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드라마를 보며 작가의 가치관을 읽는다

하명희 작가의 <상류사회>를 보며 드라마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한 마디로 사람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굉장히 강렬한 말이라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보이는 한 마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드라마를 봤다. 워킹맘인 터라, 집에 있을 때는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서 TV, 스마트폰, 컴퓨터는 멀리 하고 지내는데 웬일인지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선택은 드라마 <상류사회>였다. 이유는 단 하나, 목소리 좋은 훈남 배우 성준이 출연한다는 사실 이전에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성준.jpg

출처_ SBS

       

6월 8일 첫 회를 시작한 SBS 드라마 <상류사회>. 제목이 뭐이래? 싶었는데 <따뜻한 말 한 마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집필한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었다. 지난해 2월 소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덕에 인터뷰를 했던 작가다. 가슴 졸이며 봤던 두 드라마이기에 작가의 후속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류사회>는 유이, 성준, 박형식, 임지연이 주연을 맡았다. 성준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 하명희 작가와 호흡을 맞췄던 바 있다. 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고두심과 윤주상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도 부부로 나왔고, 이상우 역시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한혜진의 남편으로 출연했다. 난 드라마작가가 자신의 전작에 나왔던 배우들을 연이어 새 작품에 출연시킬 때, 그 배우들에 대한 신뢰가 간다. ‘저 배우, 괜찮았구나, 잘했구나, 그래서 작가가 또 불러줬구나.’ (하명희 작가는 지난해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상우 칭찬을 그렇게 많이 했다. 내심 다음 작품도 같이 하겠구나 싶었다)

 

불평등한 계급 간의 사랑. <상류사회>가 다루는 주제다. 갑과 을의 사랑,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갭이 좀 크다. 윤하(유이)는 자신이 재벌3세라는 걸 속이고 백화점 푸드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같은 팀 대리인 준기(성준)를 좋아하게 된다. 준기는 이미 윤하가 재벌3세라는 걸 아는 상태였지만 모르는 척하고, 윤하의 사랑을 받아준다. 준기는 ‘돈 빼고 다 있는’ 남자다. 청소원 어머니와 경비원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았다. 준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재능으로 대학 동기이자 재벌3세인 창수(박형식)의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창수와 맞선을 본 윤하와 사귀게 된다.

 

평범한 스토리다.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지독하게 많이 나오는 재벌과 서민의 사랑. 하명희 작가의 전작 <따뜻한 말 한 마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 비하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스토리.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얼마만큼 현실적인 일들로만 이루어졌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드라마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아?’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너무 다른 두 커플. 준기와 윤하, 창수와 지이(임지연)의 사랑을 가슴 졸이며 엿보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됐다. 준기가 친구이자 상사인 창수에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재벌3세 창수는 고졸 출신 비정규직 ‘지이’와 사귀는 상황이었다)

 

 준기: 넌 널 뛰어넘을 수 없어. 이지이랑 결혼 못해.

        집안이. 반대하고 누가 말려서가 아니야. 네 자신이 용납 못해.

        네 계급의식, 절대 뛰어 넘을 수 없어. 넌.

 

창수: 넌 날 몰라. 결정하면 바꿀 수 있어.

 

준기: 가치관을 바꾸려면 먼저 너 자신을 넘고 다른 사람을 넘어야 해.

       다른 사람을 넘고 자신을 못 넘으면 평생 자기 비하 속에서 살아야 해.

 

‘이런 대사는 적어 놓아야 해’ 나는 순간, 스마트폰을 찾았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작가가 이 대사, 힘주고 썼겠구나. 배우가 토시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되는 대사구나. 감독에게 특별히 이 장면을 잘 찍으라고 주문했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준기의 마지막 대사가 나에게 그랬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를 똑바로 아는 일, 나를 넘는 일이 먼저가 돼야 한다. <상류사회>의 창수는 결국 지이와 이별했다. 창수는 이별을 하며, 준기가 자신에게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상류사회>는 계급을 뛰어 넘는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다. 사랑의 갑,을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준기는 의도적으로 윤하에게 접근했지만 윤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준기는 “의도가 불순하다고. 과정이 계속 불순한 건 아냐”라고 말한다. 하명희 작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쓰면서,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륜(따뜻한 말 한마디)과 재벌(상류사회)을 소재로 한 드라마지만, 다른 작품과 다른 메시지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한 마디로 사람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굉장히 강렬한 말이라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다 보이는 한 마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인터뷰를 하면서, 상사와 거래처와 후배와 대화를 하면서, 사람을 읽는다. 한 마디, 한 문장으로 전체가 읽힐 때가 있다.

 

<상류사회>를 보면서, 주인공의 대사를 되새기면서,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아마 더 나올 것이다. “행복한 2등이 좋다”던 하명희 작가. 지난주 <상류사회>는 시청률 2등을 했다. <화정>과 0.2% 차이. 하명희 작가는 지난해 말, 에세이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를 펴냈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의 ‘출판’ 편인가 보다. 독자들이 공감한 글귀들을 찾아 보았다. 어쩌면, <상류사회>에서도 만나게 될 ‘한 마디’일지 모른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자신한테만 적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도 나를 치유해줄 수 없어. 내가 처리하는 수밖에.

    좋은 남자다. 자신을 괜찮게 만들어주는 남자는.

    생각을 말로 뽑아서 공개할 때는 그 말의 책임도 공개적으로 져야 합니다.

 

 

 

 

[추천 기사]

 

- 음악 편식자보다 무서운 음악 무식자
- 우리 부부는 귀가 얇습니다
- 범인은 바로 이 맨션에 있다
- 인생도, 독서도 타이밍

- 아홉 수의 끝에서 방황중인 스물아홉에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book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저5,850원(10% + 5%)

SBS 화제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로 호평을 받은 하명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스물여섯 청춘, PC통신에서 운명적 사랑을 만나다 2013년 하반기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동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주요 소통 수단인 PC통신은 구시대의 아이콘이지만 익명의 누군가와 관계를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