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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확인하는 답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 편』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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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부터 이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가변 풍광과 그 고을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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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가 돌아왔다.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 네 권의 책을 냈던 유홍준이 다시 길을 나섰다. 7권 제주편 이후 3년 만이다. 이번에는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간다. 영월에서 시작해 단양, 제천, 충주, 원주, 여주 등을 거닐었다. 아름다운 산과 강과 호수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기에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뼛속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유홍준의 길을 지난 9월 15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독자들과 나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편 출간기념 강연회. ‘오색찬란한 가을에 만나는 남한강의 매력’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쓴 내용을 강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남한강이란 그저 남쪽으로 흘러오는 한강이 아니라 영월부터 남양주 양수리 두물머리까지를 의미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가변 풍광과 그 고을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4~5쪽) 

 

“한국에서는 지역 안배가 중요한데 늘 충청도는 빠져 있었다(웃음). 재밌는 것이 서울, 경기도에 대해선 안 썼다는 말은 안 들었지만 충청도를 안 썼다는 중학생의 편지도 받았다. 그렇다고 충청도를 쓸 의사는 없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루게 됐다. 남한강 물줄기는 조선시대에 경부고속도로나 마찬가지였다. 강원도 있는 분들도 동강은 잘 아는데 서강은 잘 모른다. 동강과 서강이 영월에서 만난 다음 양수리로 오고 북한강을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한강이다. 우리가 가진 강에 대한 개념도 한 번만 얘길 들으면 안다. 동강은 대개 잘 알고 있으나 거기부터 내려와서 서울에 입성하기 위해 여주까지 온 것이 이번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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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은 답사기

 

유 교수는 이번 책은 답사 편의를 위해 주변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첫발을 내디딘 곳이 요선정. 평창강으로 흘러드는 한강의 제2지류인 주천강에 자리 잡고 있다. 요선정은 주천강변의 높이 60미터쯤 되는 절벽에 올라앉아있는데 정자가 생기는 과정이 여러 사연을 갖고 있다. 유 교수는 요선정에서 내려다보는 강의 풍경이 꽤 좋다고 언급했다.

 

“해외에 나가도 우리나라의 강처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강은 드물다. 우리는 노년기 지형이라 씻겨나갈 것이 다 씻겨나갔다. 청년기 지형은 늪도 있고 위험하다. 강이 편안하게 흘러가는 강변은 이곳이 아닌가 싶어서 주천강에서 답사기를 시작했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원주IC로 들어가면 영월 가기 전 주천강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기왕후」와 「무사 백동수」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탐방객의 발길이 잦아졌다는 것인데 그래도 여느 유흥지처럼 마구잡이로 몰려드는 것은 아니어서 주천강 무릉리 요선정이라는 이름값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주천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곳 요선정은 나의 남한강 답사 프롤로그로 삼아 한 점 부족함이 없다.”(37쪽)

 

이어 법흥사로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갔다. 진입로가 참 아름답고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며 유 교수가 칭찬했다. 해인사는 들어가는 길이, 송강사는 나올 때의 길이 멋있다는 스님들의 말씀을 인용한 그는 법흥사가 오랜 역사동안 많은 것이 파괴됐지만 소나무 숲길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법흥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증효대사비문이다. 유 교수는 비문을 쓴 최언위를 빠뜨릴 수 없다며 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당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한 3대 최씨(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중 한 명이다. 나라가 망하면서 최치원은 가야산으로 가서 세상을 등졌고, 최언위는 왕건에게 가 『훈요십조』를 만들었으며, 최승우는 견훤에게 갔다. 기가 막힌 사연도 있었다.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팔공산 전투를 하고 협정을 맺을 당시 두 최씨가 앉아서 사인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변혁기에 지식인이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교훈을 준다. 답사기에는 이런 이야길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역사책에선 잡담이 된다. 역사는 유물과 함께 기억을 해야 생생하게 기억되고 오래 간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고 책에 썼는데 말이 참 멋있어서 내가 한 말 같지 않다(웃음). 남한강변 산속의 비석 하나를 가지고도 나말여초의 지식인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대개 고승의 비문을 보면 행했던 기적이나 명언 등을 적는데, 징효스님은 달랐다. 징효스님이 젊을 적에 도담선사를 찾아가 배움을 구했다. 이전에는 이름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이전에는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답했다. 스승이 너 같은 놈은 없다며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영월 주천강변에는 물줄기가 한반도 지형을 그리며 돌아가는 물의 흐름이 있다. 유 교수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하나를 꼽았다. 영월군이 서면의 이름을 한반도면으로,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꾼 것이다. 행정구역 이름을 관광객들을 위해 바꿨다는 것이 너무하다는 것.

