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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난 엄마, 넌 아빠

초보 엄마 생활 200일을 맞이하는 지금 일하는 엄마가 너에게도 좋은 엄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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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휴직이 끝나고 여의도로 돌아왔다. 딱 180일 만에 지하철을 탔다. 임신 중 나를 힘들게 했던 이명현상은 사라졌고, 몸무게는 원상 복귀가 됐다가 수유를 끊자 2kg이 늘었다.

곧 200일이 되는 아들의 엄마가 됐다. 초보엄마 딱지를 붙이자 여기저기에서 조언이 쏟아진다. 회사 복귀 소식을 전하니 안쓰럽게 쳐다본다. 모두들 ‘파이팅’을 외쳐 주는데, 과연 내 아들은 무슨 마음을 갖고 있을까? 어제는 퇴근 후 아이를 안아주면서 “엄마 보고 웃어줘 봐”라고 하니, 자꾸 외할아버지만 쳐다보고 실실 웃는다. 삐친 건가? 일주일 만에? 정말 그런 거야? 잠깐 동안 슬퍼졌다가 젖병을 씻어야 해서 냉큼 부엌으로 달려갔다.

 

사생활 없는 200일을 보내고


200일 전의 일들을 회상해본다. 뒤뚱뒤뚱 걸음걸이가 어색했고, 두 달에 걸친 입덧은 무난한 편이었지만 공복 상태는 견디기 힘들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아침 11시에 곰탕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외근을 다녀오는 길에는 택시 냄새가 역겨워 지하철을 탔는데, 누구도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자주 이용하는 9호선은 그나마 임산부 보호석이 많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배를 불뚝 내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출산 예정일보다 10일 먼저 태어난 아기 덕분에(?) 나는 출산 전날까지 출근했고, 산후조리원에서 고물 노트북을 빌려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기사를 썼다. 산후조리원은 감옥이었다. 따뜻한 구스 이불과 끼니때마다 바뀌는 친환경 밥상은 좋았지만, 공기는 답답할 뿐이었다. 언제 수유 콜이 울릴지 몰라, 낮잠을 자도 숙면이 아니었다. 조리원 퇴실 후, 3주간의 친정집 생활을 거쳐 우리 집에 돌아왔을 때, 몸은 힘들었지만 비로소 마음은 편했다.

 

홀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수유를 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한두 숟갈 먹어야 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엉겁결에 찾아온 100일. ‘100일의 기적’ 또는 ‘기절’이라고들 하던데, ‘순순’이라는 태명을 지어준 탓인지 약간의 기적이 찾아왔다. 다만, 잠투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이를 배 위에 눕히고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스마트폰. 엄마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열심히 보다가 뒤늦게 수면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도했다. 엄마들의 필독서 『베이비 위스퍼 골드를 읽고 뭐라도 좀 해보려 했으나, 나의 부족한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일주일 만에 포기, 그냥 안고 재우기 200일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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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냥 사랑하는 내 아들

 

 

반갑고 서글픈 엄마 마음, 그런데 아빠는?


회사에 복귀한 지 1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컴퓨터 키보드가 어색하다. 아웃룩도 어색하고 네이트온도 어색하고 모든 게 다 낯설다.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한다. 내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이 낯선 일들이 조금 반갑다. 밥 먹고 싶을 때 먹어도 되고, 여유 있게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행복을 느낀다. 힘든 건 퇴근 길이다. 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보고 싶어 마음이 초조하다. 막상 지하철을 타면, 회사에 있는 10시간 동안 아들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괜스레 서글퍼진다.

 

출산 후 생긴 버릇이 있다. 남편에게 칼퇴를 종용하는 일.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은 까닭이다. 지난 주에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함께 퇴근을 했다. 애간장이 타는 마음으로 종종걸음을 하는 나에 비해 남편은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더 빨리 걸을 수 없냐”고 채근했다. “나는 아들을 1분이라도 일찍 보고 싶은데, 왜 당신은 그렇지 않냐?”고 물으니, 남편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난 아빠니까”라고 대답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평소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고 “아이가 ‘아빠 껌딱지’가 됐으면 좋겠다”, “아들바보가 되겠지?”라고 자신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내 아이는 이만하면 순한 편이었는데, 남편은 잠투정을 하는 아이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아이를 안고 있다가 침대에 내리친 적도 있다. (물론 강도가 세진 않았지만 나에겐 충격이었다)

 

며칠 전,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워킹맘과 점심을 먹었다. 남편과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더니, 맞장구를 치길래 반색했는데, “내 마음 이해하죠?”가 아니었다. 남편의 마음이 절실히 공감이 된단다.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지만 그래도 짜증은 나고. 자기도 잘하려고 하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면 하기 싫어진다”고 했다. (참고, 스스로가 여자 아닌 ‘남자’, 엄마 아닌 ‘아빠’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는 분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남편에게 물어 보니 “딱 내 마음이네”라고 덧붙였다. 그래, 그러니까 엄마고 그러니까 아빠인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방법이, 표현이 다를 뿐이다. 남편에게 “왜 아이를 더 살뜰히 돌보지 못하냐”고 투덜거렸던 내 모습이 스쳤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 다를 수밖에 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엄마 노릇, 잘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고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해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모두들 아이를 낳으니까 임신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내로서 갖는 감정, 엄마로서 갖는 마음이 실로 궁금했다. 모성애가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가져보고 싶었다. 단순히 그 마음이 궁금해서 엄마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이를 감사히 받았다.

 

일찍 결혼해 벌써 학부모가 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아이가 얼른 걸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걸으면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라며 겁을 줬다. 그래도 난 임신 때보다는 출산 후가, 50일 때보다는 100일이, 100일보다는 지금이 더 편하고 좋다. 아이의 상태와 감정을 몰라 전전긍긍했을 때보다 조금 알 것 같은 현재가 더 좋다.

 

워킹맘에 대한 숙제는 천천히 풀어가려고 한다. 친정엄마에게 가장 큰 빚을 지게 됐지만, 죄송한 만큼 잘해드리고자 한다. 서효인 시인이 『잘 왔어 우리 딸』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의 삶과 내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지 않는 태도. 나는 나대로 행복하고, 나의 행복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삶. 미루어 짐작해 걱정하지 않으며, 여기와 오늘에 응전하는 자세.”를 갖고자 한다.

 

육아 책만 읽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다. 내 아이의 성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 아이의 성장에도 눈길을 주는 엄마이고 싶다. 내 아이가 사회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오랜만에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조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며 추천한 책이 있다. 제목이 『아빠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다. 책 소개를 읽으니 코끝이 찡해진다. 작가의 전작은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다. 내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앗, 미루어 짐작해 걱정하지 않기로 했지!) 마음을 다잡고 아직도 낯선 키보드를 톡톡,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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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 김영진 글그림 | 길벗어린이
이른 아침이에요. 아빠가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조금 전까지 잠들어 있던 그린이가 현관까지 단숨에 달려 나왔어요. 아빠는 그린이를 보는 것만으로 얼굴이 환해졌지만, 그린이는 아니었어요. 벌써 며칠째 그린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했다가 그린이가 잠든 뒤에야 퇴근한 아빠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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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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