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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할머니들을 위해

창비청소년문학상 제9회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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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늑대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이 나를 환상 세계로 데려다 줄까? 그러면 나는 온갖 궂은일들을 해결하고 누군가를 지켜 낸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센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돼지가 된 부모님을 구해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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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등 매회 주목 받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우리 청소년문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온 창비청소년문학상이 올해로 9번째를 맞았다. 제9회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독자들이 흠뻑 빠져들 만한 문학적 긴장과 재미를 품고 있다. 청소년문학이라고 해서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아쉬운 일. 일반 문학 독자가 읽기에도 무척 흥미로운 서사다. 김은진 작가는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오다 5년간의 자료 조사 끝에 작품을 창작했다.

 

긴 준비 끝에 창비청소년문학상에 응모하셨는데, 당선에 대한 예감이 있으셨나요? 당선 소식을 받고 심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예감이라기보다는 예지몽 같은 것을 꾸었습니다. 작년 오월 어느 새벽녘 꿈에 ‘빅뱅’의 탑과 지드래곤이 출연했어요. 둘이 1만 원씩, 도합 2만 원을 제게 건네더군요. 지폐로요. 보통 동전 꿈은 길몽이지만 지폐 꿈은 흉몽이라고 들어서 그날 일기장에 적으면서 ‘요즘 내가 빅뱅 노래를 즐겨 들으며 글을 써서 이런 꿈을 꾸었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당선이 될 줄이야! 출판사의 전화를 받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면 할머니들에게 죄송해서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여한(어쩌면 그마저도 신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소명 하나를 해낸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쓰기까지 1940년대 경성 거리의 모습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까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서울 중심가를 몇 년에 걸쳐 틈틈이 걸어 다니며 답사했는데,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자리에 건물이 올라가기 전 발굴터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1년 3월이었어요. 지상에서 아래로 5미터 이상 파 내려간 자리에 펼쳐진 1900년대 초의 우물터, 작은 집터, 돌담, 좁은 골목길을 한참 거닐었습니다. 문득 흰옷 입고 댕기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어요. 소녀는 백운동천 쪽으로 바삐 걸어갔고, 저는 그 뒤를 쫓아가는 소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 “얘, 너 어디 가니?” 하고 부를 뻔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 환상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 장치가 시작되었지요.

 

2010년 봄 서울 충정로의 쉼터에서 길원옥 할머니를 만난 일도 떠오릅니다. 유난히 피부가 고왔던 할머니에게서 기분 좋은 비누 향이 났던 것과 감옥을 ‘가막소’라고 했던 것, 기생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멈추었을 때 복잡하고 불편한 속내가 전해져 오던 것 등이 기억나네요. 길원옥 할머니가 아직 같은 하늘 아래에 숨 쉬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만 마냥 무거운 소설은 아닙니다. 특히 ‘타임슬립’이라는 기법을 활용하는 등 판타지에 가깝고 빠른 전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판타지 장르를 택하신 의도가 있는지요?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접근해서 바로 보고 기억하게 할 것이냐. 이런 고민 끝에 주제는 묵직하되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론짓게 되었어요. 판타지야말로 재미있는 장르이며 현실을 전복시킬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에 타임슬립물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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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현수인은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 조선 최고의 명가수가 되겠다 생각하는 명랑한 소녀인데요. 흐릿한 흑백사진 같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그처럼 활기 넘치는 소녀를 그리다니,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셨나요?


최근 몇 년 사이 불어 닥친 오디션 열풍을 시청자로서 즐기다가 종종 놀라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겨우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녀들이 어쩜 저렇게 재능도 많고 진취적이기까지 할까. 그런데 돌이켜 보니 평범하디 평범한 저도 초등학생 때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고 방송국 오디션을 보러 다닌 일이 있는 거예요. 노래 좀 한다는 어린이들에게 꿈의 무대였던 「누가 누가 잘하나」와 송영길 아저씨가 진행하던 「퀴즈로 배웁시다」. 앞의 무대는 제 음색이나 성량이 지극히 평범해서 떨어졌고, 뒤의 무대는 선착순에서 잘리거나 선생님의 추천서를 교실 책상 서랍에 두고 가는 바람에 예심 기회조차 얻지 못했지만요.

 

강제 위안부가 되었던 할머니들의 녹취록을 읽다 보니 어릴 적 노래를 잘했다, 음악을 좋아했다는 사연이 유독 많았습니다. 노래와 춤으로 흥과 끼를 발산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기생학교 이야기도 많았고요. 당시 기생은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인 셈이지요. 그런 사연들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어요. 그리고 『검은 우산 아래에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 우리가 사는 모습은 시대를 거슬러 가도 별반 다를 게 없구나.’라고 거듭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러니까 수인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10대 소녀들의 모습과 저의 경험과 우리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을 종합해서 만든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소녀들은 예나 지금이나 진취적이고 흥이 많은 것 같아요.
 
작가가 되기 전에 여성 잡지 기자로도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이력인데, 기자 경험은 작가로서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작가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었고, 중학교 2학년 때 (저 혼자!)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국어선생님이 내준 소설 숙제를 하던 중이었어요. 도입부인 “소녀가 살고 있는 이층집을 지나치는데 피아노 선율이 들렸다. 그 곡은 슈베르트의……”에서 막혔습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과 미술 작품과 사물의 이름과 사람들의 생각을 충분히 알게 될 때까지는 글을 쓰지 말자고 결심했지요. 그 맥락에 가장 적합한 직업이 기자였어요.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 유명하진 않지만 특별한 인생을 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려면 배경 지식을 공부해야 했고,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한없이 겸허해져야 했어요. 취재원의 삶이 직접적인 소재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고, ‘인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죽음’과 ‘국가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삼풍백화점 사고 유족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성찰하게 했던 전과 6범 남편과 반신불수 아내, 그리고 온몸의 뼈가 서른여섯 군데 부러진 남자분 등이 기억납니다. 타인의 마음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경험의 중첩. 어쩌면 그것이 조금이나마 제 창작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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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창작 과정 중에 많이 힘들었고 때론 울기도 했다고 적으셨어요. 창작에 뒤따르는 우울감이나 슬픔을 어떻게 견뎌 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울감이나 슬픔은 그 감정대로 즐기는 편입니다. 창작자의 마음 바탕에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장인물이 겪은 일에 대해 진심으로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줄 아는 마음이랄까요. 등장인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향으로 글을 쓰다보면 제 마음 역시 치유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직접 낭독해 주실 수는 없지만 지면으로나마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 주세요.


54쪽에 있는 구절을 들려 드릴게요.

 

‘푸른 늑대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이 나를 환상 세계로 데려다 줄까? 그러면 나는 온갖 궂은일들을 해결하고 누군가를 지켜 낸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센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돼지가 된 부모님을 구해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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