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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 『사신의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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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뭘까? 전쟁, 귀신, 정치, 호랑이, 황사, 지구 온난화 등등. 무서운 게 많은 세상이지만 정말 무서운 건 역시 죽음일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운전이다. 또 하나가 외출이다. 그러니 운전해서 밖으로 나가는 걸 참으로 싫어한다고 할 수 있다. 집 안에서는 운전할 일이 없으니, 그냥 운전이 싫다는 게 더 간단한 표현일까? 어쨌거나.

 

그럼에도 지난 주말 운전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내와 10개월 된 아기와 함께 아내의 선배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운전은 참 피곤한 짓이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는 항상 막히고, 비싼 외제차가 가까워지면 털끝이 곤두선다. 나른한 오후에는 졸음까지 몰려 오기 마련. 지겨움에 지쳐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예상 도착 시각을 보는 나는, 교실 뒤에 있는 시계를 훔쳐보다 걸려 복도로 쫓겨난 15년 전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

 

졸음운전 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지나 함께 수다를 떠는 대신 홀로 카페로 향했다. 권여선 소설가의 신작 『토우의 집』을 읽어나갔다. 역시 아름다운 문장이군,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더랬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기지개를 켰더니 1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아, 나의 집중력이란 1시간이 한계이군, 하며 좌절하는데 밖을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스노타이어로 중무장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도 폭설은 두려운 상황이다. 10년에 한 번이라도 눈사람 만들 수 있다면 행운인 부산에서 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요즘은 이상기후 때문인지 부산도 눈 쌓이는 게 예전보다는 잦다고 하지만.) 눈 쌓이기 전에 빨리 탈출해야 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차로 오라고 한 뒤 시동을 걸었다.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부앙, 하고 달리면 꽤나 멋있을 테지만 출산을 위해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갔을 때도 깜빡이 다 켜고, 신호 다 지킨 나인지라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니 아스팔트에 자석이라도 달린 듯, 눈은 더 빠르게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관용 차량을 긁었을 때보다 훨씬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때 의식 위로 떠오른 첫 번째가 교통사고 특약으로 넣어둔 종신보험이었다. 두 번째는 아내와 아기. 그리고 세 번째가 『사신의 7일』이다. 눈보라를 뚫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사신의 7일』에 이어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가 생각났다. 그렇다. 이 글은 『사신의 7일』과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를 폭설이 내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벌벌 떨면서 떠올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찾으려면 더 많겠지만,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 일본 소설가가 썼다는 사실이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 표현할 정도로 빠른 전개와 탄탄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둘째 공통점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다. 두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다. 자식을 잃은 방법도 비슷하다. 두 아버지 모두 살인범의 손에 자식의 생명을 뺏겼다. 자연사도 아니고 사고사도 아니라 아동 살인이라는 점이 상황을 더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아이를 잃은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설정은 같지만 두 작품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에서 주인공 도이 요스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하다. 아들을 살해한 살인범이 사형당하면서 주인공도 자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찾아간 곳은 국가가 운영하는 자살센터. 자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무원이고 자살에 이르는 과정은 행정적인 절차다. 자살을 국가가 관리한다는 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어떻게 자살센터에서 개인이 죽어가는지를 묘사했다. 이렇듯 독자에 따라 이 작품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담한 심정으로 감성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개인의 죽음을 국가가 관리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의 서사가 다소 단순하다면 『사신의 7일』은 좀 더 복잡하다. 등장인물도 더 많다. 『사신의 7일』에는 아빠만이 아니라 엄마, 그러니까 부부가 전면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여기에 사신까지 더해졌다. 일주일 후에는 죽을 운명인 야마노베는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딸을 죽인 살인범 혼조를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기 위해 집념을 불태운다. 여기서 설정은 한 번 더 꼬이는데, 혼조에게도 사신이 붙는다. 이 정도까지만 본다면, 결말은 어느 정도 예고된 듯하지만 반전이 있다. 지나친 스포일을 막기 위해 줄거리 소개는 여기에서 그만 멈추고.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인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극도 재밌었지만,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따로 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야마노베가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 그것인데, 가타부타 말하기보다는 직접 인용하자면 이런 구절이다.

 

“변명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솔직한 심정이야. 그렇다고 용서해달라는 건 아니야. 난 죽는 게 무서웠어. 그걸 너한테 말하고 싶어서.”
“혈압계가 무서운 것처럼.” 나는 인상을 썼다. “인간은 옛날부터 죽는 걸 무서워했잖아요. 모든 인류가, 어떤 시대에서든 분명 그랬을걸요. 종교도 그 공포를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생겨난 부분이 있을 테고. 신앙에 눈을 떴으면 어땠을까.”
논리정연하게, 제 멋에 겨워 그렇게 말했던 나는 요컨대 나한테 죽음의 공포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나도 중간까지는 성실하게 살았어.”
“언제까지?”
“네가 태어나고 얼마 뒤까지.” 아버지는 곧바로 대답했다. “할 일은 하고 해선 안 될 일은 안 했어. 죽는 건 무서웠지만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정말 남들하고 똑같이 생각했지. 다만.” 그때 혈압계가 멈췄다. 소리가 울리고 기록지가 움직였다. 그 용지를 잘라내고 아버지는 오른팔을 뺐다. “다만 더 무서운 사실을 알아버리는 바람에.”
“죽는 것보다?”
(중략”)
“너야.” 아버지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지목을 당한 나는 당황했다.
“너도 언젠가는 죽어.” (319~320쪽)

 

솔직히말해서.jpg

 

소설 속 야마노베의 아버지는 “어쨌든, 난 살아보겠다고 이리 열심히 살고 있는 이 아이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무서워졌어. 죽음이 정말 무서워졌고, 무서운 것 이상으로 용서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기분까지 들었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폭설이 내리는 고속도로에서 공포를 경험했던 그 순간, 어쩌면 그 공포의 실체는 야마노베의 아버지가 규정한 그 공포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 역시 공감했다. 아내의 공감은 실로 오랜만이었는데, 그녀 역시 아이가 생기고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이 미칠 것 같은 공포로 다가왔다고 했다. 올해는 특히 탈것에서 사고가 잦아, 외국 출장이 몹시 무섭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주세요'기도를 하고, 항상 예사로 넘겼던 호흡 마스크 위치와 착용법, 구명 튜브 사용법을 정독할 정도라고. 아내가 적은 글 일부분을 인용하자면.

 

출장지에 가서도 걱정은 계속된다. 밤에 잘 때 엄마를 찾는 것은 아닌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마지막에 보고 온 모습처럼 변비가 아직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걱정만 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닌 걸 알면서도 시시때때로 불안과 걱정이 엄습해 소름이 돋는다. 인천공항(혹은 김포)에 내리는 것만으로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인천에서 집으로 가는 험난한 고속도로(?)가 남아있다. 사고가 나지 않고 집에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내렸다고 해서 또 불안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왕복 4차선의 횡단보도가 남아있다. 교통사고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만약 도착시각이 밤이라면 납치도 배제할 수 없다. 아파트에 도착했다고 안도할 수 없다. 아직 낡은 엘레베이터가 남아 있…

 

그래서 엄마와 아빠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어쩌면 나 없이 남겨진 아이이거나 나보다 먼저 아이가 가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사신의 7일』을 읽으며 떠올렸다는 독후감, 이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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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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