 친구에게 찬 손을 그대로 내밀지 않은 것은 잘못했다는 걸 다시금 알겠다.)
어쨌거나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보숭보숭 애숭이들에게 뜻밖에 도움이 되는 공간은 교회다. 나는 김탁환의 이야기 중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무조건 따뜻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 열심히 나갔는데 내가 다닌 교회는 한일합섬 여공들이 많이 나오던 교회였어요. 주로 전라도 출신들이었죠. 낮에는 8시간 일하고 저녁에 야간학교를 다니는 그런 애들이 400명, 500명씩 마산에 있었는데 같은 학년이라 해도 제때제때 학교에 진학을 못 해 나이도 나보다 많았고 실제로 정신연령도 높았어요. 그때 교회에서 좋게(?) 지내던 누나가 바로 그런 한일합섬 여공이었는데 엄청난 독서광이라서 자기가 읽은 책 중에 재미있는 게 있으면 나한테 갖다 주곤 했죠. 누나 추천 도서는 이해인 수녀 책이나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같은 것이었어요. 유안진 교수는 마산 제일여고 선생 출신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한 시절 여고생들의 우정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 즉 주로 여학생끼리 주고받았는데 교회의 남학생에게 이 책을 전해줬단 의미는 정말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난 가장 따뜻한 상상을 해보고 싶다. (즉, 겨울밤에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엎드려서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옮겨 적으며 고향이나 자신의 앞날에 대한 시름을 잊는 모습으로. 밤엔 유안진을 읽고 주일엔 교회를 가고 교회 남학생에게 수줍게 책을 권하는 동안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도 평범한 여고생이 된다. 그때 그녀가 읽은 책들은 어린 시절의 요정 이야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이마에 순진한 광채를 드리운다.) 한편 그는 대학 신입생이나 읽을 법한 고난도의 책들을 읽어내는데 (이를테면 예세닌이나 마야코프스키 같은 러시아 시인들의 시) 그건 이미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이 지도하던 문예반 활동 때문이었다.
“특히 김승희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좋아했죠. 등뼈에 구멍을 내서 피리를 부는 이미지들이 좋아서 대학 입학할 때도 김승희의 수필집을 한 권 들고 서 있을 정도였죠. 그랬더니 당시 서울대학교 입학식 취재 온 외국 신문기자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뭐냐고 묻기까지 하더군요. 소설은 이문열을 거의 다 읽었어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를 제일 좋아했죠.”
이문열의 글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사람의 아들』이지만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엔 종갑이란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한때 동거했던 기생을 찾아 전국을 헤매 굶어죽는 것이 이야기인데 글의 마지막에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 나오는 김종길의 시가 참 좋았었다. 세월은 어떻게 흘러가느냐고 묻는 이야기인데 옮겨 적어보겠다.
세월은 냇물처럼 흘러만 갔는가?
아니다 그것은 고가의 이끼 낀 기왓장에 쌓여
오늘은 장마 뒤 따가운 볕에 마르고 있다
김승희의 시를 좋아하는 남자 고등학생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김승희 시 『왼손을 위한 협주곡』의 이미지는 손으로 벽을 할퀴고 주저앉아 통곡을 한바탕 해보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봐야 알 수 있는 것투성이니까. 이를테면 이런 시구들.
가장 푸른 자오선을 목에 걸고 여자들이 벼랑 위에 서 있다.
말해봐 불아, 누가 나를 벼랑으로 부르는지….
어둠이 가득 찬 내 척추의 흰 뼈에 누가 자꾸만 한 덩어리 촛불을 당기는지….
(중략)
삶이 시작되는 곳에는 왜 늘 벼랑이 있고 벼랑에서 추는 춤만이
왜 홀로 아름다움의 갈기를 가졌는가를….
- <낙화암 벼랑 위의 태양의 바라의 춤> 중에서
내 뼈의 잔가지들을 훑어서
척추의 둥근 고리뼈를 중심으로
누가 피리구멍을 내주세요.
- <태양의 면죄부> 중에서
마치 소신공양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처절하게 자신을 바치고 드리는, 등뼈에 구멍을 내서 피리를 부는 이의 의미를 이른 나이에 그가 알아차리는 데 그의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이 역할을 했을까?
“우리 아버진 영변 사람이었는데 기독교를 맨 처음 받아들인 집안 출신이었죠. 그런데 전쟁 나면서 소련군이 들어와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니까 남쪽으로 내려왔죠. 우리 외가는 일제 때 일본으로 돈 벌러 간 집안이었는데 광복되고 나서 진해로 돌아온 집안이고요. 우리 어머니도 어려서 일본에서 자라서 지금도 한밤중의 지진의 기억이 난대요.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은 큰 충격이었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고 그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셋, 지금의 내 나이보다 겨우 세 살 많은 거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한일합섬 공장 다니는 공원들의 자취방으로 썼어요.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닌 거죠. 대학 가서는 쁘띠브르조아로 불렸지만 내가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 돈이 점점 더 들어서 엄마의 방이 해마다 줄어들었어요.”
