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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좀 내버려둬라

애든 우정이든 결국은 관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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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다. 연애 대신 우정에 올인한다고 해서 불쌍한 것이 아니고, 우정 대신 연애에 올인한다고 멍청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야 ‘반반 무 많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냐구여.

“연애와 우정은 똑같은 저울에 올려 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엄연히 다른 영역이며, 때로는 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다. 각별한 우정은 연애의 각본과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의 질투나, 서운함, 나를 최우선으로 쳐주기를 바라는 마음, 팔짱 끼고 손편지를 주고받고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하는 우정의 면면은 그러한 감정적 충족이 반드시 연애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네 친구들도 다 남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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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SBS

 

…아니 이제는 날 패다 못해 친구들까지 패나?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러자 오지라퍼 Say! “원래 남친 없는 애들끼리 놀잖아.” 내 친구 중 제1의아해는 남친이있소, 제2의아해는여친이있소, 제3의아해는모니터애인이있소, 제4의아해는결혼을했소, 13인의아해는만나는사람이있는아해와만나는사람이없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13인의아해는연애를하지않아도좋소…는 뻥이고, 내가 무수히 받아온 질문의 의도는 뻔하다. “네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애들끼리 붙어 다니기 때문이야.” 한국판 <심야식당>에서 오랜 친구 사이인 ‘노처녀’ 3인방을 보고 중년 남성 캐릭터는 소리친다. “다 남자친구가 없어서 그래, 남친 생겨봐, 끝이야!” 저기요, 아저씨. 여자세요? 여자들의 우정, 경험해봤냐능? 


이것은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아주 오래 되고 보편적인 관념이다. 여자들의 우정은 언제나 폄하되고 멸시 받았다. 연애보다 열등한, 연애를 방해하는, 연애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연애를 못하는 여자들이나 집착하는, 서로 애인의 급을 재보거나 외모를 품평하며 시기와 질투로 얼룩지는, 결혼하고 나면 결국 유지되기 힘든 것이라는 이라는 말들. 여자들의 우정은 언제나 2등 감정이었다. 심지어 여자들도 그러한 취급에 익숙해서, “여자들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틀렸다. 왜냐하면 그런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생생한 관계를 아주 많이 경험했고 또 목격했기 때문에. 빨간 머리 앤과 다이애나의 우정에 가슴 아프던 어린 시절부터, 그러니까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전학’이라는 것을 간 친구와 이야기하기 위해 직접 걸어서 우체국까지 왔다 갔다 하던 아홉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 지문 같은 기억을 묻히고 가거나, 내 인생의 방향을 아주 바꿔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깊이 나를 이해하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고, 그에게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절절하게 가르쳐준 이들이.


그리고 다시 또, 그 친구들에게 포도알처럼 조롱조롱 매달린 인연이 있다.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 오래된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럴 때는 내가 모르던 친구의 표정이 얼굴에 떠오른다. 세상에는 그렇게 타인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이 많은 우정들이 있고, 그 관계의 밀도나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단짝으로 통하는 송은이와 김숙의 우정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비연애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이 너무 친하게 지내니까 연애를 못한다”는 것은 곧 “외로워야 연애를 한다”는 뜻이고,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는 ‘연애를 못하는 원흉’으로 지목 당한다. 이를 다시 뒤집으면 “외롭지 않으면 연애를 할 필요가 없다”로 해석할 수 있다. <무한도전> 쓸친소 특집에서 쓸쓸한 친구를 추천할 때 유재석이 송은이, 김숙은 자기들끼리 너무나 잘 지내서 전혀 쓸쓸하지 않다고 (그 당시 그들은 네팔 여행 중이었다) 강조했다. 두 사람이 결핍이 없기 때문에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왜 ‘문제적’인 태도일까? 어째서 우정으로 채운 결핍을 사람들은 그토록 못마땅해하며, 강제 소개팅에 끌고 나가거나 훈수를 두려고 할까? 동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곧장 영양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철벽녀의 조건이기도 하다). 비슷한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으면 심지어 ‘솔로들 끼리끼리 논다’는 빈정거림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참나. 끼리끼리 노니까 너랑은 안 노는 거야ㅋ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멸시는 뿌리가 깊다. 관포지교와 같은 고사성어가 증명하듯, 역사적으로 우정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주체는 언제나 남자들이었다. 사회적으로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다른 여자들과 만나 우정을 쌓을 기회 자체가 드물었고, 여자들이 목 매야 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더 괜찮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여자들은 언제나 질투하거나 경쟁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려 한다는 말은 여자들 사이의 연대를 방해하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조금만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알 수 있다. 예쁜 여자를 보면 질투하거나 까 내리기보다, 열정적으로 감탄하거나 기뻐하는 여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냥 그 자체로 좋은 친구 관계를, 굳이 ‘나중에 결혼하면 다 부질없다’는 말로 들쑤셔 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성의 우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에도 그것은 엄연히 존재했음을.1)


