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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가장 심각한 정신병자가 모이는 병원

우주 왕자가 사는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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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미술 치료사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그들을 치료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 미술 치료사라는 이름으로 그 곳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때론 같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요가 선생 노릇도 했다.

나는 시카고에서 가장 심각한 정신병자들이 모인다는 정신 병원에서 미술 치료사 인턴으로, 나중에는 정식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 이 병원은, 범죄율이 가장 높고 가장 가난하고 시카고의 전과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시카고의 서쪽 끝 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해 있다. 내가 버스 타고 출근할 때 창밖을 내다보면 길거리 여기저기에 깨진 유리조각과 노숙자들이 피우는 불의 연기와 작은 교회들이 섞여 마치 황폐한 느낌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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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문과 창>(2014) 캔버스에 유화, 45*53

 


그러다가 날씨가 따뜻해져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동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부러 나와서 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CSI 경찰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처럼 경찰차가 여러 대 쫙 깔려 있고 총기를 두른 경찰이 젊은 흑인 남자들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우는 현장을 본 때도 종종 있다. 운이 좋아서 그 현장 바로 옆을 씩씩거리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 지나가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도, 경찰도, 수갑 반쯤 찬 청년들도 나를 희한한 듯(멋있어 보이는 듯?) 쳐다본다.


그런 동네에 있는 이 병원은 정신분열증을 주로 치료하는 곳으로, 정신분열증이라는 긴 병과의 싸움 중에서도 상태가 가장 심각할 때 단기간 동안 와 있는 곳이다. 정신분열증은 흔히 아는 대로 환각이나 환청, 망상 증상이 있는 양성 증상과 의욕이 없고 감정이 둔화되고 무감동의 증상을 보이는 음성 증상이 있다. 그러다 보니 환각과 환청에 반응해 희한한 행동으로 눈길을 끄는 환자들과 어떤 자극에도 반응 없이 구석에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환자들이 섞여 있다.


주로 검사나 약물 조절을 하러 다른 병원이나 기관에서 의뢰를 받아 1~2주 정도만 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길거리서 옷 벗고 “내가 예수다!”라고 소리 질러서 경찰 사도들이 ‘모셔오는’ 경우도 있고, 기온이 떨어지면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자기 발로 따뜻한 침대를 찾아오는 노숙자도 있다. 이런 노숙자의 경우 정신 병원의 시스템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뭐가 보이냐고 하면 보인다고 하고, 뭐가 들리냐고 하면 들린다고 하고, 죽고 싶은 생각만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고, 죽을 구체적인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 그건 없다고 한다.(죽을 구체적 계획이 있다고 하면 1 대 1 관리와 감시 체제가 발동되어 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하는 대답이다.) 그런 환자들끼리 텔레비전이 있는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어느 병원 밥이 더 맛있다느니, 어느 병원에 가야 텔레비전 케이블이 더 많이 나온다느니 하는 유용한 정보 교환을 하는 모습은 배낭 여행족들이 여행 정보를 교환하는 유스호스텔의 거실 모습과 흡사하다.


때때로 감옥에서 실형을 살다가 정신병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죄목인지는 모르는데, 소문은 들린다. 강간범이나 살인자는 환자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다. 참 별별 사람들이 끌려오기도 하고 자기 발로 찾아오기도 하는 이곳은 축복받아야 하는 곳이다. 병원비가 하늘을 치솟는 미국에서 보험이 없는 사람들이나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도, 그러니까 청구를 할 곳이 없는 사람들도 일단 받아들이고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하느님과 관련된 분들이 많이 온다. 하느님도 오시고, 하느님 비서도 오시고, 예수님께서는 너무 자주 오시고, 마리아도 왔다 갔다 하신다.


여기에 있는 이야기들은 뭐 하나 모르는 초보 미술 치료사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그들을 치료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 미술 치료사라는 이름으로 그 곳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때론 같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요가 선생 노릇도 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배운 별 모양의 종이 접기로 그들에게 미술 치료사 인정을 받았다.(“당신 미술 치료사 정말 맞네! 이것 좀 봐. 종이로 별을 만들었어!”) 아무래도 그분들이 나를 측은해하신 것 같다. 치료사랍시고 왔다 갔다 하면서 뭔가 열심히 하려고는 하나 뭘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무료한 병원 생활이 심심했는지,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소통의 길을 살짝 열어 보이며 손가락 하나를 내게 내밀어주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내가 그 손가락을 두 손으로 덥석 잡은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 이 글은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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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정은혜 저 | 샨티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미술 치료를 공부한 정은혜 씨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정신병동의 환자들, 쉼터의 청소년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의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들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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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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