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서울이 익숙한 사람이 서울을 여행하는 법” (G. 김예슬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90회)
“건축 여행은 시간 여행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책 『서울 건축 여행』을 쓰신 김예슬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4.25)
건축을 여행한다는 건 건물이 왜 지어졌는지, 누가 살았는지, 왜 남겨져 있는지 생각하는 일이다. 건축을 통해 서울을 여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건물을 구경한다는 명분으로 벽돌과 유리창을 들여다보지만 사실 서울이 겪은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 끝에는 사람이 있다. 당시에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건축주, 이용한 사람, 숱한 날 지나가며 그 건물을 봤을 사람들 말이다.
한국사 시간에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역사'는 두 발로 직접 걸어 닿는 순간 '사건'이 된다. 아는 사람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해외에 가면 미술관, 맛집 등 나름대로의 주제를 정해 여행하곤 한다. 관광객이 너무 많은 곳 말고, 여유 있고 현지인만 알 것 같은 숨은 장소를 궁금해한다. 서울 역시 그렇게 여행해 보면 어떨까? '서울 건축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예슬 작가님의 책 『서울 건축 여행』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지만, 일상이라는 무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죠. 김예슬 작가님도 그랬습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면서 나의 생활이 무채색으로 변하는 걸 느꼈던 건데요. 그러다 어느 날, 일상적인 공간을 여행으로 만들어버리자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곳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탐험하자고요. 그 시선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건축이었습니다. 이른바 ‘건축 여행자’의 시작이었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서울 건축 여행』을 쓰신 김예슬 작가님을 모시고, 너무나도 익숙한 서울이라는 공간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고, 건축 안에 담긴 역사와 사람, 시간을 좇는 일이 선사한 반짝임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서울 건축 여행』이 작가님의 첫 책인데요. 심상치 않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요. 정식 출간 전에 이미 세계 곳곳에서 판권 문의를 받고 있다고 하고요. ‘그래 제본소’에서 펀딩을 하던 당시에도 목표 금액을 하루 만에 달성하고, 총 펀딩액을 무려 천만 원 이상 달성했다고 합니다. 이런 관심을 예상하셨나요?
김예슬: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책이 무사히 출간되어서 서점에 깔리는 것까지가 저의 목표였기 때문에요.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선물 같은 기분이 들고요. 또 책의 제목 따라서 간다고, 예측하지 못한 분들도 만나고 오늘 팟캐스트까지 오게 되었잖아요. 모든 것이 저에게는 여행 같습니다.
오은: 김예슬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휴가를 내지 않고도 주말을 여행자처럼 쓰기 위해 건축 여행을 시작했다. 2015년부터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 전국을 여행했고, 1000곳이 넘는 건물을 기록했다. 국문학과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건물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작가님은 회사 다니면서 늘 일상이 똑같고, 휴가를 내기도 어려워서 있는 곳에서부터 여행을 새롭게 다녀보면 어떨까 생각한 뒤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고 하세요. 그것이 건축 여행자의 시작이었잖아요. 사실 그 당시에는 책 출간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가는 곳마다 기록을 이어가게 됐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김예슬: 일단 제가 처음 계정을 만든 게 2015년이었는데요. 당시 서울역 근처 서울 스퀘어 빌딩 안에 있는 자동차 회사의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하던 공부나 늘상 가던 조직과는 다른, 딱 정형화된 회사였거든요. 그런 것이 저에게 낯설기도 했고요. 또 반복되는 일상이 새롭기도 하면서 지루하기도 하고, 인턴이었으니까 정직원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도 있었어요.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있었죠.
