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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품과 재활용품

글쓴이: 예스24에서 글쓰기 막은 지 여덟 해째 |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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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품과 재활용품


 



  새책방만 있는 문화는 1회용품 문화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책 하나를 한 사람만 읽고 더 읽히지 못하도록 책꽂이에 꽁꽁 가두어 모신다면, 이 책은 한낱 1회용품 물건하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새책방 곁에 헌책방이 있으면, 책은 재활용품 문화로 거듭납니다. 내 살림집에 건사한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으면 이 책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 손으로 건너갑니다. 가난한 이웃이든 마냥 책이 좋아 새책방도 헌책방도 신나게 마실하는 책님이든, 책이 돌고 돕니다. 다른 책벗이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읽은 책은 또 헌책방으로 나올 수 있고, 이 책 하나 돌고 돌면서 수없이 되읽힙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바로 책 하나 되읽히도록 이음돌 놓는 책터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도서관은 책 두는 자리를 새로 짓거나 늘리지 못합니다. 책은 날마다 새로 나오는데,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장만하지 못하고, 모두 건사하지 못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뺀 다른 도서관은 꾸준히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 나온 책을 사들이’는 일을 하고야 맙니다. 도서관 곁에 헌책방이 없다면, 이 나라 도서관에서 버릴 수밖에 없는 슬프고 안타까운 책이 모두 종이쓰레기가 됩니다.



  꾸준하게 많이 팔리는 책이라면 몇 권쯤 종이쓰레기 되어도 다시 찍어 다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줄거리와 속살이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미처 사람들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진 책은 몇 권이라도 종이쓰레기가 되면 자칫 두 번 다시 만날 길 없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100만 권 팔리는 책만 아름답지 않습니다. 1000권 겨우 팔린 책도, 100권 가까스로 팔린 책도, 10권 힘겹게 팔린 책도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읽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처음 펴낸 책은 빚을 지고 혼잣돈으로 펴냈는데 몇 해에 걸쳐 고작 100권 남짓 팔렸다고 해요. 소로우 님은 이녁 삶을 책으로 써서 내놓고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 빚을 갚느라 여러 해 고되게 일해야 했다고 해요. 이 책들을 도서관에서 버린다면, 이 책들을 받아줄 헌책방이 없다면, 아마 소로우 님 책은 앞으로도 제대로 빛을 못 받을 수 있었겠지요.



  삶은 1회용품이 아닙니다. 1회용품은 모두 쓰레기로 바뀝니다. 부엌칼도 도마도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1회용품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시 쓰고 또 쓰며 오래 쓰는 재활용품입니다.



  재활용품 파는 가게에서 사는 물건이 재활용품이 아니라, 우리가 꾸준히 곁에 두며 쓰는 물건이 모두 재활용품입니다. 바지 한 벌 열 해째 잘 건사해서 입는다면, 나는 바지 한 벌을 열 해째 재활용품으로 즐기는 셈입니다. 자전거 한 대 열 해째 잘 돌보며 탄다면, 나는 자전거를 탈 적마다 재활용을 하는 셈입니다.



  돌고 돌 때에 돈이듯이, 돌고 돌 때에 책입니다. 여러 사람이 골고루 누릴 때에 아름다운 돈이 되듯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읽으며 스스로 이녁 삶을 살찌우는 징검돌로 삼을 적에 아름다운 책이 됩니다. 큰책방과 작은책방, 인터넷책방과 동네책방, 여기에 새책방과 도서관과 헌책방이 고루고루 골골샅샅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해야 책빛이 환하게 드리울 수 있습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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