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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아닌 드라마들

이제는 어엿한 어른 공룡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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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공룡을 좋아하는 건 이제 그냥 당연한 거라 이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드라마들

 

법정스님이 번역한 석가모니 전기, 불타 석가모니를 읽으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을 세려면 큰 단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예를 들어서 석가모니의 인생은 80여년 정도였지만, 그 전에 거친 수백 번의 윤회를 모두 포함된 다음에야 석가모니라는 존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가족사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략 3대째에 내가 태어났으니, 삶을 몇 백 번 거쳤다면 최소한 나라가 몇 십에서 몇 백 개 정도는 흥하고 망했을 정도의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상징적인 숫자를 내가 임의로 서툴게 계산한 것이라 별 뜻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큰 숫자라는 것은 알겠다. 또, 같은 불교의 미륵보살은 56억 7천만년 뒤를 기약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의 성경은 최신판인 신약성서도 2000여년 전 예수 탄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출근 준비하며 2000초는커녕, 버스가 출발하는 20초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머쓱해진다. 부끄러움을 떨치려고 종교가 제시하는 시간 개념이니 나와 유리된 것이라 하려고 하는데, 발을 내딛고 있는 땅이 엄밀한 증거를 내세우며 비슷한 충격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공룡이다.

 

갑자기 공룡 얘기를 해도 와 닿지 않는 어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룡에 대한 콘텐츠는 주로 어린이를 위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YES24 통합검색에서 ‘공룡’으로 검색하더라도 유아/어린이 분야의 도서가 압도적이다. 내가 어릴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에는 티렉스나 트리케라톱스에 대해서는 금성과학학습만화 50권 중 한 권 분량만큼만 관심이 있을 뿐, 크게 흥미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공룡을 특별히 의식할 이유도 없어서, 데면데면한 채로 지내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공룡이 마치 네루다의 시처럼 찾아왔다. 감히 네루다와 나를 동일시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어떤 거대한 이끌림에 대한 네루다의 표현 말고는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쩌다 눈에 들어온 공룡계의 동향이 흥미로워서(‘뭐, 티라노사우루스에 깃털이 달려있었을 거라고?”) 기사와 책과 DVD와 방송과 강의와 박물관을 차례대로 찾다 보니 이제는 어엿한 어른 공룡 팬이 되었다. 전 세계 공룡학자들이 필드워크에 힘써준 덕분에 공룡에 대한 팬심을 자각한 다음부터는 삶의 즐거움이 풍부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날이 새로운 공룡이 나오거나, 영구미제로 남을 뻔 했던 부분 화석의 주인이 밝혀지거나, 조류와 공룡의 밀접한 관계가 드러나거나, 진화의 연결고리가 채워지는 등 이야깃거리는 그칠 날이 없다. 게다가 그 드라마가 펼쳐지는 시간은 기본 몇 천만년 단위로 세야 할 정도로 장대하니, 몇 년, 몇 달, 몇 시간의 계획이 어긋날까 신경 쓰던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져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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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워서 아직 개시는 못했습니다.

 

다만 공룡 팬이라서 아쉽게 느끼는 것도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책에 자주 기대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위에서 말했듯 공룡을 주제로 한 콘텐츠의 주 타깃은 어린이와 그 부모다. 그래서 공룡에 대한 박스기사를 보고 흥미가 생겨 관련 정보를 모으다가도 피인용지수가 높은 유수의 저널에 실린 영어 논문의 벽에 부딪혀 눈물을 머금고 더 이상의 탐구를 포기하는 일이 잦다. 어른을 위한 공룡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독자층 연령대 쿼터제를 진지하게 주장하고 싶을 정도로 그 출간 빈도가 낮다. 그래서 얼마 전 공룡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나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해서 어쩌면 앞으로 공룡 팬이 좀 더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가지게 되었다.

