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영자의 입 : 세상은 그의 입을 기점으로 순환한다

숨은 수고로움에 감사하며 세상을 섬세하게 사랑하는 삶의 태도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최화정이 ‘유리그릇’이라 별명을 붙였을 만큼 속내가 섬세하고 예민한 이영자는, 자신이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그 속내를 감추고 살아야 했다. 타고 난 입담으로 돈을 벌어오고,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자신도 먹고 주변도 먹였다. (2018. 04. 16)

1.jpg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화제를 모은 굴 먹방에 대해 최화정이 묻자, 이영자는 왜 그 굴을 그렇게 먹어야 했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통영 굴은 알이 두껍기 때문에 그 석화는 젓가락질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서해안 굴은 자잘해요. 그러면 젓가락질이 잘 안 돼. 그건 예의 없는 거지. 그거는 싹 닦아 가지고 종이컵이든 유리컵이든, 그 위에 초고추장이나 레몬소스 같은 거 살살살 뿌려서 호로록 마셔줘야 하는 거지.” 많이 먹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가장 이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음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이영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삼 실감했다. 맞다, 저 사람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지. 그릇 한 점, 옷 한 벌을 고를 때 본능적으로 예쁜 색깔과 패턴을 매치하는 심미안을 지닌 이영자였으니,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있는 힘껏 섬세하고 자세하게 즐기는 법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소떡소떡 한 꼬치를 먹어도 소시지와 떡을 함께 씹어 그 식감을 즐겨야 하고, 같은 김치 맛 컵라면인 것 같아도 면의 굵기에 따라 맛이 다르단 걸 알아야 하는 것이다.
 
최화정이 ‘유리그릇’이라 별명을 붙였을 만큼 속내가 섬세하고 예민한 이영자는, 자신이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그 속내를 감추고 살아야 했다. 타고 난 입담으로 돈을 벌어오고,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자신도 먹고 주변도 먹였다. 고생한 부모님을 챙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형부를 대신 해 언니 집을 사주고 조카 대학 등록금을 댔다. 정선희나 홍진경 같은 친구들이 어려울 때면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코미디를 했다. 그렇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 달려온 게 27년이다. 끼니의 지엄함을 알고 한 끼도 허투루 먹지 않은 사람이기에, 이영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그 진가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 또한 중히 중히 여긴다. 당신이었다면 문어비빔밥을 먹고 그 맛을 어떻게 묘사했겠냐는 질문을 받자, 이영자는 제 앞에 받은 밥상을 넘어 그 이전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어는 묵호 문어가 최고야. 동해 기이이이이이이잎은 바다에서, 문어가 몇 십년을 주우우우우욱 살았거든.” 그는 말죽거리 소고기 국밥을 소개할 때에도 그게 가마솥에 이틀을 고아낸 사골국물이란 점을 강조하고, 마장휴게소 이천쌀밥정식을 묘사할 때는 “남들의 소중한 땀을 모아서 밥상 위에 정성스레 올린 느낌”이라 말한다.
 
작년 추석에 방영된 SBS 파일럿 <트래블메이커>에서, 이영자가 청년들을 데리고 홍성5일장에 가서 50년째 한 자리에서 쇠틀 호떡을 굽는 명인을 찾은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얇게 기름을 바른 쇠틀에 반죽을 넣어 담백하게 호떡을 구워 내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이영자는 맛 뒤에 숨은 수고로움에 감사하며 세상을 섬세하게 사랑하는 태도를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쌀과 고기를 벌어오는 입, 세상 온갖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입, 다시 그 모든 음식에 맛이 고이는 과정을 정성 들여 설명하는 입. 그렇게 세상은 이영자의 입을 기점으로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오늘의 책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나부터 바꿔라

변화에 대한 열망이 경제적 자유의 길을 연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최고의 투자자가 되기까지. 저자가 실제 분석하고 체득한 실전 투자 전략을 통해 돈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부를 지배하는 승자가 되기 위한 균형 잡힌 관점과 실질적인 투자의 법칙을 소개한다.

좀비가 포위한 펜션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등 미스터리 랭킹을 모조리 휩쓴 화제작. 동아리 합숙 중에 좀비의 출현으로 펜션에 갇히고 만 대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그렸다. 밀실살인과 좀비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

지금 북한 사람의 삶

북한은 외국 기자가 찍은 사진과 글로 알려져왔다. 언어라는 벽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삶으로 깊게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진천규 기자는 한국인으로 드물게 단독으로 방북하여 북한을 취재했다. 2017년과 2018년에 촬영한 사진은 지금 북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내 마음의 방향', 취향에 관한 이야기. 하루하루의 취향이 모여 결국 그 사람의 색깔이 되고,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선택한 가치들이 삶의 중심이 된다. 이런 취향 덕분에, 오늘 하루도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