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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취미에 대하여

재미가 우리를 숨 쉬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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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후반이 수루룩 지나가고 40대에 접어들면서 일이 많은 건 복 받은 거다,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소리를 매일같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잖냐는 생각이 든다. (2017.09.26)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_15회 그림.jpg

 

세상 모든 게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눈이 반짝반짝하던 때가 있었다. 이 설렘, 이 감동,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분, 앞의 두 문장은 모두 과거형입니다. 영원히는 개뿔, 슬슬 뭘 해도 심드렁해지는 때가 와버리는구만요.

 

카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연인 두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라면 으레 테이블에 바짝 다가앉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얼굴을 자세히 보고 목소리를 잘 들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상대적으로 좀 된 사이라면 일단 편하게 다리를 꼬기 위해 의자를 뒤로 쓱 빼고,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는다. 연애 초기엔 오늘 우리 둘이서 뭘 같이 할까,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하나부터 열까지 미지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는 기분이지만 오랫동안 만나다 보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지 척 봐도 대충 견적이 나오니 새삼 설레고 자시고 할 게 별로 없다. 어쩌면 내 인생도 이런 식으로 대충 견적을 내다가 재미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매 분석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럼 뭘 해야 다시 두근두근 행복해질까? 뭐가 되었든 일만 아니면 다 재밌겠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외장 하드디스크를 뒤져보니 지난 수십 년간(십수 년이라고 썼다가 눈물을 흘리며 수정했습니다) 어떤 취미에 빠졌는지, 폴더 이름들만 봐도 줄줄이 나온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열심히 마시고 라벨을 떼어 스크랩까지 한 적도 있다. 그렇잖아도 무거운 카메라에 대포만 한 렌즈를 끼워 열심히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 비싼 슬라이드 필름을 수십 통씩 사선, 이게 장당 얼마야 라고 바들바들 아껴가며 촬영했다. 다 찍은 필름은 슬라이드 현상소에 맡겨놓고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렸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스캔했고.

 

한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각 잡아 차려입는 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스판기 하나 없는 칼 같은 정장에다 4인치 하이힐을 열심히 신고 다녔다. 오늘은 뭘 입고 내일은 뭘 입어야지 계획하는 것도 즐거운 취미가 된다. 가방은 물론 클러치. 뭘 많이 넣을 수도 없는 작고 얇은 클러치를 굳이 네 손가락만 사용해 집어 들고, 새끼손가락은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손아귀가 바들바들 떨리지만 간지가 난다(라고 굳게 믿는다).

 

한참 땅고에 빠졌을 땐 나의 하루는 밤 10시에 시작된다며 매일 밤 춤을 추었다. 이 시기에 산 옷은 하나같이 춤추기에 편한, 쫙쫙 늘어나는 것들이다. 필라테스와 크로스핏, 스쿼시, 이종격투기 등의 운동도 무척 재미있었고, 웨이트 트레이닝 PT 수업도 좋았다. 바른 운동 자세를 배운 가치 있는 투자였다. 물론 근사한 운동복도 잔뜩 샀습니다... 라고 쓰다 보니 뭐든 쇼핑으로 끝나는군.

 

그 밖에도 말 못할(나의 인권은 소중하다) 여러 취미도 있는데, 대부분 한 가지를 오랫동안 쭉 즐긴 게 아니라 보통 2년, 길어야 3년 정도면 어이구 그동안 재미있었네, 슬슬 딴 것이 궁금하네 라며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고 물러났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취미를 접했지만 나와는 달리 푹 빠져 인생의 항로를 바꾼 사람들도 많다. 상업 사진가가 된 사람도, 아르헨티나로 떠나 전문 땅고 댄서가 된 사람도, 정식 운동선수 데뷔전을 치르며 걱정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사람도 있다. 그들 앞에선 왠지 수줍어진다. 난 왜 저렇게 안 되지? 난 왜 이렇게 얄팍하지? 끈기가 없고 변덕이 심해 그런 걸까?

