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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의 근본과 정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독자와 함께 떠나는 유홍준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유산답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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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국내편이 우리 국토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면서 아끼는 마음을 고취시키는 데에 일조했다면, 이번에 일본편은 일본의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확인하고 상호교류하고 섞이면서 발전해가는 문화의 진면목을 깨우쳐준다고 할 수 있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 덕분에 여유로운 점심 식사를 했다. 아리타 마을 구석구석에 있는 도자기를 구경할 자유시간도 획득했다. 다음 장소는 도산신사로 덴구다니 가마터와 이삼평의 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골목으로 들어가 삽십 여개의 계단을 오르니 철길이 보인다. 한국어로 ‘건널목 위험’이라고 써져있는 표지판 앞에서 얌전히 건널목의 신호를 기다려 마침내 당도한 도산신사는 고려 신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퍽 크고 넓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만큼, 한국어로 된 A4 용지 한 장짜리 안내도도 받을 수 있다. 뒤편에는 전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가 있는데, 이 역시 한글어 표기로 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무렵 ‘개념의 힘’을 강조했던 유홍준 교수의 신사에 대한 설명 부분을 복기해본다. 신사의 본전 앞까지 가며 놓여있는 도리이(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출입문), 고마이누(수호상), 도로(석등, 청동등), 데미즈야(손과 입을 씻는 세면대)를 눈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안내도에도 흑백사진과 설명이 함께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다른 곳과는 달리, 여기에 놓인 도리이, 고마이누, 도로, 데미즈야는 모두 청화백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도산신사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디테일이다. 본전 앞에는 무려 2000년이나 됐다는 스즈끼(鈴木)라는 나무가 수문장과도 같은 위엄을 풍긴다.

도산신사는 1658년에 세워진 오래된 신사인데, 1917년 아리타 요업 3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의 도자기를 일본에 전수한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추앙하고, 도조 이삼평과 나베시마 초대 번주를 신사에 모시게 되었다. 이 때 신사의 이름도 지금의 ‘도산신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도조 이삼평 비를 보기위해 오솔길로 향했다. 그렇다고 본전 초입에 있는 후카가와 로쿠스케의 동상과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비를 놓치지는 않았다. (p.136 참조) 손을 씻는 데미즈야 왼쪽 측면에는 이삼평을 도조로 추앙하는 것을 추진했던 후카가와 로쿠스케라는 사람의 흉상이 있다. 더불어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방랑시인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비가 있는데, 이 역시 유홍준 교수의 해설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우리는 매순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상일보를 보고 우산을 준비했지만 이 날만큼은 날씨가 좋았다. 아침에는 조금 흐리더니 이때는 파란 하늘까지 볼 수 있었다. 오솔길은 반듯한 돌로 잘 닦아놓았는데 가운데만 이끼를 심어놓아 제법 운치가 있다. 물론 유난히 미끄러운 것은 조심해야 한다. 오래 걷지 않았는데 조금 숨이 가쁘다고 생각할 즈음 ‘도조의 언덕’에 도착했다. 한 눈에 아리타의 평화로운 정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때마침 닳아버린 카메라 배터리가 야속하다. 아쉬운 대로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이 평화로운 마을은 도자기수출로 인해 산업도시로 번성했다고 한다. 그러니 백토 광산을 발견하여, 지금의 이마리야끼(아리타야끼라고 불리우던)의 기술을 전수한 이삼평이 보통 천황, 학자 등을 모시는 신사에 모셔지고, 도조로 추앙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역사를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이삼평의 고마움을 지금까지 기리는 아리타인들의 마음도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4월 말과 11월 말, 이삼평을 기리기 위한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여유가 되면 다시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도조 이삼평 비에는 역시나 한글 설명이 새겨져있다.

‘오늘날도 도자기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선인이 남긴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공적을 높이 받들어 존경하고 있다.’


도조 이삼평 비 앞에서

임진왜란 때 강압적으로 바다 건너 규슈에 오게 된 이삼평, 그가 일본에 오게 된 연유나 과정은 개인사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었겠지만, 하지만 이곳에서 전수하고 꽃피운 문화는 한 나라의 역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런 인물들이 어찌 비단 이삼평뿐이겠는가. 답사단은 또 다른 역사의 증인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목에는 도자기 상점들이 있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다음으로 답사단이 향한 곳은 보은사라는 절인데 ‘백파선’이라는 도공을 기린 곳이다. MBC ‘불의 여신 정이’라는 사극을 본 독자들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백파선은 임진왜란 당시 끌려온 김해 출신 도공 김태도의 아내로 ‘정이’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후손들을 이끌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원료가 발견돼 도자기 생산이 시작된 아리타의 히에코바마을로 이주했고, 자기 생산에 종사하다가 1956년에 서거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추모비는 1705년 그녀의 증손자가 새겼다고 한글 안내판에 기록되어있다.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백파선(百婆仙)은 그녀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증조할머니를 기리는 호칭이다. 만료묘태도파지탑(萬了妙泰道婆之塔)이라 새겨진 비석을 확인하며 보은사 곳곳을 둘러본다. 사찰 건물 양쪽으로 세워진 도자기 표지판이 인상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박인숙 가이드의 손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들려있었다

