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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극복한 사람들의 희망이야기

글쓴이: 5for10님의 블로그 | 201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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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 짊어진 삶의 무게에 눌려 숨쉬기조차 버거운 중년,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절벽 위에 서 있는 베이비부머, 자식도 국가도 돌보지 않는 생계가 막막한, 그야말로 기막힌 노년.

과거 어느 때보다 절박한 이 땅의 현실적 절망을 극복할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까?


 


 


회원 220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1위 이러닝 교육서비스 전문회사 (주)크레듀와 공동으로 <희망 인터뷰>과정을 개발하면서 교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이 책이 탄생되었다. 크레듀 홈페이지에는 천호식품 김영식회장, 피아니스트 이희아, 소리꾼 장사익, 이숙영 아나운서  등 <희망 인터뷰, 15인의 성공신화>가 실려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힘주어 말한다. 본죽 김철호 회장은 양복 입고 눈물로 호떡을 만들어 팔면서 이룬 자신의 꿈을 <절벽에서 이룬 꿈>이라고 말한다. 생계를 이어갈 수입이 없어서 이혼을 당하고, 성대 결절로 가수 생명이 긑난 듯 했던 로커 박완규는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다시 로커의 정상에 섰다.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자살을 결심했었지만 <10미터만 더 뛰어봐>정신으로 오늘의 성공을 일구었다. 한국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라>고 주문한다. 공무원의 전설로 불리는 인천재능대학교 이기우 총장은 <인생을 바꾼 3실>이란 키워드로 자신의 성공을 설명한다.


 


히말라야 16좌 등정이란 세계기록을 세운 엄홍길 대장은 <목숨 건 진검승부>가 있었기에 가능햇다고 말한다. 8전 9기로 한의대를 입학한 평강한의원 이환용 원장은 자신의 꿈을 이룬 동력이 바로 <8전 9기>라고 말한다. 고졸 학력으로 군에서 장애를 입었지만 벤처 기업 윌테크놀로지를 세운 김용균 대표는 <꿈꾸는 자가 성취한다>며 항상 미래를 꿈꾸라고 주문한다.


 


이숙영 아나운서는 <소통의 비밀>로 대인관계의 해법을 제시한다. 유명인의 소송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무죄 제조기 이재만 변호사는 <위기는 신호를 보낸다>는 메세지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길병원과 가천대학을 설립한 이길여 총장은 결혼도 마다하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에 바친 자신의 성공을 <기적을 만든 헌신>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아줌마가 연매출 1,000억 원, 직원 2,000명의 중견기업 미애부 화장품을 일군 백인자 대표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것은 초심, 열심, 성심의 삼심이라고 알려준다. 기업인, 연예인, 법조인 등 250명을 재즈무대에 올린 재즈 가수 윤희정은 <함께할 때 강해진다>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재미있는 것은 '희망+절망=100'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이 50이면 절망이 50이며, 희망이 0이면 절망이 100입니다. 이때 사람은 죽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가난해서, 먹고 살기 어려워서, 돈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사람은 희망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죽는 것입니다.


 




 


 


희망과 절망은 형태가 없다. 냄새나 모양 또한 없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먹고 자라는 존재다. 자신을 향해 "난 얼마든지 희망이 있어!"라고 외치면 희망은 자라난다. 우리 모두 너무나 살기 힘든 현실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열네 명의 성공 인물들이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 희망의 언덕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결핍' 때문이었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결핍을 느끼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발전했다.

오늘의 결핍은 내일의 성공을 창출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따라서 오늘의 결핍을 단순하게 결핍 자체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1% 부족 때문이다.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고 100도가 돼야 끓는다. 성공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첫째,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


둘째,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역경을 극복하면 더욱 강해진다



"제 손가락이 열 개였다면 아무도 저를 신기하게 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몸으로 태어난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됏죠. 그래서 저는 손가락을 네 개만 주신 하느님게 늘 감사해요. 이 세상에서 오직 저 하나박에 없는 아주 보물 같은 손이잖아요" - 피아니스트 이희아


 


아무리 좋은 꿈을 가져도 신체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비장애인에 비해 그 꿈을 이루기가 몇 배 더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를 긑내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인물들도 있다. 시각과 청각을 잃었지만 작가와 교육가로 성공한 헬렌 켈러, 하반신 불수의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희아는 한 손에 손가락 두 개씩 있고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이다. 그녀는 세계 유일의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이다. 피아노 선생이 재능이 없다고 피아노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매일 10시간씩 연습했다. 손가락 끝이 벗겨져 늘 피가 났다.


 


일곱 살이었던 1992년 '전국 학생음악연주 평가대회'에서 유치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연주소리만 듣고 평가했다가, 수상 때 손가락 장애가 있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대회의 성공으로 그녀는 점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간절하고 절실해야 성공한다. 본죽 김철호 회장이 그런 경우다. 그는 IMF 외환위기로 하던 사업체가 부도났다. 해외에서 식물성 목욕 세제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이었는데, 환율 급등으로 불과 두 달 만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서울 갈월동 숙명여대 입구에 위치한 요리 학원에서 무급 총무로 일하며 요리를 공짜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입이 없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원장에게 사정해서 학원 앞 공터에서 호떡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차별화된 포장마차를 이용해 큰 호떡을 만들었다. 더구나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맨 초유의 호떡장사였다.


 


이를 목격한 친구의 제안으로 '창업 컨설팅' 사업을 동업했다. 처음엔 자금을 대고 지켜보던 친구가 기대 이상으로 사업이 잘되자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업은 역시 힘든 것이다. 견해 차이와 함께 역할이 축소되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2002년 봄, 김철호는 다시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외식 사업을 시작했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 전문점을 내려고 그해 8월 서울 혜화동 구석진 곳에 식당자리를 얻었다. 9월 9일, 마침내 '본죽' 직영점을 오픈했다.


 


 


 


 


경기도 포천 소재 '평강식물원'


 


'7전 8기'란 말이 있다. 이보다 한 번 더 넘어져 일어난 사람이 있다. 국내 굴지의 '평강식물원' 원장이며 '평강한의원' 원장인 이환용 씨다. 그는 충청남도 서산의 산골 출신이다. 끼니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가정이라, 그는 세 살 때부터 지게를 져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통증을 오래 겪었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지압사로부터 지압을 배우고, 한의원에서 침술을 배우게 된다. 그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한 끝에 28살에 동국대학교 한의대에 합격했다. 그의 아홉번 째 도전이었다. 


 


'초점을 맞추면 강철도 뚫는다'는 말처럼, 그는 한의대에 반드시 가고 말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이를 달성코자 몰입했던 것이다. 그는 한의대 본과 3학년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를 만났다. 월세 4만 원짜리 허름한 방에서 생활했기에 아내로부터 '거지 학생'이라고 놀림받았다.


 


결혼비용을 모두 아내가 준비해서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아내의 도움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아내를 '바보온달을 찾아온 평강공주'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의 한의원도 '평강한의원', 식물원도 '평강식물원'이다.


 


그는 참느릅나무껍질을 달여 먹고 할머니가 축농증을 치료했던 기억을 되살려 7년의 연구 끝에 비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새로운 코약, '청비환'을 개발해 큰 돈을 벌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앞 동산이 개발로 사라지자, 그는 경기도 포천에 부지를 매입해 2006년 '평강식물원'을 세웠다.


 


 



결핍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포기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극복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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