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웃긴 남자가 더 매력적인 이유 - 『웃음의 과학』 이윤석
한손에는 과학, 한손에는 코미디!
웃음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의 몫일까, 개그맨의 몫일까. ‘어떻게’ 웃길 수 있는가, 궁금하다면 개그맨의 답변을 들어야할 것이고, ‘왜’ 웃는가, 라는 질문에는 과학자의 대답이 옳을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농담과 코미디는 대부분 동일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나올 듯이 듣는 이의 기대를 부풀리면서 긴장감을 높여 간다. 그러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부분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을 일으키고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모순되지 않는 진술로 새로운 깨달음을 제시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소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하게 만드는 한 차원 다른 발상이다. 기대와 전혀 다르지만 이야기를 완벽히 매듭짓는 요소가 듣는 이의 재미를 더욱 높여 주는 것이다. (p.46)
웃음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의 몫일까, 개그맨의 몫일까. ‘어떻게’ 웃길 수 있는가, 궁금하다면 개그맨의 답변을 들어야할 것이고, ‘왜’ 웃는가, 라는 질문에는 과학자의 대답이 옳을 것이다. 그 둘을 모두 충족시키는 연구가 있을까. 웃음을 본격 해부한 책, 웃기지 않은, 웃음에 대한 과학책 『웃음의 과학』이 나왔다. 저자는 개그맨 이윤석이다.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박사는 이 책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자가 상아탑에 틀어 막혀 박제된 웃음만 연구해 온 과학자가 아니라 17년 동안 정상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진정한 웃음을 고민해 온 인기 코미디언이라는 점이다. 웃음을 다룬 논문들 속에서 딱딱한 활자로 죽어 있던 과학적 설명들이 오랜 시간 동안 때로는 관객들을 빵빵 터뜨리게 하고 때로는 얼어 붙게 만들었던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만나면서 비로소 펄떡펄떡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웃음의 과학적 설명을 충실히 정리한 대중 교양서를 넘어선다. (p.13)”
YES24와 상상마당이 함께하는 3월의 향긋한 북살롱. 개그계의 철학자 이윤석과 진화심리학자 전종환 박사가 만나 『웃음의 과학』콘서트가 열렸다. 행사의 진행은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팀장이 도왔다. 단상 앞에 나란히 앉은 개그맨 이윤석과 전중환 박사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진화심리학을 공부하고, 책벌레이며, 각자의 분야에서 훈남으로 통하고 있다. 게다가 미모의 여성과 결혼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유쾌한 대화가 시작된다.
딱딱한 ‘과학책’ 안에 재밌는 얘기가 있다.
‘과학책’ 인데 저자가 개그맨입니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리고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이윤석(이하 ‘이’): “진화론에 기반한 웃음의 기원과 발달 과정 등을 살펴보았어요. 웃음에 대한 풍경을 집대성한 책이죠. 과학책이라고 해서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이론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웃긴 책은 절대 아닙니다. 심지어 이경규 선배님은 “너는 책도 안 웃긴다”고 말했습니다(청중 웃음). 그럼에도 욕심을 낸 이유는 재밌는 과학책의 안내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방 끈이 긴 개그맨’이라는 수식이 있는데 가방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경석 씨가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웃음에 대한 교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교재로 쓰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웃음).”
전종환 박사님께 묻겠습니다. 책을 읽고 느낌이 어땠나요?
전종환(이하 ‘전’): “새해 결심이 있었어요. 올 한해는 진화심리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글은 읽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던 중에 출판사의 제안으로 원고를 읽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도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감동적이기까지 했죠. 현장에 있는 분이 웃음의 기원과 현상에 접근하고 이 책을 썼다는 게 신기했고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을 이 책의 뼈대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이: “뿌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고향을 묻는 사람이 많죠. 저 또한 웃음의 고향을 찾으면서, 가장 적절한 학문을 찾았죠. 진화심리학이 웃음을 연구하는 데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들어 웃음에 대한 연구가 쌓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 “맞습니다. 국내에는 생소한 연구지만, 학자들의 연구가 최근 들어 활발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친근하고 본질적인 영역이죠. ‘왜 웃는가’에 대한 답변은 잘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제가 가르치고 있는 수업시간에 소녀시대의 윤아 얼굴을 보여주고 ‘왜 이쁜가’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죠. 말하자면, 아름다움이 자연선택으로 인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이처럼 여러 층위에서 진화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실례가 있을까요?
이: “공포가 해소되는 상황에서 웃음이 발생했다는 진화심리학 이론이 있습니다. 책에도 김구라 씨 박명수 씨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웃음에 공포 속성이 있다는 것이죠.”
