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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학창 시절의 추억이여.

글쓴이: 銀이의 천천히 숨쉬는 공간 |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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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인문 관련 리뷰를 정리하려고 했지만 일단 민음 한국사에서 제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서 다시 문학 리뷰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얼마 전 읽었습니다. 구운몽을 제대로 잡고 찬찬히 읽어본 사람 나와라 하면 과연 몇 명이나 나올까요? 이름은 유명하지만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책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진과 팔선녀의 유희장면이었지요. 고어로 되어있던 지문을 읽으면서 그 뜻은 이러하다라고 수업을 받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전 가끔 쓰잘데기 없는 기억력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정철의 가사도 외우고 있을 때가 있으니 말입니다.


 


학창시절 부분 발췌된 글을 읽고 대략적으로 한 번 훑어 읽어봤던 책을 왜 갑자기 읽게 되었을까요? 그건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였습니다. 전 어머니와 하루 한 삼십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대화를 합니다. 가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기도 하고 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보통 주제는 드라마, 책, 음악, 종교, 공연 이야기입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공연과 책, 음악이고 어머니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드라마, 종교쪽입니다. 드물게 책 이야기도 하시지만 많이 풀어놓지는 않으십니다.


 


아마 서양고전은 제가 어머니보다 많이 읽었고 어머니와의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면 한국 소설은 제가 어머니 앞에 명함을 못 내밀 것입니다. 책벌레, 책벌레하며 저를 한탄하시지만 일단 일흔 넘으신 어머니와 괴테에 대해서, 스탕달에 대해서, 톨스토이에 대해서 때로는 카프카에 대해서 브론테 자매에 대해서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 발자크에 대해서, 앙드레 지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란 것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겠지요.


 


가끔 독서 관련 프로그램도 보시는 지 어느날 구운몽을 이야기하십니다. 구운몽을 읽어보신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 기억을 되살려보니 제 기억 속 구운몽은 성진과 팔선녀의 희롱 장면 외에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꽃을 던져 구슬을 만드는 것이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에 참으로 많이 남았었나 봅니다. 대략적으로 팔선녀의 환생이 기억이 나는데 완벽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잡게 된 것이 구운몽입니다. 책이란 책은 이미 한 번 정리하였고 그로 인해 텅 빈 제 책장은 지금 새로이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덕분에 구운몽도 구매해 읽어야만 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도서관도 가지 않기 때문이죠.


 


구운몽은 성진이란 중이 용궁에서 용왕이 주는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팔선녀를 만나 서로 말로 수작을 주고받다 밤에는 도량에서 부귀영화를 꿈꾸다 그 벌로 인간으로 환생하여 팔선녀와 해후하여 평생을 잘 살았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하룻밤 꿈이더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해 썼다고 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건 팔선녀가 각자 귀하고 천한 신분으로 환생하여 성진과 연을 맺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연을 맺는 것은 간략하지만 팔선녀들이 서로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벗으로 삼아 우정으로 살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규방에 갖혀있는 여인들에게는 어쩌면 꿈에 그리던 일일지도 모릅니다.


 


처첩으로 엮였으면서도 여인들은 서로 상대방을 바라봄에 있어 투기가 아닌 자신들만의 우정과 애정을 쌓으니 말입니다. 답답한 생활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자신과 같은 여성에서 찾는 것.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이 소설은 그려줍니다. 학식이 깊고 음악에 조예가 있고 재주가 있는 여성들끼리 지내는 것인데 성진은 매 순간 등장하긴 합니다만 잘 생겼다와 약간의 호색기질이 있다외에는 부각되는 것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남성적 영웅상을 그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지나가듯 문장이 뛰어나다. 용모가 아름답다등으로 그려질 따름입니다.


 


팔선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팔선녀들의 기지가 없었다면 이 소설은 아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꿈을 꾸게 하는 듯 부드럽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섬세하게 마음을 위로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심각할 것도 없으며 그저 이야기의 전개에 끌려 성진의 여인천하를 구경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천하는 시기도 질투도 없고 그저 가벼운 장난과 여인들끼리의 끌림과 우정과 행복한 날들을 보여주니까요.


 


학식이 높다 한들 경시받을 이유도 없고 그 학식을 알아주는 또 다른 여인이 있고 비현실적으로 그려진 그 세상을 보면서 그 시절의 여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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