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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길을 잃다

글쓴이: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 201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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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신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기에 <중국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중국 상고사 1>라는 제목을 보고는 기대가 많이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상고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그것을 영토 소유권에 대한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는 시기에 이 책이 나온 것은 시의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고사 부분은 문헌적인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얼마나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은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될 테니까 말이다.


책은 수많은 세력들이 명멸했지만, 수천 년간 반란과 분열, 내란이 끊이지 않는 속에서 더욱 확장되고 강성해진 중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황하 문명을 이루게 한 황하는 풍요보다 범람과 가뭄을 통해 대기근으로 이어진 적이 많았고, 대기근은 농민 반란으로, 농민 반란은 군웅할거로 그리고 군웅할거는 천하 대란을 거쳐 시대가 요구하는 중국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대략 4천 년 전 황하의 신흥 세력인 헌원이 전통적 지배 세력인 치우와 염농을 누르고 최초로 중국 통일을 하며 중국의 근원이라 할 화하족(華夏族)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분열과 통합을 거치며 현대 중국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중국 신화에서는 천지개벽의 주인공인 반고로부터 3황을 거치고 오씨(五氏)가 등장해 불을 이용하게 하고 가축을 기르게 하면서 사람들이 야만을 벗어나 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오제 중에서 요와 순이라는 성군이 등장해서 태평성대를 이루고, 황하의 홍수를 다스린 우임금이 하나라를 세웠으나 그 19대 왕인 걸임금이 포악하여 탕왕이 상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와 알고 있는 위와 같은 신화가 대부분 중국의 입장에서 왜곡된 것이라 비판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테면 황제와 치우의 싸움을 한족(漢族)과 동이족(東夷族)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3황 5제와 탕임금이 모두 동이족이라는 것을 중국 사료를 통해 주장하며, 결국 중국의 역사는 동이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반고의 이야기는 송나라 <태평어람>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방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 추측된다며, 중국 3황과 5제, 5씨의 이름이 사료들마다 다른 것을 의문점으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또 전설적인 성군인 요임금과 순임금에 대해서 실제 요임금은 신하들의 위세가 높아 그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순임금은 야심만만한 인물로 요임금 사후에 반란을 일으켜 천자가 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우임금 역시 성군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요에서 순으로 다시 우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선양의 전통이, 실제로는 무자비한 피의 혁명을 미화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기존에 알고 있던 신화나 역사의 맥락과 너무도 다른 이야기에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어쩌면 그 까닭은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미화하고 주변에 있는 많은 민족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왜곡해 놓은 잘못된 이야기에 너무도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고사 부분은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그 내용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신화라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며, 특히 건국신화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미화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우리의 건국신화를 보더라도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긍정적인 인물형으로 그려져 있지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지 않은데, 이를 무조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화에 따라 한민족은 원래부터 착한 민족이고, 중국의 한족은 실체가 불분명한 나쁜 민족이라는 식의 또 다른 역사 왜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고사를 새롭게 비판적 시각에서 해석하고자 수많은 서적을 바탕으로 내용을 기술한 노력에는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지만,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기를 비판적 시각에서 해석하다 보니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술되었는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 생각한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중에서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인물은 우임금의 후손으로 다시 하나라를 일으킨 사소강뿐으로 그 외의 인물들은 모두 부정적인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과연 중국 역사의 주인공은 모두 부정적일까 하는 의문과 그들이 모두 동이족이고 한민족이라면 그들에 대한 비판은 결국 중국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이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한민족이므로 중국의 한족은 그 실체가 없다는 주장의 경우, 과연 동이족을 우리 한민족과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동이족은, 한민족과 다른 민족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개념이고, 이후 민족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면서 한민족과 한족 등으로 갈라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전체적인 느낌은 신화적 맥락과 역사적 해석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객관적 비판이라기보다는 비판을 위한 비판의 요소가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학습만화의 주된 독자층이라면 아무래도 초등학생일 텐데, 내용상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고 그림도 초등학생이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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