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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젊은 작가 투표, 이 점이 아쉽다

후보에 최순결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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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 투표를 시작했다. 후보 중에는 쉰을 넘은 사람도 있고, 등단 경력이 10년이 지난 작가도 많다는 점에서 과연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가장 아쉬운 점은 응당 있어야 할 소설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최순결.

에밀 아자르가 프랑스의 최순결이라는 말은 익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방금 지어냈기 때문이다. (『4월의 공기』 185쪽에 등장하는 구절, ‘단거리 육상과 연애의 공통점은 스타트’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를 차용했습니다.) 최순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4월의 공기』를 쓴 소설가라 답하겠다.

 

4월의공기.jpg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어쩌다 보니’였다. ‘어쩌다 보니’가 아니라면, ‘어이쿠 이럴 수가’, 혹은 ‘아니 왜 하필’ 정도의 느낌이랄까. 여하튼 정말로 우연하게 『4월의 공기』의 표지를 봤다. 이 책의 표지와 맞닥뜨렸을 때 바로 떠올린 건 제목 전면에 계절을 내세운 드라마였다. 이름하여 <여름 향기>. 송승헌과 손예진이 주연으로 나온 보송보송한 로맨스물이었음에도 <여름 향기> 방영 시절 코딱지 친구들은 <여름 암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칭하기 일쑤였고 그런 면에서 『4월의 암내』 하면 좀 더 멋진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연관도 없고 재미는 더더욱 없는 의식의 흐름이 뇌 피질 사이를 비집고 있었다. 그렇게 그 책은 내게로 왔다. 아니, 경비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배송 비닐을 감싼 포장 테이프를 거칠게 뜯어내고 개인정보가 적힌 스티커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3초라도 빨리 책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바람의 검심 켄신도 울고 갈 정도로 빨리 발책(拔冊)을 하고 보니, 가장 눈에 띈 건 역시나 작가 이름이다. 최순결. 정말 곱디 고운 이름 아닌가. 물론 본명이 아니다. 앞날개 부분에 들어간 소개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에밀 아자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해 고루한 프랑스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로맹 가리. 한국에서도 로맹 가리 같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 『4월의 공기』를 최순결이라는 가명으로 쓴 이 작가로 인해 그 가능성의 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문학시장의 독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본명을, 그 안주할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가 얻고자 한 것은 온전한 문학적 독립을 위한 순결한 의지, 단지 그뿐이었다.

 

내게는 ‘유명 문학상 수상 작가의 가명 소설’이라는 흰 색 띠지도 인상적이었지만, 앞날개에 적힌 로맹 가리라는 이름이 중요했다. 그는 완장 다 떼고 세상과 맞짱 뜬 인물의 대명사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콩쿠르상을 수상하며 이미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그 이름을 버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프랑스 문단은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상을 줬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전무후무한 콩쿠르상 2회 수상이라는 더 위대한 타이틀을 따낸다.
 
UFC 여제 론다 로우지조차 크리스 사이보그와 대결 가능성을 내비치며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체급을 고수한다는 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타이틀을 내려놓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 유명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로맹 가리의 행동은 경탄할 만하다. 게다가 나는 에밀 아자르가 쓴 『자기 앞의 생』을 우주 최고의 성장 소설이라 여기는지라,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냥 최순결의 포로가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맹 가리가 순결님 같은 작가라고요? 네, 이제부터 제 주인입니다. 이런 기분이랄까.

 

내가 왜 『자기 앞의 생』을 우주 최강 성장 소설이라 여기는지는 대략 15년 뒤에 다시 논하기로 하고, 오늘 주인공은 『4월의 공기』이니 청춘에 관해서 써보겠다. 그렇다. 『4월의 공기』는 청춘 소설이다. 표지에 적힌 대로라면 본격세속 청춘소설. 주인공 위근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오며 겪은 대학생활이 주된 내용이다. 설정에서부터 찌질함이 느껴진다. 아니, 이건 지방 출신 고학생을 향한 편견을 강화하는 발언 아닌가,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대체로 지방에서 20년을 보낸 뒤 서울로 대학을 온 사람은 찌질했다. 나를 비롯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서울에는 청소 시간에 플라스틱 빗자루를 말 삼아 함께 뛰놀던 친구도 없고, 두 다리 뻗고 뒹굴어도 될 만큼 넓은데다 채광까지 좋은 방은 비싸기만 하며,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당연히 엄마표 집밥도 없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선생 집밥도 없었다. 가는 곳은 폐허고, 남는 것은 허망함과 외로움. 다소 과장하자면, 상경은 디아스포라였다. 특히나 매사에 서툰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춘에게는 충격이 더하다. 여우가 괜히 태어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가누고 죽느냐 말이다.

 

근석도 그랬다. 비빌 언덕도, 학문을 향한 호기심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는 열정도 없는 그에게 대학생활은 참을 수 없는 시시함일 뿐. 마침 시대적인 상황도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주인공이 입학한 1995년. 독재 타도, 신식민지독점자본주의 반대를 외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학생이었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학생이 등장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절이다. 그렇다고 딱히 뭔가에 열중할 만한 뭔가도 없었던 때다. 근석 2, 근석 3, 근석 4, 배우 장근석도 95학번이라면 그냥 시시하게 대학 다녔을 그럴 시기.

