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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시간도 없는 청춘

글쓴이: 책, 그리고 |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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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경험이 재산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도 권하고 싶지 않은 경험은 있다. 바로 빚이다. 빚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결국엔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몰고 온다. 경제 불황으로 가계대출의 규모는 커지고 개인파산자가 늘어가는 게 현실이다. 빚만 없어도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진정 옳다. 김의경의 『청춘 파산』은 제목 그대로 빚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주는 엄마가 사업을 하면서 빌린 사채 빚으로 인해 길고 긴 도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구치소까지 다녀온 엄마는 다시 빚을 졌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야말로 도망자의 삶이었다. 어디에서도 편안한 숨을 쉴 수 없었다. 대학교, 적을 두었던 회사에서도 인주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사채업자가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신용불량자로 보낸 20대, 30대의 인주는 파산 신청을 했다. 인주에게 존재 자체가 빛이고 권력이었던 청춘은 없었다. 낭만, 연애, 도전, 우정은 먼 단어였다. 물론 이 시대 청춘에게 부여된 스펙이나 인턴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고 할 수 있는 건 셀 수 없이 많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소설은 인주의 청춘 생존기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의 일상과 고민을 보여준다. 인주는 일당 3만 원의 상가수첩 넣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인 호성과 동거 중이다. 매일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서울의 전 지역에 상가수첩을 돌린다. 시간을 다투며 동을 이동할 때마다 인주는 그곳에서 했던 아르바이트를 떠올린다. 고시원 총무, 레스토랑 서빙, 행사 도우미, 학원 강사, 신상품 모니터 등 다종다양한 직업을 소개한다고 봐도 좋다.


 


 단순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서울 곳곳의 동에 대한 설명이다. 봉고차로 이동하면서 동의 이름에 대한 유래와 특징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신당동은 광화문 밖에 있는 신당을 중심으로 무당이 모여 만든 마을이라 귀신 신(神)자를 써 신당이라는 것이다. 사당동을 시작으로 신당, 신림, 청담, 노량진, 연희, 개포동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지도를 따라 고단한 서울살이를 보여준다. 사느라 바빠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갖고 돌아보지 않았던 서울의 풍경이라고 할까.


 


 ‘서울은 간판만으로는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다. 골목과 길마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예전에 살던 동네라고 해도 눈을 감고 가다가 번쩍 뜨고선 맞혀 보라고 하면 맞힐 자신이 없다. 길에도 표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일까, 아니면 내게서 그 길들이, 길들의 표정이 잊힌 걸까. 그렇다면 추억이 깃든 길을 지날 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건 왜 일까. 길은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잊어도 길은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발 밑에서 나를 잡아당기며 말을 거는 것이 아닐까.’ (182쪽)


 


 지나온 풍경에는 반드시 상처와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인주가 살아온 시간도 그러했다. 삶의 터전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인연이 인주를 지켜준 것이다. 파산 신청을 했음에도 터무니없는 빚을 갚으라는 우편물과 사람들을 보내는 사채업자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 곁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십 대,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꿈을 꾸는 사람들, 화려한 서울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보통 사람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고 아무에게도 멸시받지 않고, 내가 하지 않은 무엇인가로 인해 비난받지 않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먼저 헤어질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군가가 좋아지는 것을 겁내지 않아도 되는 것.’ (358쪽)


 


 빚으로 산 청춘이라는 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빚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경쾌한 생동감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어디 청춘 뿐일까. 최악의 경제 불황 시대를 사는 보통의 삶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빚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을 모든 청춘을 응원하는 이 소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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