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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만큼 무서운 도시 괴담들 - 『실화괴담 신미미』

가장 두려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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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실화다. 대학 때 갔던 농촌봉사활동에서, 중고생들과 귀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귀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실화다. 대학 때 갔던 농촌봉사활동에서, 중고생들과 귀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딘가 놀러가 밤을 지낼 때마다 괴담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지만, 그 때처럼 생생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갔던 곳이 꽤 외진 마을인지라, 도시 학생들과는 괴담의 차원이 틀렸던 것이다. 도깨비불 정도는 거의 보았고,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적어도 아버지나 이웃집 할머니 정도가 목격한 생생한 ‘실화’였다. 생생한 괴담을 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을 하나씩 집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니, 나 혼자가 된 것이다. 마을이 1자형으로 되어 있어, 아이들을 모두 바래다 주고 나니 정 반대 방향에 있던 숙소까지 홀로 돌아가야 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길을, 오로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10여분을 걸어갔다. 그 순간의 공포감이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점점 걸음이 빨라지고, 거의 뛰다시피 하다가 숙소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안도감 역시......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의 공포감은 ‘실화’들 때문에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그 후에도 홀로 한밤의 시골길을 걸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 때 같은 느낌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귀신 이야기들은 대체로, 친구의 친구가 보았다, 아는 친척이 경험한 이야기, 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괴담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으니, 거기에 뭔가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설사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사실이니까. 적어도 그 순간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만은 전달할 수 있으니까. 과거에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삽시간에 ‘사실’로 전해진다.

괴거에는 민담이나 전설로 전해지던 것들이, 지금은 ‘도시 괴담’(Urban Legend)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캠퍼스 레전드』란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는데, 그 영화의 원제가 바로 어반 레전드다. 근대 이전까지는 마을의 신기한 체험이나 귀신 이야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근방의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부의 장사꾼이나 유랑자가 들려주는 신기한 이야기들이 마을 사람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도시는 익명성이다.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떠도는 것이 도시 괴담이다. 홍콩할매귀신이나 빨간 마스크 같은 귀신 이야기도 있고 톡톡과 콜라를 같이 먹으면 폭발한다, 는 등의 이야기도 있다. 도시 괴담만을 모아 만든 일본 공포영화 『시부야 괴담』에는 어느 역의 특정 사물함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거나 모 백화점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거나, 자동차 아래에서 손이 나와 발목을 잡았다거나 하는 괴담이 줄지어 나온다. 이런 도시 괴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본의 도시괴담』(다른세상 간)이나 『도시괴담』(딱정벌레 간)에 꽤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실화괴담 신미미』도 그런 ‘도시 괴담’을 모아놓은 만화다. 원래의 제목은 ‘신 미미부쿠로’. 에도시대 후기의 서민 풍속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전해지는 괴담을 수집, 기록한 것이 『미미부쿠로』란 괴담집이다. 그 형식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현대의 도시 괴담을 모은 것이 ‘신 미미부쿠로’다. 키하라 히로카츠와 나카야마 이치로가 일본 전역에서 모은 괴담을 정리한 『괴담 신 미미부쿠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0권의 책이 나왔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HD방송채널인 BS-i에서 만들어진 『괴담 신 미미부쿠로』는 방송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길어봐야 5분 정도로, 그야말로 잠깐씩 전해주는 귀신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것이 인기를 끌어 계속 만들어지면서 비디오로도 화제를 모았고, 작년에는 극장판도 만들어졌다.

『실화괴담 신미미』는 『괴담 신 미미부쿠로』를 만화로 각색한 것이다. 사에키 카노 등이 그린 『실화괴담 신미미』는 17편의 짧은 괴담을 극적으로 전해준다. 불투명한 유리 저편에서 끌어당기는 괴상한 할머니, 자살한 여자의 방에서 들리는 발소리와 누군가를 봤다는 아이, 폐허가 된 병원에 들어갔다가 귀신을 데리고 나온 남자, 필름에 찍힌 여자아이를 본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그 필름을 볼 때마다 옆을 보고 있던 소녀의 얼굴이 점점 정면을 향하게 된다는 등의 괴담이다.

이처럼 『실화괴담 신미미』에는 도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기괴한 사건들이 들어 있다. 때로는 정말 섬뜩하거나 소름끼치기도 하고, 그저 웃어넘기는 황당한 사건들도 있다. 게다가 전해지는 이야기를 모은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이유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 『링』 같은 것은, 공포의 근원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사다코가 원래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복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괴담 신 미미부쿠로』에는 그런 ‘이유’나 ‘근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뭔가 불가사의한 것을 체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버린다. 왜 나타났는지, 그 불가사의한 현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거기에는 원인도, 결과도 명확하게 없다. 오로지 현상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더 무섭다. 『드라큘라』에서 뱀파이어의 공포에 떨던 이들은, 그 존재가 무엇인지를 안 다음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운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그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연쇄살인마가 두려운 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귀신도, 지옥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공포의 존재다. 도시 괴담이 나오는 것 역시, 그런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현실적인 사건이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공포로, 괴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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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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