 

이런 시절이었지만 근석에게도 불끈불끈 하게 하는 뭔가가 있으니, 그건 바로 여성이다. 삶은 생에의 맥목적인 의지라는 아루투르 쇼펜하워의 말이나 인간의 행동을 추동케 하는 건 이기적인 유전자의 번식 본능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분석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대체로 이성을 갈망했다. 이를 좀 더 성스럽게 묘사해서 두 글자로 줄이면 ‘사랑’이고, 근대적인 단어로 구체화하면 ‘연애’다. 종족 보존의 본능이 가장 왕성한 청춘에게 연애는 삶에서 가장 긴요한 사안이거늘, 청춘 소설 『4월의 공기』에서 연애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소설은 주인공이 만난 여성인 진아, 효정, 연경과 사랑 이야기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실화로 의심하기에 충분할 만큼 묘사가 사실적인데, 현실 속 연애가 대개 궁상 맞듯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화려하다기보다는 초라하다. 많은 20대에게 사랑이란, 공중파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2세의 번쩍번쩍 빛나는 로맨스라기보다는 문학 작품에서 그려지듯 가진 것도 없고 정신 상태도 불안정한 두 사람이 부딪쳐서 생기는 촌극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깊숙한 자아 속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다거나 타자는 지옥이라고 설파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유쾌하다. 비루한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해학일 텐데, 소설 속 문장 중에는 웃픈 구절이 많다. 가령 이런 대목.

 

“서기 1976년. 유지태가 태어나고, 송승헌이 태어나고, 장혁이 태어나고, 질세라 차태현이 태어난 1976년에 테가 태어났단 말이지.”
“응”
“그런가 하면 김종국이 태어나고, 조성모가 태어나고, 홍경인이 태어났단 말이야.”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어째서 녀석은 이런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홍경인은 도대체 무슨 맥락인가.
(중략)
“말하자면, 지금은 용띠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란 말이야. 우리만 빼고!”
“미안한데 난 빠른 77인걸.” (12쪽)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잦아지면서 결국 나는 가운데 가르마는 물론, 가운데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을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중간에 있는 중간 관리자도 싫었고, 중산층도 싫었고, 중도주의자들도 싫었고, 중미도, 중구도, 중복도, 중탕도, 중구난방도…… 아무튼 중간은 죄다 싫었다. (18쪽)

 

그러다 나는 결국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상처를 받고 웃음을 터뜨리는 건 모두 현실의 세계이고, 허구의 이야기는 충족시켜줄 수 없는 궁극의 벽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허구의 이야기는 완벽하지만 심장을 어루만져주진 못한다. 반면 현실의 이야기는 초라하고 식상하고 때론 진부하기까지하나 내장을 운동케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이목구비가 완벽하게 재창조된 성형 미인을 만났을 때보다, 어딘가 아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소설을 쓴다면 에세이 같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사건이란 개연성도 부족하고, 일관성도 부족하지만 엄연히 우리를 살게 하고 멈추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죽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호흡하고 토로하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린다. (152쪽)

 

이밖에도 술 취한 진아와 결정적인 순간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때마침 나온 그녀의 구토물이라든가, 록카페에서 효정과 근석이 가요만 신청하자 주인인 곰사장이 벽면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라든가, 연경과 연애하기까지 둘이 만들어내는 웃기고도 슬픈 인연 등 ‘초라하고 식상하고 때론 진부까지하나 내장을 운동케 하는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했다. 단언컨대 이토록 엉덩이에 털이 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울다가 웃으며 본 작품을 꼽으라면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박상 소설가의 『말이 되냐』와 최민석 소설가의 『풍의 역사』를 빼면 없다.

 

아마도 소설 속 배경이 내가 대학 생활을 보냈던 시대와 비슷한(오차, 플러스 마이너스 10년) 영향도 있는 듯하다. 소주병과 통기타와 말라붙은 라면사리가 뒹굴던 과방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격하게 공감했고, 어린 시절 헤어진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자취방에서 엄마 보고 싶다고 30분간 훌쩍였던 스무 살의 나를 발견했다. 인생의 허망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건인 친구 죠다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부분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다시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내게 20년 납입 종신보험을 강제로 가입하게 만들었다. 교통사고를 특약 조건으로 넣은 상품 말이다. 어쩌면 죠다쉬의 사망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지탱되는 모더니티라는 시대적 맥락에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죠다쉬는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 자본주의에 종사하고 있었다. 죠다쉬의 사망 보험금은 얼마인가!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여하튼.

 

그중에서도 압권은 작품에서 가장 슬프다고 할 만한, 실질적 첫사랑인 효정의 청첩장을 주인공이 받는 대목이었다. 정작 첫사랑과 결혼해 아쉬울 게 없는 나는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는 건 뻥이긴 하다만, 책 등으로 명치 맞은 마냥 가슴이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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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젊은 작가 투표 1위 최순결

알고 보니 최순결이 젊은 작가가 아니라면, 그야말로 사건

 

이런 대단한 이야기를 쓴 최순결 작가가 2015년 예스24에서 진행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 투표 명단에 없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할 만하다. 선착순 1만 명에게 포인트 1,000원 증정? 대한민국 1등 인터넷 서점 예스24만이 응당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이다. 참가비 무료, 1박2일 문학캠프 초대? 역시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예스24가 마련할 수 있는 자리다. 필자에게 글을 쓸 공간을 마련해주는 아량? 최근 종이 잡지까지 발간하며 문화 콘텐츠의 보고로 도약하는 채널예스만이 취할 수 있는 담대한 태도다. 그럼에도 최순결이 젊은 작가 후보에 없다는 사실은 아쉽다. 뭐, 어때. 2016년 젊은 작가 투표 1위에서 최순결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 취향은 메이저니까.


⇒ 후보에 최순결 작가님은 없지만 예스24 젊은 작가 투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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