 

“영월은 영월 사람들의 땅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토이다. 그것은 애칭 또는 별칭으로 그쳤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관광 홍보 효과는 보았겠지만 국토의 이름을 이렇게 희화화한 바람에 잃어버린 국토의 품위는 어떻게 회복한단 말인가.”(63쪽)

 

유 교수는 김삿갓에 얽힌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삿갓의 시라고 알려진 것들 중에는 다른 시인과 한시가 섞였다는 견해도 있다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김삿갓다운 면모가 잘 보이는 시라며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소개했다.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꼭 옳은 것은 아니고
是非非是非非是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은 그르고 또 그른 것이고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청령포로 넘어갔다. 영월은 조용한 곳인데, 역사상 크게 부각됐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단종이 유배를 살았다. 청령포 솔밭 속, 열일곱의 단종이 숙부에게 귀양을 가서 두 달을 살았다. 이곳은 2000년 단종문화제 때 복원됐는데, 단종은 이곳에서 두 달을 살다가 홍수가 나는 바람에 영월 읍내에 있다가 처형을 당했다.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광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단종은 매죽루라는 누각에서 「자규사」를 읊은 이후 이곳은 자규루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자규사」는 열여덟 살 소년이 쓴 시치고는 너무 애절하다. 이 시를 짓고 얼마 안 돼서 사약을 받고 단종은 죽었다. 자규는 소쩍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두견새, 접동새 등으로 돼 있는데, 생물도감을 보면 소쩍새와 두견새는 다르다. 두견새 소리는 슬프지 않고 낮에 우나 소쩍새는 밤에만 운다고 한다. 소쩍새는 밤새도록 계속 운다. 자규는 그래서 소쩍새를 의미한다. 만해 한용운, 김소월, 이미자 등 낮에 우는 두견새를 말하는데, 시인들이 두 새를 구별 못해서 그리 썼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단종의 무덤은 ‘장릉’에 있지만 왕릉으로 조성돼진 않았다. 장릉은 조선 왕릉 42곳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100리 바깥에 있다. 이유가 있었다. 세조가 단종을 죽인 뒤 중종 때부터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큰 문제가 됐다. 이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왕가의 권위에 위험이 될 수 있었기에 중종 때는 단종을 어떻게 복위시킬 것인가를 고민했고, 숙종 때는 단종을 노비 신분에서 노산군의 지위로 올렸다. 마침내 장릉을 만들었고, 이는 왕릉이 됐다.

 

단종의 과거사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한 왕은 정조였다. 장판옥이라는 제향 공간을 만들어 단종이 쿠데타로 무너질 때 희생되거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특히 환관이나 노비 이름 등까지 모두 영혼을 달래는 제를 지냈다. 단종애사의 마지막 과거사 정리는 300년이 지난 정조 때에야 이뤄졌다. 유 교수는 정조의 치적 중에 하나로 이것을 꼽았다. 특히 왕족과 사대부뿐만 아니라 서민, 노비의 이름을 쓴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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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을 찾다

 

영월을 떠나 남한강을 따라 가다보면 충주호를 지난다. 남한강 물줄기의 가장 아름다운 정자 한벽루가 있다. 진주 촉석루,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 등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정자다. 이들은 관에서 지은 정자들로서 현감, 군수가 그 고을의 가장 좋은 곳에 지었다.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자 마을 사람을 모아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충주호는 청풍호라고도 불리는데, 사연이 있었다.

 

“충주호로 가는 도로 표지판에 청풍호라고 쓰여 있다. 이유가 있다. 충주댐을 짓는다고 단양과 청풍이 수몰됐는데 이름도 충추호가 됐다. 이에 제천시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청풍면이 수몰 당했으니 주민청원 서명을 첨부해 청풍호로 해달라고 연판장을 돌렸다. 그러나 국토부에서 허락하지 않자 제천시는 시에서 만든 안내표지판에 청풍호반이라고 썼다. 그래도 되느냐고 제천시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세상엔 별명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고(웃음). 자기들은 청풍호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이어서 간 곳은 옥순봉. 청풍에서 단양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단양8경이다. 유 교수는 옥순봉의 진면목은 수몰되기 이전의 풍광이라며 단양읍이 수몰되기 전인 1983년에 옥순봉 사진을 찍었던 일화를 건넸다. 수상보트를 빌려 타고 옥순봉 사진을 찍었다. 조선시대 회화사의 현장이기에 그렇게도 집착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1897년 조선을 여행하면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을 낸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도 옥순봉을 보고 워낙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단양8경이란 옥순봉구담도담석문사인암상선암중선암하선암 등 8곳을 말한다. 단양8경은 관동8경과 함께 대표적인 8경으로 꼽히고 있지만 그 명칭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141쪽)

 

유 교수는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가 김하종의 「옥순봉도」와 비교해 얼마나 명작이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했다. 사군산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극찬도 따랐다. 비어 있는 마음으로 강변 풍경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는 감상도 함께했다.