 

하지만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해보지 못한 것이 저기 저만큼 쌓여 있으니 요것조것 날름날름 침 발라가며 하나씩 다 해보고 싶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얘깃거리도 생긴다. 창작자에게 얘깃거리란 곧 콘텐츠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변덕스러운 성향 덕분일지 모른다... 라고 편한 대로 생각합니다. 야, 요거 재밌겠다며 새로운 걸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갈 놈은 가고 남을 놈은 남듯, 지나갈 취미는 지나가는 거고 두고두고 남을 취미는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취미를 가져보려 애쓰는 것도, 재미난 걸 찾으려 애쓰는 것도 모두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덜컥 두려워진다. 일이 내 전부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30대 중후반이 수루룩 지나가고 40대에 접어들면서 일이 많은 건 복 받은 거다,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소리를 매일같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잖냐는 생각이 든다. 답이 없다.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울 땐 역시 돈 지랄이 잘 먹힌다. 요것도 해보고, 조것도 들여다보고, 고것도 먹어보고, 또 저기도 가보고 하느라 신나게 돈을 쓴다. 모든 취미엔 기본적으로 돈이 든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이럴 때 써야지. 죽자고 아껴봤자 나 아닌 누군가 다 갖다 쓴다. 그러니 있는 돈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한편 운동은 좋은 취미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의 문제기도 하다. 체력은 중요하다. 많이 중요하다.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제스처, 우아한 인내심은 모두 체력에서 나온다. 소중한 사람을 만났는데 얘가 오늘 왜 이렇게 짜증이야 싶다면, 그날 함께 하기로 한 스케줄을 과감히 취소하자. 그리고 뜨끈한 걸 먹이고 잠을 재워보자.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뭐든 귀찮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는 사람에게도 괜찮은 처방일 수 있다. 체력을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애써 먹이고 재워 회복시켜 놨더니 더 신나게 짜증을 낸다거나 더 힘차게 귀찮아!!!를 외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뭔가 부당한 일을 당할 경우에도 체력이 받쳐줘야 제대로 받아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나를 열 받게 한 그를 후두려 팰 여유도 뭐도 생기지 않는다. 후두려 패지 못한 채 집에 돌아가 방바닥에 주저앉으면 기분은 한층 더 우울해진다. 좋은 일에 크게 웃기 위해, 열 받는 일에 크게 쌍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운동이 특히 좋았더라? 나로 말하자면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꽤 잘 듣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지시사항을 하나씩 해치워 나가는 걸 좋아한다. 학교나 학원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교사와 악착같이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계속 끄덕이는 타입이 바로 접니다. PT 수업이 무척 즐거웠던 건 아마 내 성격과 잘 맞아서일 것이다('스쿼트 천 개라고요? 맡겨주세요!').

 

운동이 생존과 매우 밀접한 관계라는 걸 제대로 느낀 건 이종격투기 체육관에서 다니면서다. 이런 곳에선 주짓수와 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종목을 배운다. 특히 레슬링이 인상적인데, 그전까진 뭘 하든 온몸의 힘을 몽땅, 죽기 살기로 끝까지 쥐어 짜낸 경험이 없었다. 이것은 숨이 턱밑에 차도록 달리는 것과도,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과도, 안 찢어지는 다리를 억지로 쫙쫙 찢는 것과도 다르다. 보다 원초적이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틈을 엿보다 상대에게 덤벼들어 넘어트리고 뒤집기를 반복하는 사이, 내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한계도 고스란히 실감하게 된다. 절대로 무리하거나, 만용을 부려선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어쨌든 우리는 재미있고 달달한 걸 계속 찾아야 한다. 그 재미가 우리를 숨 쉬게 해줄 것이다. 초중고 12년 내내 공부만 하라고 윽박지르던 어른들, 공부 외에 다른 것에 눈 돌리면 인생 망할 거라던 그분들 덕분인지 재밌고 즐겁고 신나게 사는 것이,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왠지 죄스러워지기도 한다. 그 찝찝한 기분은 지금 이 순간 착착 접어 변기에 던져 넣고 시원하게 물을 내리자. 고생한 사람을 추켜세우며 칭찬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고생, 그거 감투 아니에요. 안 하는 게 최고랍니다.

 

(다음 주는 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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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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