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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를 심판할 것인가

글쓴이: 책속으로의 여행 |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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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중에 추리 스릴러물과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연쇄살인범죄에 대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구성이 돋보이는<속삭이는 자>라는 작품을 아마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범죄의 유형과 그에 따른 범죄 수사기법이 조화롭게 전개된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대단한 화제를 모으며, 유럽 출판계는 물론이고, 국내에도 소개되어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범죄학자이자 작가인 도나토 카리시의 데뷰작품이다. 사실 장르문학의 경우 매년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무명 신인작가의 첫 작품이 이처럼 독자들에게 커다란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편의 작품으로 기존 유명 장르작가들의 인기를 순식간에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장르작가이기 이전에 행동과학 범죄연구가라는 자신의 이력을 십분 활용한,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실제사례들을 통한 범죄에 대한 연구경험과 각종 경찰 수사 사건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극적이고 스릴 넘치는 줄거리의 전개로, 작품의 완성도를 이루어낸 작가 개인의 역량이 독자들의 예상기대치를 훨씬 뛰어 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처럼 한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파격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관심사가 된 그가,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들고 다시 독자의 곁으로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도나토 작가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 기존의 여타 작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이를테면 신선하고도 색다른 흥미와 스릴을 만끽했던 경험이 있어서, 내심 그의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큰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도나토 작가가 새롭게 선보인 작품을 읽고 난후, 무엇보다 우선 생각났던 것은, 작가에게서 바래왔던 독자로서의 기대감이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전작보다 한층 더 확장된 소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도나토 작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설사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이 작품을 계기로 정교하면서도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올라타,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의 시간을 한껏 누려보기를 권해본다.


이 작품의 시작은 응급실의 도움을 요청한 위급한 전화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당직여의사가, 우연히도 자신이 치료해야 할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 얼굴의 모습이, 다름 아닌 최근 여대생 납치사건의 용의자이기도 하며, 6개월 전에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죽인 연쇄살인마임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를 두고 복수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극한의 갈등적인 상황 장면을 연출하면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몇몇 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 사건에는 몇 가지 특이한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먼저 그 한 가지는 이 사건들이 경찰의 오랜 조사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미궁에 빠진 사건이거나 혹은 분명한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사로 교묘하게 위장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모든 사건들이 이상하게도 경찰이 아닌 그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이고도 은밀하게, 당시 피해자의 이해 당사자에게 직접 그 배후가 제공된다는 것이고, 더불어 그들로 하여금 가해자에게 직접 처분의 심판을 맡기는 미스터리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완벽하게 잔인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난 이후, 자신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고 어둠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그 실체는 바로 누구이며, 또 그 배경의 원인과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경찰에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은닉하며 범인의 그림자를 쫓아 어둠에서 어둠을 넘나들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들은, 과연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작품은 시종일관 독자들에게 이러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그 질문의 결정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 채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어진다.


독자의 입장에서 도나토 작가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의 내용 안에 유독 눈에 띠는 특징 중 한 가지는, 여타의 기존 추리물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조금은 독특하면서도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는 점이고, 그에 따른 광범위하면서도 이채로운 이야기의 전개가 일단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통상적인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빛과 어둠의 대결구도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하였음에도, 빈틈을 찾아보기 힘든 치밀하고 정교한 이야기의 구성이 뛰어나다는 것과, 결말부분에서 보통 장르작품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치우침의 의존을 최대한 배제하고, 일관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향한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더불어 사건마다 진행과정에 나타나는 공포를 동반한, 아찔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의 양상과, 독자들의 예상을 전혀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사건 속 허를 찌르는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부분은, 가슴 깊이 각인 될 만큼 강렬한 잔상의 효과를 안겨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언제든 이성적으로 제어되어 멈추지 않는 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범죄들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법을 어긴 이러한 범죄관련자들은 법에 의해 그에 상응한 처벌이 내려져야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 중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는 고의적인 연쇄 살인과 같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행해서는 안 될 극악무도한 완전범죄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고 가정하고, 범죄자를 자신의 눈앞에 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신은 과연 선의 입장에 서서 이를 온전히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악의 입장이 되어 복수의 칼날을 휘둘러 심판하게 될 것인가.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인간은 선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악한 것도 아닌, 그 경계에 서있는 존재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결국 우리들 중 누군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때때로 악을 선택할 수도 있음을 예의 주시한다. 따라서 이 한편의 작품은 단순한 흥미위주의 추리작품으로 간주하고 치부하여 넘기기보다는, 사회정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철학적 메시지를 주입한, 유의미한 작품으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볼 때 실로 오랜만에 나온 도나토 가리시의 이번 신작은, 일반대중들의 원하는 스릴 넘치는 공포, 논리적인 추리, 치밀한 줄거리의 구성, 그리고 가늠하기 힘든 반전의 연속과 같은 장르소설이 주는 다양한 흥미의 요소뿐만이 아니라, 문학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를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이루어내고 있어서,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봐도 무방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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