이런 상황은 김승희의 시 <배꼽을 위한 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대여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당신의 배꼽을 보여준다면 나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더럽게 뒤엉긴 자그만 동그라미 굽이굽이 꼬불쳐진 그대의 서러운 배꼽도 나의 배꼽과 똑같이 부끄러운 죄와 어리석은 욕망이 고불고불 서리서리 끼어있을 테지요. 그대여, 어둠의 태속에서 영문 모르고 튀어나와 정처없이 죄를 짓고 죽어가는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당신이 누구든지간에, 당신의 배꼽을 버리지 않았다면은 나 그대를 열렬히 용서하겠습니다. 봄이 되어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트는 것을 바라보거나 푸드득-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습진처럼 내 배꼽이 가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배꼽은 과거 완료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나의 삶속에 움터오르고 어머니- 아, 어머니-라고 불러보면 바닷가를 울면서 걸어가는 한 여인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사랑 그녀의 절망을 따라 나의 배꼽은 또 하염없이 시원의 태속으로 적셔 들어가고 어머니- 자비와 저주의 비밀계좌이신 어머니- 나의 어머니시여.
어느 정도는 가난해진 그가 수업료가 싼 국립대학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것은 1987년, 그가 대학 교문 벽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두리번거릴 때 마주친 첫 풍경은 고 박종철 영정을 들고 내려오던 침묵 시위대였고 그가 들어간 국문과의 분위기는 시대의 우울 때문에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선배 때문에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시를 쓰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도 시는 계속 열심히 읽었어요. 마야코프스키의 포스터는 벽에 붙여 놓았었어요. 그 무렵 제일 기억나는 것 역시 기숙사에서 시 읽던 일들이죠. MT 다녀와서 낮에 침대에 누워서 시를 읽다가 잠들었다 깨면 해질 무렵인데 그때도 가슴에 시를 꼭 안은 그 자세 그대로였어요. ‘문학과지성사’나 ‘창작과비평’의 시선집 뒤 페이지의 목차를 펴놓고 읽은 책은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읽었을 정도로 시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주 이상한 시를 접하게 되었어요. 장정일의 시였는데 그전에 읽던 시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그 무렵 대학 문학상 공모가 났는데 비평 부문 상금이 40만 원으로 제일 많았어요. 그 돈이면 애들 과외 두 달 안 해도 되겠다 싶어서 「장정일론」이란 비평을 써서 뽑혔지요. 그전의 시인들은 시가 무용지물이라서 오히려 시가 무기일 수 있단 입장이었다면 장정일은 ‘시가 무용지물이었다면 시를 의미 있게 해보자.’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감정에 호소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해보자는 거였죠. <햄버거에 대한 명상>만 해도 그 시를 읽으면 정말로 햄버거를 만들 수 있어요. 진짜 매뉴얼이죠. 사물에 대한 관심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장정일 시 아주 열심히 읽었고 노트를 한 권 사서는 한쪽 페이지엔 시 한 편 적고 다른 페이지엔 느낌 한 바닥 적고 그랬어요. 그땐 시비평가가 되기로 생각했었어요. 시집을 비평하는 것 말고 시 한 편에 대해서 몇 백 장 쓰는 비평가 말이죠. 이미지 하나로 책 한 권 쓰는 바슐라르처럼요.”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란 부제가 붙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햄버거 빵 2개
쇠고기 150그램
돼지고기 100그램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 소스 약간
(중략)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로 시작해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로 끝난다.
“내 십자가엔 그리스도가 없다.”라고 우리 시대를 통찰한 장정일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시집’이란 제목의 이런 시를 쓴다. “시로 덮인 한권의 책, 아무런 쓸모없는, 주식 시세나 운동경기에 대해서, 한 줄의 주말 방송 프로도 소개되지 않은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불능의 종이 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시가 그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전 권을 흐르는 자의식이고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 시대(혹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가 그의 시 “붉은 신호에 걸린 여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붉은 신호에 걸린 여자”는 사내와의 밀회를 위해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다가 하이힐 뒤끝이 부러져 나가면서 나뒹굴어지고 그 순간 붉은 신호등 ‘건너지 마시오.’를 본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남자에게 가야 하나, 왔던 길로 가야 하나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자동차의 경적은 위험스럽게 울리고 발목은 부어오른다. 이런 경우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 슬프다. 하지만 이때의 슬픔과 그 뒤의 행동은 진지한 사색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장정일식으로 표현하자면 ‘얼굴 없는 배우가 주연하는 영화 속 장면’과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춥고 서해안이 철새와 굴 천지(올해는 유조선 사고로 검은 재난의 바다가 되어버렸다)가 될 땐 난 어쩐지 다른 시가 꼭 생각난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우리들은 잃어버린 게 없다. 모든 것은 너희들이 분실했으므로’라고 자신의 처지를 망명자인 것처럼 자각하면서 텅 빈 세상의 끝에서 가장 허무하게 sweet sweet love를 부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충남 당진 여자>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그러나 너는 달아나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 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 여자 내가 나누어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충남 당진 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1960년산 우리 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인가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 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 편의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나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 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장정일의 시를 소리 내어 읽다보면 나는 『중세의 가을』의 이 문장 “시대 전체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열망한다.”