아리타 마을의 도자기 상점에는 특색 있는 디자인과 무늬가 실용성을 만난 작품들이 즐비하다. 정신없이 구경하던 답사단은 규슈 도자기 문화관에서 30분의 시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다행히 규슈 도자기문화관은 아리타 마을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미술사학과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답사지라지만,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다소 따분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곳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큐레이터 한 분을 만나, 박인숙 씨의 동시통역을 통해 유의미한 도자기에 대한 집약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제 3전시실에 있는 규슈의 고도자기를 중심으로 큐레이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자기를 만들 때 차 도구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이마리야끼는 아리타야끼를 얘기하는 것. 초기 이마리야끼는, 생활자기는 단색이었고, 모양이 완벽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색이 입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초기 중국과 일본 자기가 나란히 놓여져 있어, 비교가 가능하다.”

일본 도자의 최고급이라 할 수 있는 가키에몬, 장군에게만 헌상하던 나베시마, 시대별 이마리야끼를 둘러보니 어느덧 박물관 관람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쉽지만 제2전시실의 현대 도예작가들의 작품을 잠시 훑어 보는 것으로 관람을 마쳤다. 하루 동안 일본의 도자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돌아보는 숨가쁨 일정을 마쳤다. 생각지 못한 강행군에 지친 심신을 온천물과 따끈한 가이세키 정식으로 달랜다. 답사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셋 째날(12월 13일, 금요일)

마지막 날 아침, 창밖으로 보니 땅이 젖어있다. 하늘도 흐릴 때로 흐렸다. 이쯤 되면 일본 여행에는 우산을 꼭 지참해야 한다는 진리가 머릿속에 절로 새겨진다. 배움이란 이렇게 경험에서 시작할 때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캐리어에 짐을 챙겨 넣고 버스에 실은 답사팀은 우레시노를 떠났다.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이 길목에서 오늘은 무엇과 마주하게 될까.


-백제인들의 마지막 방어성, 수성(水成) (pp.213~222)

마지막 날 가는 장소는 두 군데다. 백제 멸망 후 백제인들이 쌓았다는 과 일본의 학자였던 스가오라노 미치자네라는 실존인물을 천신으로 모신 ‘다자이후 덴만궁’이다. 후쿠오카 현에서도 다자이후 시에 이 두 곳이 모여 있는 까닭은 7세기부터 규슈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부가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답사단은 먼저 ‘미즈키’라고 불리는 수성(水成)으로 향했다. 유홍준 교수가 한국인이라면 다자이후에 와서 미즈키(수성)를 가봐야 한다고 강조하던 곳이다.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유 교수는 수성에 와서 한일 관계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수성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한일 역사 관계를 넘어 당시 7세기의 동북아의 흐름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일행을 반기는 것은 ‘수성 터’ 유적지임을 알리는 비석이었다. 비석 옆에는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 정부가 신라, 당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성이라는 설명이 한글로 나와 있다. 그러나 수성은 정확히 말하면 일본 정부가 아니라 백촌강 전투에서 참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인들이 쌓은 것이다. 표지판이 있는 자리에서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면 동문(同門)초석(礎石) 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주춧돌을 볼 수 있다.

“만약에 동문에 있는 이 기초석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수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 할 수 없었을 거에요. 664년 아스카 시대에 만들어진 수성은 나당연합군의 침략에 대비해 만들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곳의 미즈키 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남아있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국문학자들이 지명을 연구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것 때문일 겁니다” 박인숙 가이드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수성이 있었던 이 지역은 현재도 ‘미즈키’라는 동일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동문 주춧돌 뒤편으로는 수성의 자취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이 있다. 당시 수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연해 놓은 표지판 역시 이해를 돕는다. 몇 백 년이 지난 후,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책으로만 접했을 때는 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 막연하게 다가왔다. 사면에 전부 물을 담아놓은 해자(垓字)가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조차 어려웠지만, 막상 언덕 위에 올라가 재연도를 보며 박인숙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수성의 정체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눈앞으로 보이는 곳에는 오노성이 위치한 큰 산이 있고 좌우 도랑에는 물이 흐른다. 적이 오면 평소에는 비워둔 해자에 물을 흘려보내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이 1차적 방어, 북쪽에 건설한 오노성으로 2차 방어가 되는 것이다. 방금 전 직접 확인했던 동문의 주춧돌과 재연도에서 나타난 동문의 위치를 일치시키며 수성의 존재를 머릿 속으로 복원해본다.


동문 주춧돌

대야성(오노성)은 수성을 건설한 다음 해에 만들어졌다. 대야성(오노성)이 일본에는 유래가 없는 산성이라는 것이 바로 백제인들이 만들었다는 방증이 된다. 특히 오노성이 충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산성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책의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오노성에 오면 더욱 더 실감이 날 겁니다. 이번 일정에 넣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일본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스케줄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침에 몇 번 부탁을 했는데 운전기사분이 “무리데스”라는 말만 반복하네요.”


