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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의 철없는 아빠 이율

17살에 아이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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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가 짙지도, 눈물이 낭자하지도 않았습니다. 8명의 배우가 함께 서 있기에도 좁은 무대에서는 그 틈을 비집고 봄날의 새순 같은 생명력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니 연극 제목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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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 연극을 평일 저녁에 혼자 관람했습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왠지 누군가에게 이 작품을 함께 보자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막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화사한 봄 햇살을 쬐고 있는데, 다시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요? 17살의 대수와 미라 사이에서 태어나, 올해 17살이 된 아름이. 하지만 조로증으로 여든 살 노인처럼 늙어버린 아름이. 이 인물 구도가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의 기본 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웬걸요? 예상 외로 무대는 밝았습니다. 죽음의 냄새가 짙지도, 눈물이 낭자하지도 않았습니다. 8명의 배우가 함께 서 있기에도 좁은 무대에서는 그 틈을 비집고 봄날의 새순 같은 생명력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니 연극 제목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군요.  

 

“빈말이 아니라 제가 했던 작품 중에서 연습실이나 대기실 분위기가 가장 시끌시끌하고 화기애애해요.”

 

토요일 낮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극장을 찾았습니다. 봄 햇살처럼 뽀얀 무대 앞에서 대수 역의 이율 씨를 만났습니다. 작품의 내용 때문에 연습실이나 무대 뒤편의 분위기도 조금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네요.


“연출 선생님이 ‘아름이를 우리는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 애도하지 말자!’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슬퍼하면 관객들에게 슬픔의 여지를 못주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아름이를 아직 살아있는, 최대한 행복한 한때로 받아들이자.’가 주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17살에 생긴 아이가 17살이 된 거잖아요. 100분 안에 그 모든 시간을 담는 데다 장면마다 상황이 크게 바뀌니까 배우들에게는 엄청난 몰입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장면 장면이 나뉜 만화 컷을 연상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연습 때 훈련 아닌 훈련을 했죠. 연출님이 초반에는 만화 컷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받아들이기도 쉽고, 연기 접근도 쉬울 거라고.”

 

전작이 연극 <프랑켄슈타인>이었잖아요.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섭외가 들어왔을 때 조금 망설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반반이었어요. 하고는 싶었지만, 원작이 워낙 좋아서 다른 매체로 원작을 잘 표현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이 힘을 줘가면서 해야 했던 연극이라서, 뭔가 내려놓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 들어오기를 바라던 터라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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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편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인가요? 배우들의 감정 소모가 무척 클 것 같은데요.


“배우로서 연기 스타일이요. <프랑켄슈타인>은 철학적이면서 심도 있게 풀어내야 한다면 좀 다른 연기 스타일의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두근두근 내 인생>은 제가 그동안 했던 작품 중에 감정 소모가 많은 축에 속하긴 해요.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데, 그런 감정을 바로 끌어내는 것도 어렵고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면 분위기 자체가 쉽게 유도가 돼요. 상대 배우 분들도 그렇고, 무대 위에 펼쳐진 감정을 그냥 따라만 가면 되더라고요.”

 

아직 미혼인데, 늙은 아들을 바라보는 젊은 아빠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 갔나요?


“대수는 아버지이지만, 아직 철이 좀 없는 그런 인물이에요. 눈치도 없고,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아름이를 연기하는 배우 분들이 저보다 나이도 많아서 처음에는 좀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런 느낌을 깨게 된 계기가 선배님들 눈을 보면 아이가 돼 계시더라고요. 눈동자 자체가 ‘아빠!’, 그냥 보고 있으면 제 아이 같아요.”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아름이 역할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 같아요. 키가 너무 커서 안 될까요(웃음)?


“그러게요, 누가 저를 업을 수 있을까요? 다시 태어나면 도전해 볼게요(웃음). 배우로서 욕심이야 있죠. 욕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 같은 거죠. 이런 역할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접근했을까, 어떻게 풀었을까... 그런데 워낙 선배님 두 분이 잘 하셔서 저로서는 아직 감히(웃음)...”

 

<두근두근 내 인생>의 경우 원작인 소설은 물론 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배우로서 연극만의 매력이라면 어떤 걸 얘기할 수 있을까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거겠죠. 영화는 내가 연기한 걸 나중에 보면서 반응을 지켜보게 되는데, 연극은 바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기 때문에 생동감이 있죠. 그 안에서 배우들이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얻기도 하고요. 사실 이 작품은 마지막에 박수가 거의 안 나와요. 관객들이 슬픔을 가다듬다 보면 박수를 잘 못 치시는데, 그러면 배우들은 ‘우리가 행복하게 잘 표현했나보다’ 생각하죠.”

 

요즘 무대 배우들도 한꺼번에 여러 작품에 참여하던데, 이율 씨는 그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게 공연시장의 또 다른 시류라면 편승하지 않는 것도 힘든 면이 있을 텐데요.


“저는 달란트가 없나 봐요. 그것도 능력이거든요. 저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면 소모도 많고, 적응을 잘 못해요. 그리고 어떤 흐름을 따라 간다는 게 개성을 포기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 걸 급하게 했다가는 탈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커요. 그렇다고 제가 작품을 쉬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저는 한 작품 끝나면 재정비하고, 제 스타일대로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무대가 그렇겠지만, 유독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을 해왔던 것 같아요. 


“캐릭터가 일반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하려고 노력, 선택을 해왔죠.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큰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돋보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배우라면 대부분 무대 위에서 빛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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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제목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잖아요. 배우로서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떨리고 두려움이 있는 두근거림은 첫 번째 공연 때 처음 등장하기 바로 전이요. 그때 가장 두렵고 두근거려요. 반면 뭔가 개운한 두근거림은 마지막이죠. 공연을 잘 마무리하고 인사하면서 박수 받을 때는 무척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있어요.”

 

극중 아름이가 항상 ‘행복한 생각 많이많이’라고 말하잖아요. 이율 씨가 배우로서, 또는 30대 초반 남자로서 많이 하고 있는 행복한 생각은 뭔가요?


“사소한 것들이 많죠. 일에 대한 평가가 좋게 나는 생각, 날씨 좋은 날 친구들과 여행가거나 술 마시거나. 잘 때도 행복한 생각 많이 하고요(웃음).”

 

이 연극을 본 관객들이 아마도 지나친 슬픔보다는 ‘하루하루 재밌고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배우들도 연기하면서 그런 생각을 할 것 같고요. 저와 다음 작품으로 다시 만날 때는 스스로 어떤 모습이길 바라세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붕 떠있지도 않고. 저는 지금 제 모습에, 삶에 만족하거든요. 늘 이렇게 긍정적이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고 싶지만, 언제나 똑같은 느낌의 배우로 남고 싶어요.”

 

사실 이율 씨와는 꼭 3년 만에 인터뷰로 다시 만난 겁니다. 기자가 유럽공연여행을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배우가 이율 씨였는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소년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네요. 배우의 힘으로 끌어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더니, 그 다짐도 충실히 지켜가면서요. 그러고 보면 이율 씨는 ‘언제나 똑같은, 변하지 않는 느낌의 배우이고 싶다’는 스스로의 바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없는 아빠 대수가 늙어버린 아들 아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두근거리는 인생도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하지만 만족스러운 하루하루가 아닐까요? 여러분의 심장은 지금 두근두근 뛰고 있나요?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은 5월 25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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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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