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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그림책

‘눈을 감고 마음으로 또 다른 세상을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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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는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공원까지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눈을 감자, 청각과 후각은 예민해지고 촉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독자도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 짤막한 여정을 함께 겪게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불안한 마음과 걱정, 두려움, 당황스러움을 함께 느낀다. 아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감각들이 더욱 예민해지고,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시각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생생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새삼스럽지만 그림책의 매력은 자주 많이 쉽게 꺼내볼 수 있고, 볼 때마다 새롭다는 데 있습니다. 단순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평범하게 담았다면 더 그렇고요. ‘그건 이런 거야, 누가 봐도 그렇잖아.’라는 생각 사이로 생소한 느낌들이 조금씩 올라오면 책이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책도 그렇습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는 아이의 독백을 따라 먼 길을 함께 걸어온 기분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분명해 보이는 이 질문에는 뻔한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좋고 어둠이 좋고 고요함이 좋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만 먹으면 ‘밝음’을 얻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 아마 두렵고 두렵고 두렵겠지요. 스쳐가는 그늘 한 조각에도 움찔하고, 세 걸음이 서른 걸음처럼 느껴집니다. 실눈이라도 뜨고 안전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고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이는 것’에 의지하고 있는지요! 여기까지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 몸에 배어있는 것. 한 걸음 더 나가보면 뭐가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채로 집 밖으로 나선 아이는 생각하고 듣고 부딪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 생각하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런저런 소리를 듣고, 미처 피하지 못한 길 위의 장애물에 부딪칩니다. 손과 발, 귀, 머릿속의 눈에 의지해 가만가만 움직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는 눈을 뜨고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바닥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건 아닌지 무서워지지만 목련 향기를 맡고 참새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됩니다. 그리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 책을 들여다보면서 또 한 걸음 가보기로 합니다.

나는 볼 수 있습니다.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맛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보지 않고 듣지 않고 함부로 만지거나 맛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숨고 피하고 도망갈 수도 있지요. 아마 제가 지나온 길에도 목련이 잔뜩 피어있고 참새들이 작은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는, 보려 하지 않은 세상에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있을까요.

마침내 아이는 공원에 도착해 안대를 벗습니다. 내내 이어지던 흑백의 시간이 끝나고 알록달록한 세계가 거짓말처럼 눈 앞에 펼쳐집니다. 공원에는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 아기를 지켜보는 엄마가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명화 속의 모나리자, 동물원에나 있을 법한 침팬지와 고릴라, 산타클로스와 외계인, 팅커벨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태연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보여요.”라는 아이의 말 때문일까요.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제 정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말해줄 수 없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니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또 한번 공원을 향해 걸어갑니다. 더 천천히, 가끔은 뛰어보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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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와 하위 1% 두 남자의 뜨거운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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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면 차이자오룬 저/심봉희 역 | 웅진주니어(웅진닷컴)
강렬한 흑백 그림들로 눈을 감고 손끝으로 더듬어 나가는 느낌을 주는 동화책입니다. 아이가 눈을 가리고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짧은 여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느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 시각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싹트게 됩니다. 또 책에 들어있는 안내지를 통해 시각 장애인에 관련된 보다 자세하고 친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길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집이나 학교에서 해 볼 수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각 장애인 체험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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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차이자오룬> 저/<심봉희> 역9,900원(10% + 5%)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는’ 그림책 강렬한 흑백 그림들로 눈을 감고 손끝으로 더듬어 나가는 느낌을 주는 동화책입니다. 아이가 눈을 가리고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짧은 여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느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 시각 장애인을 이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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