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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주홍글자

글쓴이: 봄덕 |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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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주홍글자


 


 




아마도 여고 시절에 읽었을 것이다. 그때는 주홍글씨라는 제목이었다. 주홍글자 A가 간음한 여인에게 주어지는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 불공평한 형벌이었다고 어렴풋이 기억된다. 남자들의 권위와 위선에 희생되는 여자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던 것도 같고, 글자가 주는 상징성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도 있다.


 



주홍글자 A는 낙인이다. 간음한 여인에게 주어지는 형벌이다. 경멸과 비난의 눈초리를 받아 가슴이 멍들어도 뗄 수 없고, 동정조차 허락하지 않는 죄악의 표식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상징이다.





이야기는 17세기 중엽의 어둡고 칙칙한 뉴잉글랜드의 보스톤을 배경으로 초기 청교도 시대를 그리고 있다.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양면성인 구원과 잔학성을 잘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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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법률이 거의 일체를 이루었던 고지식한 청교도 시절에 뉴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실상에 대한 고발은 종교가 벌인 죄에 대한 심판이 지나치게 편협적이고 이기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적인 형벌인 광장 처형대 앞에서 목사나 재판관이 내리는 벌은 동정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마녀사냥 식이었고, 구원과 회개는 눈곱만큼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의 판결은 모두에게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게 하는 힘이 있었기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젊은 목사 딤스데일과 짧은 사랑을 나눈 아름답고 열정적인 부인 헤스터 프린은 처형대에서 세 시간 정도 세우고 평생 가슴에 치욕의 상징물을 달도록 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과 죄를 범한 남자를 말하라는 추궁에도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안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를 인간들에게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에겐 이미 늙고 기형적인 어깨를 한 책벌레인 남편이 있었다. 아내가 먼저 대서양을 건너오는 과정에서 2년 동안 떨어져 산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재능과 학식을 겸비한 딤스데일 목사는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타고난 말주변과 종교적인 열정으로 이미 성직자로서의 높은 지위를 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스터 프린과의 사랑으로 그는 남몰래 괴로워한다. 죗값을 오롯이 혼자서 짊어지고 가겠다는 헤스터 프린을 보며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고백할 용기가 없는 그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용서를 빌게 된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헤스터 프린에게 로저 칠링워스라는 의사가 와서 치료를 해주고 간다. 남편인 자신을 앞으로 모른척하고 절대 비밀로 하라는 당부도 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다른 이름을 갖고 돌아온 것이다. 늙어가는 불구의 지식인과 젊고 정열적인 여자의 결혼엔 애당초 애정이 없었다.


 



-저도 당신에게 큰 죄를 지었어요.


-처음에 죄를 범한 것은 나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젊은 당신과 시들어가는 나와의 부자연스런 관계를 원했으니 말이오. (본문에서)


 



책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연금술로 금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그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자가 되어, 약초로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남편인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한다. 죄인의 남편이 되어 손가락질을 받기 싫었던 것일까.


 



금고 형기를 마친 프린은 죄의 화신이라는 주홍글자를 단 채 외진 곳에서 삯바느질로 생활해 나간다. 그녀는 뉴잉글랜드가 자신이 죄를 지은 장소이기에 이곳에서 속죄해야 자신의 영혼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고통을 견뎌야 속죄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솜씨 좋은 바느질 실력 덕분에 경제적인 약간의 여유는 누리지만 사람들과의 접촉, 인간적인 대우는 기대할 수가 없는 생활이다. 은밀하고 노골적인 경계 밖의 인간이라는 시선이 고독과 씁쓸함을 안겨줄만한대도 그녀는 죗값이라며 달게 받고 살아간다. 목사의 십자가까지 지겠다며 온갖 모욕을 참아내는 것이 순교자의 삶 같기도 하다.


 



로저 칠링워스는 목사인 딤스데일의 주치의로 등장하면서 인정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그를 치료하고 위로해 주지만 그가 범죄의 상대방임을 알고부터는 그를 서서히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


 



7년의 세월이 지난 뒤 고통으로 허덕이던 딤스데일은 처형대에서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고백하고 가슴을 열어 보여준다, 주홍글자 A가 새겨진 끔찍한 가슴을,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가슴에 선명하게 수놓은 주홍글자를 새긴 옷을 입고 시민들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죗값으로 여겼던 시절. 선량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유용한 도구로 쓰인다는 명목 때문에 수치와 공포를 견뎌내고 서 있어야 하는 처형대에서의 형벌. 만인 앞에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고백하게 하는 것은 분명 공포다. 프랑스의 단두대 처형, 북한의 자아비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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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정도가 어디까지 일까.


물론 죗값은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온갖 모욕적인 비난과 멸시보다 회개의 기회를 줬더라면, 바늘처럼 독화살처럼 마구 찔러대기 전에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말이 떠오르는 책이다.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을까. 물론 죗값은 달게 받아야겠지만 처벌은 공평해야 하는 법 아닐까.


태어나면서 악마의 자식이라는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은 또 다른 주홍글자다. 죗값을 받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심판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사악할까.


 



젊은 목사 아서 딤스데일과 아름다운 부인 헤스터 프린의 짧은 사랑, 그리고 그녀의 늙은 남편 인 로저 칠링워스의 끈질긴 복수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 낸 소설이다. 종교가 지닌 이중성인 구원과 위선에 대한 묘사, 통찰력 있는 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치밀한 구성, 정교한 시대적 종교적 상징들이 가득한 소설이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아무리 시대적 억압과 굴레가 불공평하더라도, 종교적인 잣대가 어느 개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더라도 반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 개인 앞에 선 정치와 종교의 힘은 거대한 골리앗 이상이니까. 지나친 처벌과 그렇게 해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누가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구원과 용서는 어느 정도에서 이뤄져야 할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고전의 힘은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있음을 이번에도 절절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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