가 자꾸만 생각난다. 삶이 전반적으로 기쁨에 넘칠 때는 필요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 문장은 이젠 우리가 뭔가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시를 사랑해 시인을 꿈꿨던 청년이 100권짜리 『명주보월빙』, 180권짜리 『완월회맹연』(그런 고전 소설 등은 자신이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느려서 좋았다고 했다. 기억하는가? 열세 살에 이미 느림을 체득한 소년.) 등 조선시대 대하소설(‘대하소설’이란 표현을 할 때 김탁환은 두 번 연거푸 팔을 길게 벌렸다. 긴 소설 진짜 긴 소설. 『명주보월빙』의 첫 권은 소설 한 권이 끝나도록 오로지 슬픔의 감정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한 권의 소설이 끝나가도록 슬픔은 결코 끝을 내지 못했다.)을 읽으며 시를 접고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 겸 소설가가 된 데는 페레스트로이카 같은 역사적 사건, 《상상》이란 잡지를 했던 경험, 우리나라엔 왜 무라카미 류나 마이클 클라이튼이나 존 그리샴, 스티븐 킹 같은 작가가 없을까 따져봤던 경험, 내가 한 번 써보자 했던 (그는 때늦은 해군장교 생활을 하면서 소설가 양귀자 선생에게 팩스로 자신의 글을 보내면서 소설 쓰기 연습을 했다 한다.) 결단 같은 상황이 아우러진다. 그에게 단답식으로 딱 세 가지 물어봤다.
왜 역사소설인가? / 현실이 어느 정도는 지리멸렬해서.
그렇다면 왜 한 권이 아니라 길게 쓰는가? / 기억하는 것보다 망각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게 인생이고 소설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서. 읽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페이지를 넘겨서 다시 찾아가야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 주인공으로 삼은 역사 속 인물들은 어떤 기준인가? /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 골 때리는 인간들.
이중에서 ‘기억하기 위해선 다시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 난 참 좋았다. 그에 걸맞은 에피소드가 김탁환에게도 있다. 김탁환이 소설을 내고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때의 일이다.
“나 고등학교 때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초등학교 동창인 여학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상갓집에 혼자 찾아왔어요,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나중에 대학갈 때 찾아갔더니 그 애의 언니가 나와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 숙이 결혼해서 솔트레이크시티로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3학년 때 모르몬교 목사랑 결혼해서 미국으로 간 거죠. 그런데 내가 『허균』이란 책 내고 건양대 교수로 있을 때 불쑥 전화가 온 거예요. 지금 인사동인데 너 만나고 싶다. 미국에서 왔다. 그러고는 택시 대절해서 딱 세 시간 만에 나타났는데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로 미국의 귀부인이 되어 있더라고요. 치렁치렁 장신구도 화려하고 아름답고.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애 미국 가서 2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살기 위해서 호텔의 청소부가 되었는데 너무 가난했고 힘들어서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대요. 어느 날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어서 죽을 결심을 하고, 평소에 악독하게 굴던 호텔 지배인의 차를 타고 호수로 가서 자살하려 했는데 새벽이 올 때까지 다섯 시간이나 호수를 빙빙 돌아도 차마 핸들을 꺾지 못했대요. 그래서 차도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집에서 끙끙 앓으면서 이제 잘리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호텔엔 누가 투숙하고 있었냐면 백만장자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는 지배인에게 ‘늘 내 방을 청소해주던 미세스 박은 어디 갔느냐?’ 찾더라는 겁니다. 그녀가 다시 출근하던 날 중년의 대머리 백만장자는 꽃을 주면서 그녀에게 청혼을 한 겁니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결혼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살다가 내가 소설가가 되었단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온 겁니다. 택시를 달려서.”
기억 속으로 다시 뛰어든 어린 날의 그녀는, 시인이 되고 싶다던 김탁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를 써. 마음의 소금밭에 쓰는지 원고지에 쓰는지가 다를 뿐이지.” 결국은 자신도 글을 쓰고 싶다는 솔트레이크 시티의 그녀와 김탁환의 연결고리는 뭔가? 한 권의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란 것 아닐까?
180권짜리 대하소설을 썼던 조선 후기의 어떤 사람(『완월회맹연』의 지은이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아마 여자일 걸로 추정된다 한다.)과 훗날 그 책들을 자신의 책상 밑에 놔두고 발로 툭툭 차며 매일 읽던 김탁환의 연결고리는 뭔가? 이상하게 나는 『리심』의 한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곁에 선 이가 나와 꼭 닮은 영혼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책이나 글이 자신과 꼭 닮은 영혼이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 아마 헤어나오지 못할 거다.
어쨌든 ‘2층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 매일 2층 창가에 한 번씩 서 있던 나의 결론은 이렇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신호등을 대하는 사람들의 동작들, 그 동작들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가능성과 실재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 ‘잘됐군.’과 ‘할 수 없지.’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괜찮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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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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