김숙은 매우 노련하게도, 자신과 송은이는 쇼윈도 커플처럼 전략적인 단짝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어차피 너희들의 우정은 연애를 안 하니까 가능한 것이라는 시선은 김숙의 이러한 태도 앞에서 힘을 잃는다. 크, 멋있어서 콧김이 막 뿜뿜빠 나오려고 한다. 우리의 우정은 그다지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는 가벼운 태도. 사실 그들의 우정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할수록, ‘연애하지 않는 여자의 유난스러움’이 부각될 뿐이다.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특별한 찬사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연애의 차선으로 미루어둔 것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연애와 우정은 똑같은 저울에 올려 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엄연히 다른 영역이며, 때로는 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다. 각별한 우정은 연애의 각본과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의 질투나, 서운함, 나를 최우선으로 쳐주기를 바라는 마음, 팔짱 끼고 손편지를 주고받고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하는 우정의 면면은 그러한 감정적 충족이 반드시 연애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여자들의 우정 위주로 이야기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내가 남자들의 우정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아무리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며 잡지 내는 시정잡배라지만 <심야식당>의 아저씨처럼 자신의 경험 바깥을 함부로 씨부리고 싶지는 않으므로. 그러니 여기서는, 미디어나 고전 등에서 남자들의 우정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남자들의 우정을 찬양하는 사례는 넘쳐난다. 친구를 인질로 세우고 사흘의 여유를 얻은 뒤 신의를 지키기 위해 각종 고난을 헤치고 돌아온 메로스나, 죽기 직전까지 메로스를 신뢰하는 세리눈티우스의 우정은 폭군조차 감동시킨다. 백아의 연주를 알아들은 것은 종자기뿐이고 유비와 제갈공명은 물과 물고기 같은 사이라. “친구 아이가!” 이 대사는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들의 우정은 고차원적이고, 진실하며, 오직 남자들끼리만 향유할 수 있는 독점적인 것으로, 당연히 여자들의 우정과 달리 연애보다 우선한다. 연애와 여자는 언제나 남자들의 우정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이러한 유혹(!)에 대항하여 우정을 지키는 것이 진실함과 순수성의 기준이 된다. 삼각관계에 휘말리면 둘 중 하나는 꼭 쿨하게 양보하며 물러나고 (이때 여자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친구의 여자를 좋아한 이들은 “미안해 친구야, 잠시 너를 기만했던 걸” 하고 친구에게 사과한다(홍경민, ‘흔들린 우정’). 드물게 우정보다 연애를 선택한 이들은 배신자가 되고, 친구와 애인을 한 번에 잃은 이를 위로하는 것도 “또 다른 친구”다(김건모, ‘잘못된 만남’). 


그런데 이렇게 진실하고 중요한 우정을 쌓거나 표현하는 방식에는 참 많은 제약이 따른다. 남자들끼리 만나서 갈 수 있는 곳은 술집이나 당구장, PC방 정도로 제한된다. 대화보다는 비언어적 행위가 중심이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무척 불편해 한다. 이런 장소는 꼭 로맨틱하고 분홍분홍한 파스타 집이나 카페뿐 아니라, 어쨌든 공을 들여야 하는 곳까지 해당한다. 맛집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듯, 맛집 탐방 인구는 커플 아니면 여자 친구들이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수한 경우를 빼면 남자 친구들끼리는, 줄을 서는 등 공들여 좋은 것을 먹으러 가거나 술 없는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일이 매우 드물다. 좋은 친구들과는 무얼 먹어도 맛있는 법이지만, 남자 친구들끼리의 행동반경이 그렇게 제한적인 것은 남자들의 우정 역시 성별 각본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계간홀로의 독자 모임에서 한 남자 참가자는 “친구와 함께 옷을 사러가는 것도 사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고 불편을 토로하기도 했다.