웃음은 그 공격성으로 인해 사회적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다. 중세의 교수형이 한 예가 될 수 있는데, 원래 교수형은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잔인한 장면을 구경하며 사형수를 비웃던 행사의 일종이었다. 공격적 유머로 인한 웃음은 내밀하고 은밀한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에 웃음의 대상이 이방인이거나 자신들과 상관없는 인물일 경우 응집력이 발생해 매우 강력해진다. 일종의 비웃음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웃음에 관한 우월론적 관점과 유사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웃음의 대상은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는 낙인이 찍힌다. 그 대상이 권력자이고 힘 있는 자, 억압하는 자일 경우는 권력 관계를 잠시나마 무력하게 만드는 일종의 진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 문제가 된다. 인간의 공격적 본능과 내외 집단 구분의 본능(편을 구분하여 무리를 나누려는 본능)을 자극하여 왕따나 이지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 폄하, 비하, 무시, 차별로 변질되고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pp.117~118)
전:“개그맨이 일반인보다 아이큐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일류 개그맨은 그렇지 않은 개그맨 보다 훨씬 똑똑 할까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 “질적인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더 발달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침묵) 이윤석과 유재석의 차이를 묻는 질문이신 거 같은데요(웃음). 질적인 차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례로, 서경석 씨의 1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은 최고입니다.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죠. 그러나 1시간을 넘어서면……. (청중 웃음)”
전: “미인들을 웃겼을 때, 더 큰 기쁨을 느끼시나요?”
이: “(웃음) 총각이었다면 솔직한 대답이 가능했을 텐데, 어렵네요. 제 주위의 동료들을 보면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수들도 공연 도중 지칠 때는 무대 조명으로 객석을 비추는 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디까지나 진화심리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저는 와이프가 웃을 때 가장 기쁩니다(청중 웃음). 성 선택적 관점에서 유머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갈등의 상황에서 유머를 통해 부드럽게 해결이 될 수도 있죠. 특히 최근에 첨예하게 대립된 갈등을 살펴보면서 웃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에게 있어 유머 감각은 때로 외모나 키보다도 여성에게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유머 감각이 그 사람의 정신적 능력, 즉 두뇌의 우수함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간접적인 신호로 파악될 수도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우고 베티는 “남자가 여자를 웃게 만들 때 여자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여자에게 웃음을 줄줄 아는 남자, 여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남자, 위급하거나 힘든 상황에서도 여자를 웃게 만드는 남자,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적절한 농담을 구사할 줄 아는 남자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유머의 하향성과 공격성이라는 특징은 남성의 지위와 매력을 암시한다.(p.147)
이윤석 씨는 ‘YES24 vvip’ 라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현재 읽고 있는 책과 그 밖에 추천도서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저는 한 번에 여러 권을 사서 동시에 읽는 편입니다. 회전 초밥 같은 스타일이죠(청중 웃음). 현재 읽고 있는 책은 『주인과 심부름꾼』입니다. 인문학과 뇌 과학을 아우르는 책이죠. 그리고 『공부도둑』은 신앙과 물리학이 담긴 국내도서입니다. 제가 늘 고민하는 영역이 바로 신앙과 과학이에요. 이 책을 읽으며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오래된 연장통』도 재밌게 봤지만, 그 외에도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무지개를 풀며』등은 다소 어려운 과학책이지만 읽고 나면 전화번호부 10권을 읽은 것 같은 뿌듯함이 있습니다(웃음).”
전: “과학일반을 다룬 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원더풀 사이언스』(나탈리 앤지어 저)입니다. ‘왜 우리가 과학을 해야 하는가’라고 할 때, 특별히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즐거운 학문이라는 것을 잘 녹아낸 책이죠. 저희 아들이 크면 꼭 읽히려는 책이기도 합니다.”
다음 책을 쓰실 구상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웃음인가요? 과학인가요?
이: “책 발간 후에도 웃음에 대해 보충할 부분들이 자꾸 눈에 밟혀요. 그리고 갈등과 모순, 행복 등의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아직은 막연합니다. 이러다 전혀 엉뚱하게 ‘알콩달콩 이윤석의 신혼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낼지도 모르죠(웃음).”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질문을 미리 받았습니다. 선정되신 분들에게 이윤석 씨가 뽑은 책 5권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학창시절 과학점수는?
이: “학창시절 과학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따라서 성적도 제일 좋지 않았죠. 이렇게 과학책까지 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다면, 너무 타박하지 않으셔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서두에 웃기는 책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정말 안 웃기네요(웃음). 왜 과학책은 안 웃기죠?
이: “개그맨이 과학책을 썼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았는가, 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선물을 드릴 때, 웃기게 드리겠습니다(청중 웃음).”
회피는 생존과 관련이 있고, 긍정 정서는 고차원적인 것과 관련이 있나요?
이: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해도 생존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으니까 긍정 정서를 지녔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입장이죠.”
종마다 웃음이 다를까요? 그렇다면 물고기도 웃나요?
이: “강아지도 웃는다고 합니다. 쥐도 간지럼에 반응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뇌의 발달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웃음과 비슷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물고기가 위험에서 벗어났을 때도 웃음에 준하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과학 공부에 매력은 무엇일까요.
전: “진화심리학과 자연과학은 좀 다른 분야이긴 하죠. 하지만 객관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간략히 말하자면, 나와 네가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그것들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쓰면서 웃음을 분석하는 게 쓸모 있는 일인지, 스스로 의문을 던질 때가 많았어요. 집필하는 시간에 한 번 더 웃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 그러나 누군가는 했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웃음에 대한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라면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진화 심리학자로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웃으면, ‘내가 왜 웃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해답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웃음의 과학』이 소중한 이유죠. 웃음에 대한 연구는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소를 짓는다. 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과 그 미소에 담긴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인간의 미소에 두려움과 복종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미소는 과거와 단절된 발명품, 즉 문화적 인공물이 아니다. 우리는 비록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먼 옛날 두려움과 복종의 감정에서 출발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