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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어릴 적에, 엄마가 읽어 주시던 책을 재미있게 듣던 기억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머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책 읽는 걸 좋아하셨죠.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시진 않았고, 본인이 읽으셨어요. 이모네 집에 갔는데 이모가 안 계시면, 멍하니 앉아서 기다리시지 않고, 이모네 집에 있는 책들을 꺼내서 읽고 계셨다고 사촌이 얘기해 주었죠. 엄마는 늘 그러셨습니다. 길을 다니실 때도 노래(가곡들이나 동요들)를 흥얼거리셨고, 책들을 읽으시면서 보이지 않는 저편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항해하며 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그렇게 책을 통해서 자신만의 깊은 우물을 품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목일신)가 시인이셨던 이유로 집에 시집도 많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시를 읽는 습관도 가지게 되었죠. 배화여고에서 오래 국어교사를 하셨던 탓에 배화여고 교지를 비롯해서, 인근 여고의 교지들이 집에 잔뜩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저한테는 그 교지들이 마치 문예지처럼 보였습니다. 학생과 교사들의 수필. 독후감. 이런 것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중에 작가로 데뷔한 분도 계셨죠. 딸이 배화여고에 다니던 방송작가 김수현 씨의 어머니로서의 수필이 실리기도 했고요.”

“환영 받을 수 없는 출생의 순번(둘째 딸)을 달고 태어난 탓에, 10대 때에는 그다지 밝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책을 통해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질문하면서 고요하게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봤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도서관이 없어서, 친구들로부터 빌려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고2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급속하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암울해 지기도 했는데, 그 때,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보게 해준 힘. 이것은 끝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길에서 아주 작은 웅덩이에 빠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 이 경험으로 나는 부쩍 성장할 수도 있을 거란 사고는 책들이 저에게 준 것이죠.”

“문학이란 화두에서 떨어지지 못했다가, 그게 문화라는 화두로 넘어가게 한 것도 책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소설 『가면고』에 나오는 현대무용에 대한 생각. 이사도라 던컨의 자서전에 담긴 혁명적인 삶.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 브레히트의 희곡들 등 이런 것들이 문화가 갖는 사회적인 힘에 대해서 사고하게 했지요. 요즘은 누구나 멘토를 찾고, 그 멘토들에게서 위로와 답을 구하려 하지만, 저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정해진 길만 가다가,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이 멘토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포장된 또 다른 인생의 과외선생을 구하는 모습이란 생각도 하게 합니다. 방황하고, 깨지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던져줄 한마디 말을 기대하고, 그 말이 등 떠밀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안일하게 보이는 거죠. 적어도 손에 잡히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스스로 탐색하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관광공사)에 들어가서, 바로 깨달은 건 다른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지적인 방황을 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 바로 앞에 영풍문고가 있었죠. 퇴근길에는 그 영풍문고를 통해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매일 거기서 책을 뒤적이며, 그럼 어디로? 갈까를 모색했습니다. 바로 그 시절, 니체를 만났고, 최영미, 황인숙, 최승자, 김수영 같은 시인들을 만나고, 알튀세르, 들뢰즈, 라캉을 만났죠. 결국 연극판으로 자리를 옮기고, 매우 충만하고 의미 있는 20대 후반을 거기서 보냅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한국사회를 침몰시켰을 때, 월경을 합니다. 프랑스로. 그 이후로는, 뭐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에 책에 자세히 쓴 바 있지요.”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의 책들은 읽지 않는다

최근 『월경독서』를 출간한 작가 목수정. 『월경독서』는 목수정이 30여 년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읽었던 책들 가운데,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지는 책, 삶의 지평을 열어준 인연들을 골라 지난 기억을 더듬고 행간을 다시 서성이며 사유를 정리한 글이다.

“『월경독서』는 한 사람이 독서를 통해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책이라는 한 장의 벽돌을 딛고 어떻게 다른 세계로 월담해 갔는지를 기록한 책이에요. 모두에게는 바로 그 월경을 감행하게 해줄 책들이 있었을 것. 모두, 각자의 내면 속에 가라앉아있는 그 묵직한 돌을 꺼내어 반추해보시는 경험을 가져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목수정은 책을 통해서 삶의 모든 중요한 단계로 나아가는 영감들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과 『빌헬름 라이히』은 『야성의 사랑학』을 집필하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이다.

요즘 목수정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찰스 다윈. 지금 8살인 저자의 아이가 던지는 무수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다윈의 『종의 기원』 속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가 살면서 품어왔던 근본적인 질문들, 사랑과 성을 둘러싼 질문과 ‘인류는 왜 이토록 고통스런 수렁 속에 스스로를 번번히 빠뜨려왔는가’ ‘한줌의 악당들은 왜 또 수천만의 무고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가’에 대한 답도 어쩌면 일정 부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목수정은 찰스 다윈의 인간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찰스와 엠마』도 읽을 계획이다. 한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알고 나면 반드시 그의 구체적 삶을 알고 싶어하는 저자에게 더 없이 필요한 과정이다. 『찰스와 엠마』는 저자의 독자가 선물해준 책이기도 하다.

“두 번째 관심사는 한국사에요. 그 중에서도 한국사의 여걸들에 대해서. 왜곡되거나 축소되고, 내지는 감춰져 왔던 한국에 실존했던 여걸들의 삶을 추적해 보고 싶은 건 분명,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나약하게 왕자만을 기다리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속의 공주상에서 아이를 탈피하게 해줄 듯 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한국의 공주들이란 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셔, 소서노나 미실, 선덕여왕 같은 대찬 여성들의 삶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우선, 『한국사 여걸열전』 같은 역사 속 인물 소개 책, 그리고 각각의 여성들의 삶을 개별적으로 조명한 책들을 읽고 있어요.”

목수정은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의 책들은 읽지 않는다. 또 마케팅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책도 고르지 않는다. 그런 책들은 책이기 이전에 상품이란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을 주기 때문이다. 읽더라도 그 책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게 될 때, 읽곤 한다.

“시류에 동참하는 게 싫어요. 저자나 역자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표지의 느낌도 저한테는 참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저자와 편집자가 이 책을 어떤 색깔로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지요. 그 다음은 직관이죠. 실용적인 목적이 있어서 사들이는 책이 아니라면, 전 제 직관이 짚어주는 대로 책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 책 가운데서 한 두줄 반짝, 눈에 띄는 구절이 있으면 구입하죠. 도서관이나 북 카페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계속 읽고 싶으면 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몹시 아쉽습니다. 직관이 작동하려면 일단 책이랑 직접 대면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대형 서점들도 가급적 많은 책들을 소개하기 보다는, 마케팅 비를 많이 들인 책들만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행태도 무척 불쾌합니다. 오히려 서점이 독서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죠.”

작가 목수정에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을 한 권 골라 달라고 하니, 재밌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대체 왜 이러셔요. 한 권만 고르라니요. 마치 자식이 다섯인데 그 중 하나만 고르라는 것과 같아요.”목수정의 서재란, 책들이 재잘대는 숲이다.

명사 소개

목수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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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 인문/사회 저자

최신작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

문화정책연구자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다. 20세기 러시아 시 수업시간, 시인 예세닌이 이사도라 던컨과 결혼했단 얘기를 듣고 서점으로 가 이사도라 던컨을 만났다. 그 뒤로 쭉 무영하는 여신을 한 명씩 가슴 속에 섬겨왔다. 첫 직장은 관광공사. 문화축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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