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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씨와 맘충

마누라는 이따금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당신이 만약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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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용주차장 역시 볼 때마다 씁쓸하다. 맘충과 노키즈존뿐만 아니라 도처에 핑크색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방증 같다.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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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아저씨존은 없는 걸까?

 

세 식구가 집 근처 먹자골목으로 외식을 하러 갔을 때였다. 금요일 저녁이라 식당마다 자리가 없었고,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다행히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고깃집에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조금 시끄러웠지만, 더 조용하고 근사한 식당을 찾아 헤매느라 금요일 저녁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대로 빈자리에 앉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곧바로 후회했다. 그 식당은 조금 시끄럽지 않고 너무 많이 엄청나게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참기 힘든 소음의 근원지는 우리와 꽤 떨어진 자리에 앉았던 아저씨 손님들이었다. 그들은 총 네 명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내 또래의 사십대 같았다. 또 하나같이 자신의 넥타이를 와이셔츠 앞섶에 곱게 말아 넣었다. 서로 오랜만에 만났는지 마치 식당을 전세라도 낸 것처럼 목청껏 떠들어댔다. 주변에 다른 손님들은 있는 힘껏 눈살을 찌푸렸고, 종업원과 사장님이 번갈아 가며 주의를 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심지어 말끝마다 상스러운 욕이 빠지지 않았다. 우리 집 애는 다 큰 어른들이 애들처럼 욕을 한다며 낄낄 웃었다.

 

밥을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외식이고 나발이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며 소지품과 외투를 주섬주섬 챙길 무렵 그들이 먼저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음식값을 계산할 때도 서로 자기가 내겠다며 끝까지 시끄럽게 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그들의 음식값을 계산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음식값을 돌려주려고 하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대신 공손하게 부탁했겠지. “멱살 한 번씩만 잡으시다”라고. 아무튼 그들이 사라지자 식당은 대북확성기가 고장난 휴전선처럼 일순간 조용해졌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공간 이동이라도 한 줄 알았다. 사장님은 식당에 남아 있던 다른 손님들에게 미안하다며 일일이 서비스 안주를 챙겨주셨고, 마누라와 나는 ‘조용하게’ 소주를 한 병 더 마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키즈존은 있는데 왜 노아저씨존은 없는 걸까?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른바 진상 아저씨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내 돈 주고 사먹은 밥에 수시로 체할 뻔했다. 단지 시끄럽게 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자 종업원을 붙잡고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건네거나 “이 집은 다 좋은데 말이야”로 시작되는 따분한 설교를 늘어놓는 건, 대체로 아저씨들이다. 회식 자리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여직원을 굳이 자기 옆에 앉히는 것도 아저씨들이다. 외식을 할 때마다 곧잘 마주치는 일상이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저씨지만 나는 이 일상이 너무 불편하다. 지금은 아저씨 손님들이 붐비는 식당은 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더라도 어지간하면 피하는 편이다. 사장님이 미안하다며 서비스 안주까지 챙겨주셨던 식당도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사장님은 진상 아저씨 손님을 거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고, 나는 내 돈 주고 사먹은 밥에 또 체하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 혐오를 부추길 생각은 없다. 몇몇 사례를 섣불리 일반화할 생각도 없다. 다만 진상 아저씨들은 일상 속에서 이미 충분히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줄기차게 주변에 민폐를 끼쳐왔는데, 왜 사회 문제로 확대되지 않는 걸까? 간혹 사회 문제가 되더라도 진상 아저씨들은 매번 같은 변명을 반복할 뿐이다. 술에 취해서, 또는 딸 같아서, 또는 가족 같아서, 또는 좋은 마음에.

 

치맛바람과 맘충

 

