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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헤세 씨,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YES24X민음사 세계문학 고전학교 9월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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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의 정여울 작가가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공개했다. 헤세가 작품 속에 감춰놓은 깨달음을 발견하려면 세 개의 열쇠가 필요했다. 아니마와 그림자, 로고스와 에로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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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의 에바 부인은 ‘해탈의 존재’


지난 22일, 헤르만 헤세가 한국의 독자들과 만났다. 예스24와 민음사가 함께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것. 그의 곁에는 최근 『헤세로 가는 길』을 집필한 정여울 작가가 있었다. 독일의 칼프에서 스위스의 몬타뇰라까지, 헤세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그녀가 자신의 여정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헤세에게 물었다. ‘헤세 씨,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정여울 작가는 『헤세로 가는 길』이 기억하고 있는 헤세의 시간들을 되짚었다. 그가 태어난 작은 마을 칼프로 가는 길목,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이탈리아의 아시시 지역, 생가와 친필 편지… 『헤세로 가는 길』 위를 거닐며 독자들도 한층 헤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여울 작가가 들려주는 깨달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헤세의 깨달음으로 가는 첫 번째 키워드로, 융이 이야기한 ‘아니마’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마는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이에요. 남성이 꿈꾸는 이상형인데, 연애의 대상으로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이상향으로써의 여성상이에요. 이 아니마는 문학작품에서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데, 이브처럼 유혹적인 팜므파탈로 등장하기도 해요. 『황양의 이리』에서 마리아나 헤르미네 같은 인물이 그런 역할을 하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리즈베트와 『수레바퀴 아래서』의 엠마 같은 경우도 새로운 세계로 유혹하는 이브로서의 아니마를 상징하고요. 여성에게는 반대로 아니무스라고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아니무스는 지배와 권력에 관계된 욕망이라면, 아니마의 핵심은 공감이에요.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통합과 연대를 의미하죠. 아니마라는 것은 헤세와 융 모두에게 핵심적인 주제인 것 같아요.”

 

『데미안』의 에바 부인 역시 싱클레어를 세상 너머로 인도하는 아니마다. 동시에 그녀는 “깨달음의 궁극적인 해탈의 경지를 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등 헤세의 소설에서는 대부분 아니마로서의 여성상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작품에는 항상 깨달음의 매개체로써의 여성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많은 독자 분들이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연인으로서 좋아한 건지 궁금해 하시는데요. 싱클레어의 감정은 그걸 뛰어넘는 거죠. 에바 부인은 이 세계 너머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싱클레어가 깨달음의 경계를 뛰어넘기를 바란 것 같아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어머니를 계속 강조하잖아요. 영원한 어머니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거든요. 이것도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뜻하는 게 아니죠. 그걸 넘어서는 모든 존재의 근원을 의미하는 거예요. 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해탈의 차원으로써의 근원이죠. 대부분 헤세의 소설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과 깨달음을 주는 철학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함께 등장해요. 때로는 한 인물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때가 있는데 『황야의 이리』의 헤르미네 같은 인물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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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되는 길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헤세의 작품에서 깨달음을 발견하는 두 번째 열쇠는 ‘로고스와 에로스의 대립’이다. 특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두 주인공은 상반된 두 가치가 대극의 통합을 이루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르치스는 깨달음의 표상이죠. 항상 골드문트에게 도움을 주는 구원자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 관계가 역전돼요. 그게 바로 이 소설의 묘미인데요. 로고스가 계속 우위에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에로스를 상징하는 골드문트가 자신도 모르게 나르치스에게 깨달음을 주는 거예요. 골드문트의 임종을 지키면서 나르치스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만약 사랑이란 걸 안다면 그건 바로 너 때문일 거야’라고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의 결핍이거든요. 나르치스는 감성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골드문트는 철학적인 부분이나 절제가 부족한 사람이죠. 골드문트가 없었다면 나르치스는 평생 에로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걸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거예요. 항상 자신은 골드문트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골드문트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골드문트가 없었다면 자신은 사랑의 가치를 전혀 몰랐을 거라는 걸 깨닫는 거죠. 그 순간이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 같아요. 이런 걸 융 심리학에서는 ‘대극의 통합’이라고 하잖아요. 가장 반대되는 것이 서로 통한다는 거죠.”

