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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갇혀 스러진 천재 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

글쓴이: 처음처럼님의 블로그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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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프라하의 봄’ 무렵 집필을 시작해서 1968년 소련군의 체코 침공 이후에 마쳤고, 197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소련군의 침공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상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다른 곳에>는 한 시인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생을 7부로 나누어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2부는 주인공 야로밀이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 자비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그의 정체를 두고 다소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이 현실에서 해보고 싶어 상상했던 일들을 자비에를 통하여 그려내는 일종의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자비에는 마지막 7부에서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6부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40대 남자는 주인공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누구나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우연히 만난 갈색머리의 우아한 아가씨를 뒤쫓다가 만난 빨간 머리 아가씨의 유혹으로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빨간 머리는 야로밀이 그때까지 꿈속에서만 그려왔던 이성과의 관계를 현실화한 첫 번째 사랑인 셈입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사랑이다 보니 사랑의 기술이 정교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그녀는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나타났고, 야로밀은 왜 늦었는지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빨간 머리 역시 그때까지도 야로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다보니 늦었다고 둘러대는데, 여기서 야로밀은 빨간 머리에게 나를 사랑하기는 하냐고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친구를 챙기다 자신과의 약속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지요. 사실은 약속시간에 15분 정도 늦은 정도는 양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빨간 머리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야로밀을 달래려드는 빨간 머리를 밀쳐내자, 빨간 머리는 사실은 오빠를 만나러 갔던 것이라고 말을 바꾸게 됩니다. 오빠가 몰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는데, 이 거짓말은 최악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야로밀은 당시 불길처럼 일어나던 사회주의 공화국 운동의 신봉자였던 것입니다. “난 너 없이는 살 수 없을 것(416쪽)”이라고 말한 야로밀은 “나도 네가 없다면 엄청나게 슬플 것”이라는 빨강 머리의 대답에 실망합니다. 야로밀은 그녀가 엄청 나게 슬퍼도 살 수는 있을 것이란 말로 해석한 것입니다. 빨강 머리는 재차 확인하는 야로밀의 의중을 읽지 못한 셈입니다.


 


결국 야로밀은 경찰인 학교친구를 찾아가 빨강 머리의 오빠가 몰래 국경을 넘을 작정이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경찰은 빨강 머리를 체포하게 됩니다.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된 야로밀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혁명적 과업을 수행했다는 만족감을 담은 시(詩)를 짓지만, 그의 시에 열광하던 주위사람들의 실망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국 싸늘해진 주변의 시선 밖에서 돌던 야로밀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총망받던 시인의 예기치 못한 죽음은 우연으로 엮인 빨강머리가 4이름도 모를 40대 남자와 야로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것이 빚어낸 거짓말이 화근이었음으로 밝혀지는 허무한 결말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방미경교수님은 체코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그 시대 한 시인의 삶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소설 같은 인생의 함정에 빠져 고군분투하다가 삶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은 한 인간의 삶을 냉철하게 조명한 것이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야로밀의 아버지로부터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서 우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잠시 울음을 터뜨렸고, 밤새 흐느껴 울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눈물의 파도 맨 끝자락에조차 스며들 수 없는 몇 마디 진정시키는 말을 겨우 내뱉었을 따름이다.(41쪽)” 야로밀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하게 된 아버지였지만,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고, 그러기에 어머니는 야로밀에게 집착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 아들의 관심에 흘리는 눈물은 이런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서는 여러 종류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버림받았으므로, 슬픔의 눈물, 아들이 자신을 소홀히 했으므로, 질책의 눈물, (새 시들의 선율적 구절들을 보면) 마침내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오려 하는 것 같으므로, 희망의 눈물, 그가 그냥 어정쩡하게 서서는 머리카락이라도 좀 쓰다듬어 주지도 않고 있으므로, 노여움의 눈물, 마음이 약하지게 만들어 자기 곁에 그를 붙잡아두려는 책략의 눈물.(311쪽)” 정말 여성의 눈물을 이렇듯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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