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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기록하라.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라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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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 사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이자 기본적인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사진1 갱 안에서 누워서 탄을 캐는 모습 ⓒ대한불교 조계종 재일총본산 고려사.jpg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다. 점심 무렵 갑자기 사무실이 떠들썩해졌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 회원들이 손수 준비해오신 음식들을 회의실 책상에 풀어놓으며 연구소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19주기 추모제를 치르느라 새벽부터 천안 망향의 동산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오실 때마다 연구소는 잔치 아닌 잔치를 치른다. 어르신들은 누구 한 명이라도 빠질까봐 손수 부친 전과 과일을 손에 쥐여주신다.

 

보추협 회원들은 식민지 시기 일제 강제동원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분들이다. 모두 가슴에 보통 사람은 헤아리기 힘든 상처를 품고 계신다. 그들은 끌려가 소식이 끊긴 가족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길게는 30년에서 짧게는 십수 년 동안 자료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일본과 한국 정부에 강제동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법정투쟁을 해오셨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고, 유족들도 대부분 70세가 넘는 고령이 되었다.

 

강제동원의 진실을 알려라

 

해방 70년이 되던 2015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다음DAUM 스토리펀딩에 참여했다. 우리는 여기에 강제로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한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의 이야기, 강제징병과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피해자 유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하고 아직까지 식민통치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피해자ㆍ유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동원의 진실을 환기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했다.

 

그런데 두 번째 펀딩을 진행하는 도중,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군함도의 사연을 다뤄 큰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일제 강제동원의 실상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덩달아 이 문제에 골몰하던 우리도 큰 힘을 얻었다. 반가운 소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감독 류승완이 한수산의 소설을 모티프로 한 동명의 영화 <군함도>를 찍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제 ‘군함도’는 국민 대다수가 아는 고유명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한정되어왔다. 그런데 강제동원의 또 다른 사례인 ‘군함도’가 새롭게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져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힘이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그 무렵 영화 <군함도>의 제작진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왔다. 세트 및 미술ㆍ분장 작업을 위해 일제강점기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소는 수차례에 걸쳐 1940년대 당시 경성의 사진과 강제징용 포스터, 복장과 소품, 징병ㆍ징용자들의 편지와 가족사진을 제작진에게 제공했다.

 

이와 함께 우리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군함도에서 야스쿠니까지 강제동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일본과 아시아ㆍ태평양 각지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역사의 산증인이 된 피해자들과 함께 수십 년간 싸워온 한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두 번의 스토리펀딩에서 작성된 원고들이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과한 부분은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새롭게 채워 넣으며 하나하나 세밀하게 다듬어갔다. 덧붙여야 할 주제들은 새로 원고를 작성해 보충했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를 다뤘다. 직접 현장에 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지의 조선인들이 이곳까지 어떻게 끌려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어떤 노동을 했는지 살폈다.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까지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속내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강제징용되어 일본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나이에 끌려가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여자근로정신대는 조국에 살아 돌아와서도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고, 조세이 탄광에서는 136명의 조선인이 바다에 수몰되었다. 가마이시는 ‘철의 도시’였기에 연합국 함대의 집중적 공격을 받았고 일본정부와 기업은 조선인 사망자 유족에게 사망통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3부에서는 중국에서 시베리아까지 아시아ㆍ태평양 각지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BC급 전범, 군인ㆍ군속, 포로, 군 ‘위안부’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얼굴의 조선인이 승산 없는 전쟁터에 보내졌고, 죽임당했고, 살아남아서도 어떠한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강제동원의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사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등 식민지시기 강제동원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과업과 관련 소송 문제 등을 살폈다.

 

#사진4 조선인 수용소가 있던 북쪽에서 바라본 하시마. ⓒ민족문제연구소.JPG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것

 

최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부산 동구청과 시민들의 갈등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괴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동구청이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인 듯 소녀상의 설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동구청은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소녀상의 설치를 허가했다. 하지만 일본은 주한 일본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오는 이유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때문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가 이면 합의의 내용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일본이 제공한 10억 엔의 대가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의 철거를 약속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면 혹시 역사는 과거로 회귀하거나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에 빠져들게 된다. 이 합의는 그 진행의 측면에서는 대다수 국민과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보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크게 반발했던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전진을 믿는다. 지금이 비록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너무 더디 가서 그런 것이라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 사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이자 기본적인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으로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고자 했다. 다음은 당신의 차례이다. 당신은 어떤 진실을 기록하고, 또 어떤 과거를 기억할 것인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민족문제연구소 저 | 생각정원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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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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