 

실제로 헤세는 융의 연구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융의 제자로부터 정신 분석을 받았고, 융의 조언으로 우울증 치료를 위해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헤세가 융의 관점을 전적으로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융에게서 시작된 개념들이 헤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녀에게 그림자는 외면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화해의 대상이었다. 바로 그 화해에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융은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의식의 친구로 만들어야 된다고 봤어요. 헤세도 융을 알기 전에는 그림자를 억압하고 있었거든요. 마치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요.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자기 안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드니까 자꾸만 피하잖아요. 끊임없이 내 안의 어둠을 억압하고 회피하려고 하죠. 물론 이러한 방어기제는 일차적인 충동이에요. 하지만 융은 그걸 뛰어넘어서 그림자와 소통해야 진정한 의미의 개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어요. 개성화는 정신적인 완성이에요. 『데미안』에 그런 구절이 있죠.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로 나다워지고 싶었는데, 그 길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라는 구절이요. 그게 바로 개성화예요. 진정한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것이죠.”

 

융은 이야기했다. 개성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그러나 자신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자를 끌어안기란 쉽지 않다. 융이 말했듯 그림자와 소통하려면, 그 결과 궁극적으로 함께 춤을 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헤세 역시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융은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해야 된다고 말했어요. 그래야만 궁극적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림자와 소통하고 마침내 그림자와 춤을 출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림자를 이해해야 하잖아요. 헤세의 작품도 끊임없이 그림자를 탐구하거든요. 『황야의 이리』에서는 전쟁의 폭력을 탐구했고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안의 어둠과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줬어요. 그림자를 깨닫는 것 자체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 보는 거예요. 사실 그림자라는 것은 욕망의 대가거든요. 그림자는 욕망이라는 빛이 드리우는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욕망 자체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개성화는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깨달음으로써 나 자신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죠. 그게 깨달음의 궁극적인 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관련 도서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저/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헤르만 헤세’는 첫 경험의 이름이다. 인생의 첫 사랑과 방황과 슬픔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다. 헤세의 ‘데미안’은 지금도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삶의 멘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문장을 낳은『데미안』(1917)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독일 소설로 꼽히며 더 크고 깊어진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인, 소설가, 화가로 구도자적 삶을 살았던 헤르만 헤세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걸었던 길 위의 깨달음,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와 자연의 고요한 치유력에 대한 예찬은 매순간 점점 더 다급한 일상의 쫓김을 견디고 버텨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더욱 절실해진 메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 민음사 | 원서 : Demian

데미안을 통해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이 세밀하고 지적인 문장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진저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깊이 있는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저/김이섭 역 | 민음사 | 원제 : Unterm Rad

헤세 자신의 자전적 소설. 민감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어린 신학도 한스 기벤라트는 헤세의 분신이다. 그가 엄격한 신학교의 규율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에서 쫓겨난 점, 작은 고향 도시로 돌아와 공장의 견습공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보려 했던 시도 등은 헤세의 우울한 청소년기와 겹치는 장면들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헤세가 세계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아를 발견하여 자신의 고통스런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반면 한스는 엄격하고 딱딱한 집안 분위기, 그에 버금가는 학교 교육 및 사회의 전통과 권위에 눌려 파멸하고 만다는 점이다. 그랬을 때 "수레바퀴 아래서"란 비유적 표현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내면과는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돌아가는 물리적 세계의 톱니에 짓눌린 여린 영혼을 떠올릴 수 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박병덕 역 | 민음사 | 원서 : Siddhartha

이 소설은 행동을 전환시킬 만한 강한 줄거리를 지니고 있지 않고, 긴장이나 자극이 거의 없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서전적이며 세계관과 삶에 대한 철학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싯다르타》는 세계와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헤세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즉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헤세의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단계에 해당된다. 특히 동양철학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 문학에 있어서도 독특한 작품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저/임홍배 역 | 민음사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눈 사랑과 우정, 이상과 갈등, 방황과 동경 등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순하게 그려낸 소설로, 『데미안』과 더불어 헤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뒤흔들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헤세는 불완전한 인간이자 방황과 방랑, 예술에 대한 동경, 여성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끊임없이 낯선 세계에 부딪히는 청년 골드문트를 통해 자신의 성장기 체험을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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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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