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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 - 『좌부녀』

우리의 일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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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즈키 미네타로의 『좌부녀』는, 표지를 보는 순간 느껴진다. 한 남자가 잠들어 있고, 그 뒤로 한 여자가 서 있다. 롱코트에 긴 머리의 여자. 반쯤 열린 현관문 너머로 보이는 그녀는, 이 회색 도시의 어디에선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다.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좌부녀』는, 표지를 보는 순간 느껴진다. 한 남자가 잠들어 있고, 그 뒤로 한 여자가 서 있다. 롱코트에 긴 머리의 여자. 반쯤 열린 현관문 너머로 보이는 그녀는, 이 회색 도시의 어디에선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다. 그런데 누워있는 남자와 그녀의 사이 공간에는,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꽃도 피어 있다. 아마 그건, 그 풍경은 꿈인 것 같다. 아마 그 남자는, 낯선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꾼 것 아닐까? 만약 그녀의 얼굴이 아름답다면 황홀한 꿈이고, 그녀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면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그건 아마도, 종이 한 장 차이다. 아름다운 그녀를 만나는 것과, 소름끼치는 스토커를 만나는 것은.

얼마 전 개봉한 <착신아리>의 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대표작 중에 <오디션>이란 영화가 있다. 중년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다. 호감이 들었지만, 뭔가 조금씩 어긋나며 멀어지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어느 날, 그녀가 남자의 집에 찾아오고, 남자는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가 무엇인가를 잘못한 것일까? 미이케 다카시는 말한다.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라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친 것처럼, 우연히 그 여자를 만난 것뿐이라고. 때로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엄청난 지옥을 겪을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아이러니다.

대학생인 히로시는 옆집 문을 두드리는 여자를 발견한다. 아무리 두들겨도 사람이 나오지 않고, 히로시는 약간의 짜증을 내며 나가본다. 긴 머리의 키가 크고, 지저분한 옷차림의 여인이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다. 그 날은 돌아갔지만, 다음 날 그 여자는 다시 옆집 문을 두들긴다. 그리고 히로시의 문까지. 잠깐 전화를 쓰겠다는 말에, 히로시는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 여자는 돌아가지만, 현관에 남아있는 종이 가방. 여자는 가방을 돌려달라며 전화를 해대고, 결국 가져가고 만다. 하지만 여자는 어느 새 히로시의 집 열쇠를 복사하고 스토킹을 하기 시작한다. 히로시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녀를 쫓아갔던 친구는, 오히려 폭행을 당하고 돌아온다. 그녀는 아무리 보아도 정상인은 아닌 것 같다, 고 생각한다.

언뜻 『좌부녀』는 최근 들어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게 된 스토킹을 다룬 것 같다. 우연히 히로시를 알게 된 여자는, 정말 집요하게 그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히로시는 그녀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시절, 히로시와 친구들이 이지메를 했던 타지리 사나에. 우리가 그를 괴롭힌 것이 지금 되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잘못이 어떤 특정한 이유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유를 만들고, 그렇게 고통을 견뎌낸다. 하지만 『좌부녀』는, <오디션>의 세계처럼 그저 우연일 뿐이다. 이를테면 히로시는, 공사장 밑을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벽돌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그녀의 능력은, 보통 사람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고, 달리기는 남자보다 빠르다. 그녀는 정말 인간인 것일까? 히로시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모치즈키 미네타로는, 그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처음에 그녀는 그냥 스토커처럼 보인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그녀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 그녀는 정말 요괴인 것일까? 『좌부녀』는, 그 모든 것이 끔찍한 현실인 동시에 도시 전설(Urban Legend)이라고 말한다. 도시 전설을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도시 괴담이다. “그거 들었어? 화장터 지나는 길에 말야...”, “...의 CD 두 번째 곡에 죽은 보컬 목소리가...”, “늑대남자가 출현했다는 소문 들었어? 보름달이 뜨면 골목에서..”, “문을 열어보니 긴 머리의 키 큰 여자가 종이봉지를 들고...” 그렇게 도시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도시 괴담이라고 부른다.

<착신아리>나 『주온』도 도시 괴담에 속한다. <링>도 그렇다. 소녀들은 떠들어댄다. 저주의 비디오를 보면 1주일만에 죽는대...... 『주온』에서 아이들은 귀신들린 집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끊임없이 그 집을 찾아온다. 마을의 신기한 체험이나 귀신이야기가 제한적이었던 것에 반해, 외부의 장사꾼이나 유랑자가 들려주는 신기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잡담’이나 ‘민담’ 같은 것들이, 학교를 중심으로 한 도시에서 펼쳐진다. 친구의 친구가 그랬다더라, 신문에서 봤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순식간에 ‘사실’처럼 전화한다. 어느 역의 어느 사물함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어느 백화점의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성이 사라졌다, 차 밑에서 손이 뻗어나와 발목을 잡았다, 등의 괴담들. 그런 도시괴담을 다룬 영화들이 지금 일본 공포영화의 주류이다.

93년에 연재가 시작된 『좌부녀』는 발행부수가 32만부에 달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도시괴담으로서 『좌부녀』는 수많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지금 당장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좌부녀』의 공포는, 도시 괴담은 ‘위험한 현실에 대한 경종’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고, 우리의 문명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 수수께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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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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