 

그리고 채석장을 둘러본 풍경도 언급했다. 성신양회 채석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그랜드캐넌을 온 줄 알았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단양팔경보다 더 감동적이라고 했다. 채석장의 넓이는 150만 평(480만 제곱미터), 채석장 깊이는 해수면 기준으로 140~260미터. 함께했던 예술가들도 감동을 표했다. 유 교수가 언급한 다음 답사는 4.19의 시인 신동문이었다.

 

“4ㆍ19혁명 때는 배후세력으로 몰려 서울로 도피해서는 「아! 신화 같이 다비데군들-4ㆍ19의 한낮에」라는 뜨거운 시를 발표했다. 염무웅 선생은 당시를 회상하기를 “1960년대에 신동문은 혜성과도 같이 빛나는 시인”이라고 했다. 4ㆍ19혁명을 계기로 등장하는 참여시의 선구로는 신동엽과 김수영을 꼽고 있지만 신동문이 더 앞섰다.“(196~197쪽)

 

“쿠데타 정권이 들어서고 신동문 시인은 절필을 하고 단양으로 낙향했다. 그는 지식과 글이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식인이었다. 「내 노동으로」라는 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시인의 마지막 시였다. 그는 단양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면서 살았다. 독학으로 침을 배워서 마을 사람들에게 침을 놔줬는데, 효과가 좋았다더라. 돈을 받지 않고 노래를 한 곡해야 침을 놔줬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그를 ‘신바이쩌’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 교수는 중종 때 퇴계의 제자이자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의 이야기도 꺼냈다. 감동적이다. 그는 퇴계가 유일하게 추천서를 써준 제자였다. 황준량이 단양군수로 와서 고을의 참상을 살피니 심각했다. 백성들이 부역을 견디지 못하고 산속으로 도망을 가기 일쑤였다. 황준량이 10년간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달라는 내용 등을 담은 상소문을 올렸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10년 동안 부역과 세금이 면제됐다. 유 교수는 이런 목민관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이냐며 지자체선거와 총선 때 제대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월에서 배를 타고 가면 나오는 곳이 영춘이다. 남한강이 길게 쭉 내려가는 영춘가도가 무척 아름답고 온달산성 또한 아름다워서 이를 책 표지로 썼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온달산성에 대해 한 건축가는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어지고 우리 선조가 자연을 어떻게 경영하면서 인공과 자연이 조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3대 산성으로 온달산성, 상주의 견훤산성, 보은의 삼년산성을 꼽았다.

 

나머지 길도 이어졌다. 죽령고개 길에 자리한 목이 없는 불상인 장육불상. 통일신라 말기의 명작이나 목이 없다. 제천 시내에서 볼 수 있는 7층 보존석탑 하나로 제천의 역사가 살아난다는 감상도 나눴다. 

 

“제천에서 왕조가 망할 때 마지막 항거가 있었다. 일본군이 제천이 폐허를 만들었다. 제천에는 그런 아픔의 현장이 있다. 박달재를 넘어가면 울고 넘는 박달재의 별의별 버전이 다 있다. 책에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를 넣었는데 경기 여주의 고달사 터가 폐사지 맛이 참 좋다. 신륵사의 보제존자 석종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지었는데 보제존자의 고상한 도풍에 대한 감동을 드러낸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문화유산의 뜻을 새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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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저 | 창비
신간 ‘남한강편’은 우리 국토의 핏줄이라 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다. 영월에서 시작해 단양, 제천, 충주, 원주, 여주를 거쳐 한강을 향해 이어지는 유홍준 교수의 이번 답사기는 남한강 유역에 산재한 수려한 경관과 평화로운 강변 마을의 풍경, 각지의 문화유산에 얽힌 풍성한 이야기로 우리를 또다시 감탄하게 한다. 아득한 역사와 아름다운 풍광, 가슴 찡한 사람살이의 이야기가 어느 곳보다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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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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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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