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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당>의 그곳을 가본 사람의 이야기

롬복, 길리 트리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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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남국에 식당을 차린 삶이 부러워지는 것은 내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행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롬복 라이프 1

 

남녀, 여행사정 22-01@인도네시아 롬복.jpg
 추수의 계절 가을, 열대의 섬에서도 쌀은 난다오.

 

아는 체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두 달이었다. ‘나 거기 가봤노라’ 하면 시류에 숟가락만 하나 얹는 거 같아 차마 말하지 못하고 방송이 끝나기를 우아하게 기다렸다. <윤식당>의 배경이 된 길리 트리왕간Gili Trawangan은 롬복Lombok에서 통통배를 타고 40분이 걸리는 작은 섬이다. 그 남자와 함께 롬복에서 한 달을 머물렀고, 누군가 식당을 열었던 그 섬은 우리가 스노클링 하러 종종 갔던 곳이다. 

 

방송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섬 생활의 로망’을 충실히 담아냈다. 바다거북이 유유히 헤엄치는 맑은 바다, 전 세계 여행객을 친구로 삼기도 하고 한식을 팔아 돈도 벌었다. 게다가 그 한식은 한국인 유전자를 지닌 자들이라면 특별한 수고 없이도 충분히 배워서 도전해볼 만한 음식들이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섬 라이프란 말인가!’ 하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선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며 그 비자를 받기가 꽤 까다롭다는 것도 알 것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환상적인 섬은 그 섬이 가진 다층적인 모습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상 낙원인 이국의 땅에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환상만 제외하면 섬에서의 한 달은 매력적이다. 롬복은 제주도보다 2.5배 큰 열대의 섬이다. 현지인들은 발리나 길리 트라왕간 등 주변 관광지에 물적,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쌀을 재배하고 생선을 잡고 목축업을 하는 등 농어촌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도시의 문명화가 침범하지 못한 순박한 정경들이 있고 누군가에는 미개하다고 여겨질 원시적인 모습들도 남아있다.

 

이전에는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게 아깝고 시행착오를 용납할 수 없기에 가이드북에서 권하는 일정을 따라 바쁘게 이동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그 풍경도 봐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여행이 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은 사람이 가장 부러운 시대이다. 롬복이라면 ‘시간부자’ 즉 현대에서 가장 비싼 가치를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여행 법을 따라 섬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남반구에 위치한 롬복은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다. 우리가 도착한 3월은 절기상 여름이 지나고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었으나 그래 봐야 덥고 더 덥고 매우 더울 뿐인 롬복에서는 별 소용없는 계절 감각이다. 열대의 섬에서는 민소매가 반팔이 될지언정 긴 팔로 바뀌지는 않으니까. 섬에서의 한 달이라면 자고로 숙소가 해변에 있거나 수영장이 딸려 있거나 어쨌든 물과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곳이면 땀내 나는 축축한 몸도 견딜 만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계절상 겨울에 가도 이 날씨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통나무로 만든 우리 숙소에는 작은 야외 수영장이 딸렸다. 거대 리조트들 차지인 해변을 벗어나 내륙에 저렴한 숙소를 잡았는데 웬걸, 풀빌라나 다름 없다. 여행객에게 집을 내준 네덜란드 친구는 고향에 가버려 독채 방갈로와 수영장이 전부 우리 차지이다. 비행기 탈 때마다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로 격상되는 기막힌 운빨을 기대하지만 한 번도 내 것이 되어 본 적 없는데 롬복 숙소를 보고 맙소사, 그 운을 여기에 다 써버렸구나 싶다.

 

롬복 라이프 2

 

남녀, 여행사정 22-02@인도네시아 롬복.JPG

생선이 올라오든 올라오지 않든 낚시대 끝을 바라보는 것도 꽤 즐겁다.

 

롬복은 낚시로 삼시 세끼 밥을 해 먹어야 하는 ‘만재도’가 아니다. 쌀농사, 밭농사로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심도시인 마타람Mataram에는 쇼핑몰과 큰 마트도 있다. 롬복 한가운데에는 국제공항이 있고, 바로 옆에는 디지털노마드의 낙원인 '발리'가 자리 잡고 있으니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뭐 하나 부족하지 않다. 돈만 내면 뭐든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부족한 듯 살아가는 섬 생활의 낭만을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롬복을 섬이라는 닫힌계로 보고 그 안의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열린계는 현금 좀 들고 들어온 외국인에게 한정된 상황이기는 하다.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해도 인구 대부분이 여전히 농사나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나무에 열리는 과일만으로도 굶지 않는 열대의 생활 습관 덕분인지 필요한 것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곳이 롬복이다.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여유로운 사람들 덕분에 여행자는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 여행에 방점을 찍어주는 것은 저렴한 물가이다. 발리나 <윤식당>이 자리했던 길리 트리왕간 같은 돈맛을 본 관광지라도 큰 부담 없이 지갑을 열 수 있다. 현지 인건비가 낮고, 그들 생활 수준에 맞춰진 물가는 감사한 일이다. 일찌감치 롬복에 자리 잡은 서양 여행자들은 전용 수영장이 딸린 넓은 정원에 가사 도우미도 두고 살 정도이다.

 

섬 생활의 필수 품목 중 하나는 두 바퀴가 되었든 네 바퀴가 되었든 두 다리 말고 의지할 무언가이다.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는 롬복에서는 오토바이크가 현지인들의 이동 수단이다. 여행객도 그에 맞춰 스쿠터를 렌트 하고 제주도의 2.5배 크기라는 롬복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러 여행을 떠난다. 남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만한 교통수단이 없다. 스쿠터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왜 오토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은 오토바이크만 고집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꼬불꼬불 해변도로를 달려서 여행자들이 찾는 리조트가 아닌 현지인들의 해변을 만난다.

 

에메랄드빛 해변은 모조리 리조트 차지라 그들의 바다는 검은색 모래사장이다. 그곳에는 여지없이 낡은 방갈루가 서 있다. 뭐 하는 곳인가 기웃거리다 보면 방갈로의 주인이 나온다. 손님을 아이스박스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날 아침 잡아 온 생선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녀석 몇 마리 고르면 거래 완료. 방갈루에 앉아 바다내음을 맡다 보면 조금 전 내가 고른 생선은 매콤한 양념을 바른 잘 익힌 숯불구이가 되어 나온다. 작은 그릇에 담겨온 물에 재빨리 손을 씻어 보지만 이내 생선에 발라진 양념이 내 손을 빨갛게 물들인다. 양념이 아까워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쪽쪽 빨고 손톱 밑에 묻은 양념까지 깨끗이 먹고 나면 풍족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삶도 행복하겠구나 싶어진다.

 

그 여자와 나는 관광지보다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면 환상을 찾기보단 그들의 현실을 눈으로 좇는다. 롬복의 삶에는 서울에서 온 여행객도 손가락을 빨게 하는 맛과 여유가 존재한다. 길리 트라왕간에 잠깐 동안 열렸던 그 한식당을 동경하는 것도 그러하다. 먼 남국에 식당을 차린 삶이 부러워지는 것은 내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행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 달이라는 시간 그리고 바다든 수영장이든 물이 지척인 숙소, 여행에 편리함과 자유를 선사해 줄 스쿠터까지 섬 생활의 기본이 갖추어졌다면 낙원에 가서도 돈은 어떻게 하지, 뭘 해서 벌어야 할지와 같은 부담감은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오는 여유를 즐기자. 좀 부족하고 불편해도 좋을 롬복에서의 한 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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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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