<삼시세끼>에서 손호준은 곤란한 상황이 오면 유노윤호에게 전화를 건다. 유노윤호는 그냥 듣고, 맞장구 쳐주고, 둘은 별 것 아닌 말들을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는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다. 남자들의 우정은 그런 낯간지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고,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다 묻어버리는 거라고? 그런 관계가 있고, 그게 편하고 잘 맞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남자들의 우정의 특징은 아니다. 여자애들 중에도 그런 애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훈육되거나 친구들의 요구에 따라 좀 더 다정다감해질 뿐이다.
이성 간의 우정? 글쎄, 이건 영원한 난제다.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이성애를 전제로 하며, 다른 성별끼리는 친밀하게 지내다 보면 성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논의를 몰고 간다. 당장 생각나는 남녀 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꼽아봐도, 결론은 로맨스였으니. <오늘의 연애>, <너를 사랑한 시간>, <9회말 2아웃>, <저스트 프렌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성 간의 우정은 어디까지나 로맨스의 번데기, 로맨스가 되기 전의 통과 절차 같은 것에 불과해 보인다.


어떻게 가능하다/불가능하다 단언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천차만별, 관계 양상 역시 너무나 다른데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이성 친구라고 할지라도, 서로가 연애 대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과거에 좋은 감정을 품었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이성으로선 정말 별로라고 치를 떨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질문의 답은 결국 개인에게 다시 돌려줄 수밖에.


대신 내가 흥미로운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이성 간의 우정’은 앞서 살펴본 두 우정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연애의 아래위를 넘나든다는 것이다. 누군가 연애 감정을 끌고 들어올 때, 그럴 생각이 없는 대상은 “우린 친구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배신’당한 것처럼 구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좀 이해가 쉽겠다. 연애는 대부분의 경우 최우선 가치로 군림하지만, 이럴 때는 꽤 비실거리며 힘을 못 쓴다. 이때 우정은 연애의 침략에 대항해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고, 연애는 두 사람이 합의한 관계(친구)를 파기하는 불청객이다. 


일단 연애가 싹 트면, 많은 경우 우정은 더 이상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연애는 워낙 힘이 세서, 부딪치는 모든 것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선택지는 두 가지로 수렴된다. 사귀거나, 차거나. 전자든 후자든 더 이상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귀면 두 사람은 헤어져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로 새로 태어난다. 그 불편하고 찜찜한 역할을 배당 받으면, 더 이상 친구 관계에서 가능한 것들을 바랄 수 없다. 거절했을 때 관계가 표면적으로나마 유지되려면 두 사람의 초인적인 인내(!)와 혼신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누구 하나가 그런 감정 노동을 포기하고 관계의 좌절에서 오는 슬픔을 퍽ㅋ발시키면, 그때부터 두 사람의 우정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일만 남는다. 아아. 실로 가혹한 전개이다. 그러니 고백을 하는 사람은 ‘지금의 이 관계’를 넘어서길 꿈꾸면서도 ‘현재 상태’가 파괴될까봐 겁을 내고, 고백을 받은 사람은 우정이라고 생각하고 대했는데 속았다며 상대를 원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정과 연애는 언제나 양립불가능한 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애와 우정이 반드시 서로 상반되거나, 양자택일해야만 하는 개념일까? 인간의 감정이라는 참 복잡하고 모호해서, 칼로 자르듯 깔끔하게 분리하기 힘들 때가 훨씬 많다. 여기에 퀴어 정체성이나 동성애의 가능성을 포함한다면 관계의 논의는 또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연애든 우정이든 결국은 관계의 문제이다. 어느 하나를 불변의,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바람직한 Only one으로 규정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협소하고 빈곤할 것이다. 세상에는 별처럼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관계와 우정과 연애들이 있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다. 연애 대신 우정에 올인한다고 해서 불쌍한 것이 아니고, 우정 대신 연애에 올인한다고 멍청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야 ‘반반 무 많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냐구여. 그저 자신에게 알맞은 온도를 찾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헤매는 과정의 연속이지.


일차적으로는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연애에 자신을 내던지든, 우정에 몰두하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그 연애나 우정의 미래를 섣불리 진단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을 누군가는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것 없이 어떻게 삶을 꾸려가는지 조용히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연애가 시작되었다가 끝나는 가변적인 관계이듯, 우정 역시 그러한 법이니 오래 못 간다고 연애를 우정 밑에 배치할 필요도 없다.

 

 

1) 김금원의 여성 시인 모임을 예로 들 수 있다. 1817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김금원은 1830년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여행한 경력으로 유명하다. 이후 김금원은 남편 김덕희의 정자인 용산 삼호정에서 여성들의 시 모임을 꾸렸다. 김금원은 이 삼호정시사에 대해서 “다섯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 서로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된다”고 하며 서로 다른 시들의 개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글을 남겼다. -박무영, 조혜란, 김경미,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돌베개, 200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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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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