반면 여자들, 그중에서도 아이 엄마들은 어떤가.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자기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엄마들은 맘충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맘충의 애꿎은 아이들도 덩달아 욕을 먹고, 급기야 노키즈존까지 등장했다. 우리 사회의 특정 구성원이 충분한 논의 과정이나 타당한 근거 없이 그저 여론에 의해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심판이 내려진 거나 다름없다. 임산부 배려석은 또 어떻고?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위해 비워둬야 한다, 아니다 너님은 배려의 사전적 의미도 모르냐, 아무나 앉아 있다 알아서 양보해주는 게 맞다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관계기관은 명칭을 왜 ‘임산부석’ 또는 ‘임산부 지정석’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사실 노키즈존이든 임산부 배려석이든 시대착오적인 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역차별이 불가피한 차별이기도 하다. 먼저 노키즈존부터 얘기하자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다. 노키즈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테니까. 내 돈 주고 사먹은 밥에 체하고 싶지 않았을 테고, 모처럼의 자기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있거나, 아니면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팔린 파렴치한 아이 엄마가 혐오스러울 수 있다. 또 대다수 자영업자들의 피로감과 영업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일부의 사례로 아이 엄마들을 함부로 맘충이라고 싸잡고 노키즈존도 당연하다면, 노아저씨존도 당연해야 한다. 또 그 진상 아저씨들에게도 맘충에 걸맞는 말이 필요하다. 어떤 말이 좋을까? 개저씨? 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는 개랑 벌레한테 너무 미안하다.

 

어쩌면 그 개저씨와 맘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좀 허무맹랑한 얘기 같겠지만, 이를테면 앞서 얘기한 진상 아저씨들에게도 각자 가정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격무에 시달리느라 평일에는 가정을 돌볼 틈이 없고, 그들의 부인이 독박육아를 하거나 아니면 부인의 친정 식구들이 육아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 주말에 이따금 아이들과 놀아주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고 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부인의 불평불만에 육아휴직이라도 쓰고 싶지만, 주위에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 직원은 아무도 없다. 불이익은 두렵고, “애는 엄마가 봐야지”라는 부모님 세대의 말을 자신의 부인에게 대물림할 뿐이다. 부인은 육아와 집안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하나씩 달고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이곳저곳에 민폐를 끼치기 시작한다. 맘충의 탄생이다. 부인들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맘충이라며 손가락질을 받는 동안 남편들은 곧장 퇴근하지 않고 화끈한 불금을 보낸다.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했지만, 제법 그럴싸하지 않나? 요컨대 개저씨가 없었다면 맘충도 애초에 없었다는 얘기다. 또 개저씨와 맘충을 둘러싼 여러 갈등은 각 개인의 문제면서 동시에 사회 문제다. 무엇보다 맘충은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니다. 자식의 인생이 곧 자신의 인생인 양 자식 꽁무니를 부지런히 쫓으며 오늘날 높은 교육열에 크게 이바지한 과거의 엄마들을 뭐라고 불렀던가. ‘치맛바람’과 ‘맘충’은 표현만 바뀌었을 뿐이지 속성은 같다.


오죽했으면 임산부 배려석이 등장했을까

 

어떤 식자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자들의 요구가 이토록 거센데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까닭을 노동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제도를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먼저 강제하고 불이익이 없도록 한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소 삐걱거리겠지만 제도가 사람들의 인식을 견인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떳떳하게 벌어온 돈으로 가족을 든든히 먹여 살리는 일과 오랜 세월 여자들의 몫으로 치부됐던 육아와 집안일이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면, 쉽게 말해 그놈의 ‘바깥일’과 ‘큰일’에 남녀구분이 없었다면, 여성을 애써 배려할 필요도 없다. 말하자면 그나마 지금의 이 더딘 변화는 여자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남자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차별 문제는 결국 여자들의 주체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자들이 말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그만큼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때마침 외교부 국장급 간부 하나는 낡은 젠더 의식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성차별적 발언을 지적했던 기자에게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며 난데없이 조선시대 타령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자들과 지금 여자들을 비교하기도 했고, “애는 엄마가 봐야지”와 비슷한 맥락의 말도 했다고 한다. 말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다만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세상이 바뀐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적어도 구설수에 오른 외교부 국장급 간부는 살아본 적도 없는 조선시대가 그리운 모양이다. 아니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영속되길 바라거나.

 

참, 임산부 배려석 얘기가 빠질 뻔했다. 마누라가 임신을 했을 때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마누라는 어김없이 파김치가 되곤 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어쩌다 자리를 양보받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거의 없다. 누군가 내 품에서 보채는 애를 발견하고 자리를 양보해주면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오죽했으면 임산부 배려석이 등장했을까. 여성전용주차장 역시 볼 때마다 씁쓸하다. 맘충과 노키즈존뿐만 아니라 도처에 핑크색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방증 같다. 마누라는 이따금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당신이 만약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할 거야? 애도 낳고?”


나는 아직 그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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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권용득(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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