박인숙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답사단

이 지점에서, 책을 읽은 독자라면 금방 눈치를 챘을 듯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대야성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데스’라는 말을 운전기사로부터 듣고도 유 교수가 3박 4일을 졸라 대야성에 올랐다는 에피소드와 지금의 상황이 퍽 흡사하다. 그 때 유 교수와 함께 무리한 코스를 동행한 이가 바로 박인숙 가이드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번에도 불굴의 의지로 운전기사를 설득해보았으나,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고, 역시 좋지 않은 날씨 탓에 오노성까지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는 소식을 전했다. 몇 발짝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오노성에 올랐던 유홍준 교수와 답사팀을 대신하여 이번에는 환상적인 조망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여행은 변수와 선택의 연속임을 실감하며 마지막 답사지로 향했다.


-다자이후 덴만궁 (pp.204~213)

북규슈 답사의 마지막 장소는 ‘다자이후 덴만궁’이다. 이번 일정에서 방문하는 세 번째 신사지만 마음의 무게감은 다르다. 어제 방문한 두 곳의 신사는 이삼평을 신으로 모셨거나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방문한 것이었지만 지금 가는 곳이 대표적인 일본 신사이기 때문이다. 신사의 기능이나 종류에 대한 설명은 책으로 갈음한다. 어떤 부연설명도 책에 수록된 내용보다 나을 수 없을 듯 하다. 일본에만 8만 5천개가 넘는 신사가 있는데 모셔놓은 신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오늘 방문할 ‘다자이후 덴만궁’은 일본 역사상 최고의 학자라 불리우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라는 실존인물을 ‘학문의 신’으로 모셔놓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입시 전후에는 매년 7백 만 명이 합격을 기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다자이후로 온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다자이후에 오게 된 까닭은 좌천을 당했기 때문인데, 사후에는 이렇게 신격화되었다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신사’는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장소도 아니고 어쩐지 거부감을 먼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덴만궁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각양각색의 물건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이 그 거부감을 잊게 만든다. 일본인들은 신사를 놀이 삼아 가기도 한다는 박인숙 씨의 설명이 바로 이해되었다. 소소한 볼거리들이 가득해 발길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본전으로 가는 길목, 앞에 보이는 다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마침내 다자이후 덴만궁의 본전으로 들어섰다. 본전을 이루고 있는 지붕은 편백나무로 뒤덮여있고, 설명대로 녹나무와 매화나무가 본전 좌우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12월 중순의 매화고목(비매 飛梅)은 앙상한 가지만을 내놓고 있어 두 달 후면 아름다운 매화로 만개하는 풍경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일본 굴지의 매화 명소라는데 입시철인 2월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니 기회가 된다면 이곳을 다른 계절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성수기는 아니지만 제법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꽃구경을 포기한 대신, 우리는 한결 여유롭게 덴만궁 구석구석을 관망할 수 있었다. 때마침 본전 안에서 무릎을 꿇고 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답사단은 본전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었다. 1, 2만엔 정도를 내면 신발을 벗고 본전 안으로 들어가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덴만궁 본전 앞

본전 뒤쪽 식당가로 가는 길 거대한 연리목을 발견했다. 높게 솟아 엉켜있는 늠름한 모습이 덴만궁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연리목 주변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걸어놓은 종이쪽지들과 표주박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합격을 기원하는 학생들의 간절함은 이곳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온도로 뜨겁다. 연리목을 지나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종튀김과 우동을 먹는데 한 켠에 비닐로 쌓여진 하얀 물체가 보인다. 바로 덴만궁 앞 상점에서 직접 구워서 판다는 야끼모치(찹살떡)이었다. 아직 따끈한 찹쌀떡을 한입 물었다. 적당히 달달한 팥소는 팥알이 살아있어 식감이 제법 괜찮다. 지인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즉석에서 구워 먹는 것이 더 맛있다.

답사단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규슈편’의 3분의 2의 마침표를 찍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19살의 청년부터, 정년퇴임 후 고미술에 흠뻑 빠져있다는 한 어르신까지 연령부터 행로까지 다양했던 답사단은 2박 3일 같은 시공간에 있다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한 권의 ‘나만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만들어졌다.


[관련 기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한일 과거사를 고민하다
-유홍준 “일본, 욕하기 이전에 아는 것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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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 유홍준 저 | 창비
‘답사기’ 국내편이 우리 국토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면서 아끼는 마음을 고취시키는 데에 일조했다면, 이번에 출간된 일본편은 일본의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확인하고 상호교류하고 섞이면서 발전해가는 문화의 진면목을 깨우쳐준다고 할 수 있다. 미술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조예가 깊은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일방적인 역사 인식이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쌍방적인 시각, 더 나아가 동아시아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시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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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엘프에디터

지금은 남의 목소리를 듣고 정리하는 일을 합니다. (트위터 @tappingsth)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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