그런 와중에 출퇴근을 할 때 매번 여행객 분들을 마주치다 보니까 저도 여행이 하고 싶어졌어요. 또 회사 안에 라운지가 있었는데요. 그 위치에서 구 서울역사와 고가 도로가 너무 잘 보여요. 매일 쉬는 시간에 그 장소를 보는 게 일종의 낙이었거든요. 또 회사 뒤편에 있는 회의실에서는 남대문 교회랑 힐튼 호텔이 너무 잘 보이는 경관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회사 목걸이를 반납하는 순간 이 장면은 못 보는 거니까 이 낙으로라도 회사에 열심히 다니자,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겹치면서 나도 있는 환경 안에서 여행을 해볼까, 서울을 여행하는 것처럼 한번 다녀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는 서점이랑 영화관 같은 곳이 떠올라서 기록을 시작했죠. 또 서울이나 한국 하면 떠오르는 한옥이라든가 궁궐 같은 곳들을 찾아가 보는 식으로 여행을 이어갔어요. 수원 화성을 간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오은: 기록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품을 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발품도 팔아야 하지만 다녀오고 나서는 어떤 사진을 고를지, 어떤 글을 쓸지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요. 이걸 계속해서 이어올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김예슬: 책 출간하고 나서, 저를 잘 알고 계시는 지인분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어떻게 9년 동안 계속 기록을 했냐고요. 그런데 저는 이것으로 뭔가를 할 목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9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9년이라고 말하니까 되게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이지만요. 사실 여행이라는 게 여력이 있으면 가고, 없으면 안 가잖아요. 그렇게 힘을 뺀 상태에서, 가고 싶으면 갔던 거거든요. 또 약속을 잡을 일이 있으면 오래된 장소가 있는 곳에서 약속을 잡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느슨하게 아카이빙을 했어요.
오은: 뭔가 숙제처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기록이 가능했다는 말씀이군요.
김예슬: 맞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근현대 건축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건 2017년쯤부터였습니다.
오은: 이제 『서울 건축 여행』이 어떤 책인지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김예슬: 서울이 익숙한 분들을 위한 여행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에 익숙한 분들이라는 표현 안에는 외국인 분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정말 서울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낯설지 않으신 분들, 또 조금 다른 서울을 만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54곳의 근현대 건축물을 통해 ‘서울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라고 소개하는 책이고요. 1년 내내 이 책을 가지고 여행하시면 일상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실 수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일부러 54곳을 소개한 이유도 있습니다.
오은: 만듦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일단 책이 묵직한 것도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것이 일종의 건축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또 사진도 담겨 있기 때문에 컬러가 참 많이 들어가 있는 책이기도 한데요.
제일 궁금했던 건 띠지였어요. 보통 띠지는 아래에 작게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책 크기의 3분의 2 정도를 띠지에 할애하고 있어요. 살펴보니까 앞면은 경교장이 그려져 있고요. 뒷면은 구 남산 힐튼 호텔이 그려져 있거든요.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김예슬 작가님께 이 두 공간이 유의미한 곳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김예슬: 경교장 같은 경우는 근대의 상징물처럼 이 책에서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대 건축물의 상징으로 남산 힐튼 호텔이 있기 때문에요. 띠지를 펼쳐 보시면 마치 근현대를 한 번에 시각적으로 보실 수 있는 느낌을 받으실 것 같아요.
또 표지의 색이 예전에 병원이었던 용산 역사 박물관에 있는 타일에서 따온 거라고 디자인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민트색이 근현대 건축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되게 사랑받는 요소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민트만 따라다니고 기록하시는 분도 계세요. 지금이야 민트가 좀 촌스러워서(웃음) 하얀색으로 덧칠해 버리고 싶은 색일 수도 있지만, 이전에는 이게 굉장히 모던한 상징의 색깔이었기 때문에요. 아마 이 책이 근현대 건축을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일종의 굿즈처럼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김예슬: 『서울 건축 여행』 안에도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인용하면서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요. 그 중에 하나인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제목에 조선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서울이 경성이었던 시절, 일제 강점기 시절의 과학 얘기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책에서 흥미로웠던 게, 나라를 잃은 조선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이 나라가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감정 이입을 이미 하고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인슈타인이라는 존재를 되게 궁금해하고, 상대성 이론을 알고 싶어 했다고 하더라고요. 도쿄에서 상대성 이론 강의를 들은 조선인들이 우리나라에 돌아와 전국을 투어하면서 상대성 이론 강연을 했다는 것 같은 재미있는 사실도 담겨 있고요. 근대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듣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드는데, 지하련이라는 소설가도 나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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