 

그 책은 젊은 공룡학자(정확히는 고생물학자)가 쓴 박진영의 공룡열전이다. 저자는 여섯 마리의 공룡을 주제로 각각의 생물학적 특징과 그를 둘러싼 학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용반류나 조반류 등 부연 설명이 필요한 용어는 거의 보이지 않아서 특별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는데, 저자가 전문가여서 논의하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후기에 올해 초 학계에 발표된 칠레사우루스를 언급하는 등 최신 동향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여러 정보를 나열한 사전식 구성을 채택한 공룡 책이 많은 가운데, 다양한 학설들의 흥망성쇠를 유기적으로 엮어낸 점도 독특하다(물론 공룡 백과사전도 좋아한다!). '재미있게'라고 말했는데, 과학책 치고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다. 공룡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여러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목차에 시선을 빼앗겼다면, 아니면 여러 주제의 미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거대화나 공룡의 체온유지 등 흥미로운 주제에 세련되게 접근한 스콧 샘슨의 공룡 오디세이, 오랜 연구와 생생한 경험이 어우러진 이융남 박사의 저서 및 역서와 감수서, 근사한 그래픽과 함께 연구 동향을 정리해주는 newton의 잡지와 단행본인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 등 다른 좋은 책들도 많아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당분간 계속 공룡 팬으로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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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보니 내 책상 위가 공룡열전.

 

솔직히 말해서, 공룡을 좋아하는 건 이제 그냥 당연한 거라 이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 눈을 돌리는 순간 사회의 어떤 문제들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를 예로 들자면, 공룡을 보면서 고작 몇 십 년 살면서 감히 지구의 후손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면서 지구 생명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거나,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이 아니니 지금의 고민은 꽤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등 작지만 확실한 깨달음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남는 에너지를 좀 더 긍정적인 데로 돌리려고까지 한다. 꼭 공룡이 아니라 우주나, 바다 생물이나, 아니면 멀고 당장 몰라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면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있는 드라마 덕분에 지금 여기가 더 드라마틱해질 수도 있다.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저/법정 역 | 문학의숲

불교란 붓다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불교를 이해하려면 붓다를 알아야 한다. 기존에도 싯다르타 붓다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은 많았다. 그 중에서 이 책이 단연 압권인 것은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인 와타나베 쇼코가 썼고 법정 스님이 번역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1975년에 이 책을 처음 번역했고 2010년 입적 직전에 다시 한번 이 책이 출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문을 썼다.

 

 

 

 

 

 

 

공룡열전

박진영 저 | 뿌리와이파리

중생대에 진화의 꽃을 피워냈던 수많은 공룡들은 멸종(물론 이 말에는 ‘단서’가 붙는다!)하고 말았지만, 그들이 남긴 화석을 통해 되살려내는 공룡의 세계는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기에 우리의 공룡 상식 또한 진화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비전문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느라 바빠 공룡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방해하는 공룡 연구가의 책과는 비할 바 못 되는 공룡 책다운 공룡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이 우리의 공룡 상식을 진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공룡 오디세이

스콧 샘슨 저/김명주 역 | 뿌리와이파리

중생대의 온실세계는 현재의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유익한 통로이고, 결국 공룡의 갑작스러운 멸종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멸종을 다루는 자연스러운 출발점이 되어준다. 공룡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최신 공룡고생물학 연구들의 집대성 뿐만 아니라 생명과 우주의 역사를 통합한 '위대한 이야기'까지, 『공룡 오디세이』는 독자들에게 생태와 진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할 것이다.

 

 

 

 

 

 

공룡대탐험

이융남 | 창비

한국인 최초로 공룡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고생물학자 이융남 박사가 외국서적을 번역한 것이 아닌 직접 연구한 공룡의 발자취를 생생히 보여주는 책. 화석탐사, 공룡알 추적 등 현장경험도 풍부하기로 소문난 박사의 시각으로 살펴본 공룡의 일대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공룡의 진화와 멸종, 최근의 연구성과 소개와 80여종의 공룡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도 실었다.

 

 

 

 

 

 

 

Newton Highlight 공룡의 시대

일본 뉴턴프레스 편 | 뉴턴코리아

지구에서 살다가 사라진 생물 중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장 베일에 쌓여 있는 것이 공룡이다. 공룡은 화석으로만 발견되므로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룡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교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공룡의 모습을 복원 ? 제시한다. 또한 공룡의 신체 기관의 특징, 전체적인 모양, 식사, 오감(五感), 걷는 속도, 사냥과 먹잇감의 관계, 뇌에서의 신호 전달, 큰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등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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